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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도시'를 찾아서 <8> 불가리아 플로브디프 박물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래된 저택을 지역사 박물관으로, 식민지배의 고통을 문화자산으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7-02-14 19:19:3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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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케도니아와 오스만 투르크
- 식민지배의 기억을 간직한
- 가정집과 관사, 가재도구들

- 있는 그대로 보존하면서
- 불가리아 부활 전시관으로
- 지역 민속 박물관으로 활용

"내게 있어 행복이란 이처럼 잊히지 않는 어떤 순간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이런 감정적인 순간들을 하나하나 놓고 생각하는 것임을 알면, 연인의 식탁에서 팔 년을 기다린 것이 조롱거리나 강박 관념처럼 보이지 않고 그저 퓌순 가족의 식탁에서 보냈던 행복한 1593일의 밤으로 보일 것이다. … 모든 사람들이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나의 삶을, 퓌순이 남겨 놓은 것들과 나의 이야기들과 함께 박물관에 전시해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며 행복해 했다."(이난아 역,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 중에서)
플로브디프가 오스만 투르크(터키)의 식민지이던 시기에 세워진 구도심의 대표적 하우스 뮤지엄.
오르한 파묵이 소설 속에 쓴 그 박물관은 '한 여자와 만나 44일 동안 사랑하고/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맸으며/ 2864일 동안 그녀를 바라본 한 남자의 /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과 집착'으로 만든 '순수박물관'이다. 그 여자의 이름은 퓌순이다. 오르한 파묵이 실제로 터키 이스탄불에 만든 4층짜리 '순수 박물관'은 소설가가 여러 곳에서 사들여 놓은 물건을 전시해 놓았을 뿐이다. 그 전시품들은 허구 속에서만 진짜로 보일 뿐 실제 현실에서는 가짜이다.

■이름 예닐곱 번 바뀐 사연 많은 도시

개인의 어떤 현실이라도 실제로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은 불가리아의 플로브디프 구시가지에 널려 있다.

오드리사(오린), 플프 데바, 필리포 폴리스(필립의 도시), 켄드리시아, 트리몬티움(세 개의 언덕), 플로(브)디프, 필리베로 이름이 바뀌었을 만큼 플로브디프는 역사의 격랑을 겪어 온 도시다. 격동하는 세월을 피해 갈 수 없었던 사람들의 집들은 박물관으로 거듭났다. 그 집들은 '하우스-뮤지엄'과 '문화의 국가적 기념물'이라는 현판을 출입문 기둥에 붙이고 이 지역의 역사와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 모습은 기원전 4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진다.

네벳테페 요새에서 본 플로브디프 전경.
플로브디프 구시가지에 널려 있는 하우스 박물관들의 기원은 도시가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에게 정복당한 후 기원전 341년 필리포 폴리스로 개칭된 것에서 시작한다. 그 출발은 '필리포 폴리스 아트 갤러리와 뮤지엄'과 '히포크라테스의 약국'이다. '필리포 폴리스 아트 갤러리와 뮤지엄'은 '필립의 도시'로 불렸던 고대의 예술품을 전시하는 박물관은 아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약국'은 히포크라테스가 살면서 의술을 베풀었다는 설명 이외에 어떤 것도 없다.

당시 도시 이름이 두론 폴리스(노예들의 도시) 혹은 모이초 폴리스(간통의 도시)였다는 조금은 전설적인 풍문에 따른다면, 필리포 폴리스는 농노들의 도시였다. 농노의 도시든 아니든 기원전 4세기의 역사와 삶은 이 도시에 흔적은 남겼지만, 기록되지 않고 전해지지도 않았다.

■구시가지 곳곳 '집이 곧 박물관'

1860년 지어진 의사 스토얀 코마코프의 저택을 꾸며 만든 하우스 박물관.
기원후 4세기 이후 도시는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가다가 오스만 투르크(터키)의 지배에서 벗어나고자 회오리친다. 무려 5세기(1396~1878)에 걸친 지배와 압제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도시의 삶과 사회는 요동쳤다. 불가리아 민족해방 투쟁(1876)의 실패, 제정 러시아와 오스만 투르크의 전쟁(1877~1878)으로 인한 타율적인 독립, 오스만 투르크와의 전쟁(1913)의 패전으로 인한 국토 상실은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됐다. 1876년에서 1912년에 이르는 기간의 기억은 구시가지 곳곳에 있다.

1847년 건축가 하드지 게오르기가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불가리아 전통의 집은 1938년부터 '지역 민속 박물관'으로 거듭난다. 오스만 터키의 식민지 시절이었던 1847년 당시 일상 생활용품과 민속공예품, 전통 의상과 전통 악기, 장미 기름 증류 기계 같은 제조도구들은 그 시절 시민의 삶을 쓰라린 기억으로 되살려준다.

사라프키나 카슈타의 전시물.
민족 부활을 위한 투쟁의 기억은 1848년 지역 부호 디미타르 게오르기야디가 지은 저택을 '불가리아 부활 전시관'으로 바꾼다. 전시관은 독립 투쟁의 역사를 다큐멘터리나 사진 자료로 보여준다. 1861년 건축된 고리대금업자 디모 사라프키나의 저택은 '사라프키나 카슈타'로 거듭난다. 19세기 중후반 부유층의 생활 자료, 그 가문이 수집한 예술품과 보석들을 전시하여 당시 신흥 자본가의 삶을 여실히 보여준다.

식민지 시절 부자들의 삶과 함께 봐야하는 것은 독립 후 국가를 재건하려는 공인들의 삶이다. 1885년 동루마니아 지방 검사의 관사를 새로이 꾸민 '지역사 박물관'은 독립 이전과 이후 사회와 삶의 모습을 전시한다. '1885년 불가리아의 통합'이라는 주제로 국가 전시회가 열렸을 만큼 박물관은 역사를 통하여 미래를 꿈꾸는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기억이라는 문화자산 현명한 활용을

고통의 과거에 대한 추억은 미래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

그 길은 하우스 뮤지엄을 역사와 민속으로부터 문화와 예술로 가게 한다. 1975년 '성화 갤러리' 건립은 15세기에서 19세기까지 남부 불가리아 지역의 동방정교 예술을 보여준다. 1981년 찬코 라브레노프와 멕시코 미술 상설 전시관, 엔초 피르노코브 상설 전시관의 건립은 외국 예술가들의 작품과 실험예술을 전시하는 계기가 된다. 이는 도시에서의 문화적 삶과 역사와 여러 문제를 토론하는 공공의 장으로 이어진다.

플로브디프는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 시기를 하우스 뮤지엄으로 거듭나게 했다.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의 기억을 간직한 부산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부산역, 부산세관, 부산우편국 등등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것을 부산은 기억에서 지워간다.

쓰라린 과거의 기억을 잊는다면 새로운 미래를 건설할 수 있을까?

민병욱·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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