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원 "격무 힘들다" 사표 쓰면
- 전공 다른 동료가 업무 맡아
- 짬짬이 노인, 영·유아 검진도

- 오후 8시 이전 퇴근 상상 못 해
- 연애·취미생활 포기한 지 오래

- 서울 보건소 3명 일 혼자 담당
- "이런 환경 창의적 업무 될까요"

"야근을 밥 먹듯 해도 일을 끝내지 못해요. 이러다가 연애는 할 수 있을까요?"

	지난 3일 부산 동구보건소 사무실 풍경. 간호사 민선(35) 씨는 "업무에 치여 오후 8시 이전 퇴근이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김화영 기자 hongdam@kookje.co.kr

지난 3일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만난 간호사 민선(가명·35) 씨는 지쳐 있었다. 2012년 보건소 발령을 받았을 때 그는 결핵환자 전담 관리자였다. 지금은 한센병 환자 관리와 생후 4개월 이상 '영·유아 건강검진'도 담당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일이 늘어 6년째 '칼퇴근'은 꿈도 못 꾸는 처지다.

정점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심·뇌혈관 관리를 맡은 동료가 "힘들다"며 사표를 냈다. 민선 씨가 그의 빈자리를 모두 떠맡았다. 다른 동료들도 민선 씨처럼 전공과 다른 업무를 맡는 탓에 거부할 핑계도 댈 수 없었다.

사실 결핵관리만 제대로 하려고 해도 상당한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결핵 의심으로 보건소를 찾는 주민에게 X-레이·객담검사(가래 분석)를 해야 한다. 전염성 결핵 확진 판정을 받은 중증 환자가 매일 약을 복용하는지 확인하는 것도 그의 일이다. 지난해 민선 씨가 돌본 결핵 환자는 101명. 보건소 환자 23명에 민간병원에서 치료 중인 78명도 그가 추적·관리한다.

지난해까지 시범사업이었던 '잠복결핵 진단사업'이 올해부터 전면적으로 확대되면서 민선 씨는 더 바빠졌다. 지난해에는 어린이집과 산후조리원 종사자 350여 명을 대상으로 체혈검사(이그라·IGRA)를 해 잠복결핵 보균 진단을 벌였다. 올해는 체혈검사 대상이 800여 명으로 늘었다. 짬짬이 경로당과 산복도로 65세 이상 노인 가구를 찾아 고혈압과 당뇨 검사도 해야 한다. 여기에다 영·유아 검진까지. 한 해 업무계획을 짜거나 보고서를 만드는 것도 고역이다. 누구에게 일을 미룰 수도 없어 '오후 8시 이전' 퇴근은 상상도 못 한다.

주말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어 연애나 취미생활은 포기한 지 오래됐다. "최근 민간병원에서 5명의 결핵 신환자가 발생했다는 의심신고가 들어왔어요. 비상이 걸렸죠. 며칠간 밤 12시가 돼서야 퇴근했어요. 집에서도 '혹시 전염이 됐을까'하는 걱정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민선 씨는 어릴 때부터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를 돕는 대형병원보다는 공공의료의 현장인 보건소에서 일하고 싶었다. 당뇨병과 고혈압을 앓던 아버지 같은 이들을 가까이에서 보살피고 싶었다. 내심 정시에 퇴근해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고 복지 처우가 좋은 공무원 명함도 갖고 싶었다. 4년의 도전 끝에 간절했던 꿈을 이뤘는데,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고달팠다.

민선 씨의 동료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 동료의 업무는 ▷안마시술소 단속·지도 ▷안경업소와 치과기공소 등록·지도 ▷온열·한랭질환 감시 ▷심폐소생술을 비롯한 응급처치 교육 관리 ▷의료기관 허가·신고 ▷의료업소 지도 단속 ▷장기·인체조직 기증 관리를 비롯해 13개나 된다.

서울의 보건소라면 3명 정도가 나눠서 하는 일이다. 민선 씨는 "완벽하게 일을 하고 싶은데, 민원인에게도 상사에게도 '죄송합니다'는 말만 연발하게 된다"며 "이런 조건 속에서 창의적인 업무를 할 수 없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수준에서 일을 끝내는 게 모두의 목표가 됐다"고 털어놨다.

김화영 기자

특별·광역시 보건소 평균 직제 부산 서울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 1과 4과 3과 3과 3과 1과 1과  ※자료 : 부산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