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쌈·독립투사 등 스토리텔링
- 삼베짜기 시연 전통테마파크서
- 직접 경험해보는 마을로 변신
- 미니 베틀 갖춰 직조가공체험
- 돌담길·빨래터 옛 향기 솔솔

경남 사천시 사남면 병둔마을 사거리에서 동쪽의 구룡저수지 방향으로 4㎞가량을 가면 저수지 끝과 맞닿아 있는 동네가 '우천 바리안마을'이다. 잔뜩 풀을 뜯어 먹은 소가 냇가에서 쉬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마을 이름을 우천(牛川)으로 불렀다. 여기에다 와룡산 줄기와 야트막한 앞산이 마을을 빙 둘러싸고 있어 밥그릇 속에 담긴듯하다 해서 '바리안'을 뒤에 붙였다. 또 옛날에 이 마을에서 생산된 삼베가 정말 고와서 한 필을 풀어보니 스님의 발우 안에 모두 담기더라는 설도 있었다.

이런 고운 이름처럼 호젓하기만 했던 이 마을이 지금은 사계절 내내 체험객으로 북적이는 힐링마을로 탈바꿈하고 있다. 논농사 이외에는 마땅한 소득원이 없던 마을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 냇가와 빨래터, 길쌈, 정자, 독립운동 기념비 등을 스토리텔링 화하면서다.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삼베체험관을 만들어 삼을 다듬거나 삼베 짜는 모습을 시연하기도 하고 계절별로 밀사리와 고구마 캐기, 오가피 아이스크림 만들기, 조각등불배 만들기 등 20여 종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해두고 있다. 기미 독립만세를 외친 17인의 마을 출신 애국지사를 기리는 프로그램도 있으며 마을을 한 바퀴 돌며 만나는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통해 사람과 자연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통테마마을에서 출발

마을회관 내 삼베체험관에서 한 마을주민이 베 짜기 시연을 하고 있다. 체험관에는 미니베틀 20여 개가 있어 방문객들이 직접 베를 짤 수 있으며 베틀의 원리를 이해하는 등 직조가공체험을 할 수 있다. 우천바리안마을 제공

바리안마을의 시작은 10년 전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삼베를 주제로 하는 전통테마마을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벼와 보리재배가 고작이었던 이 마을에 생기가 돌았다. 20여 명의 아낙이 무명 치마저고리를 입고 삼베를 짜는 모습에서 탐방객들은 추억을 되새기며 부모세대의 애환을 회상하기도 했고 학생들은 신기해했다. 입소문이 번지면서 도시인들의 발길이 늘었고 인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서는 소풍이나 체험학습의 날을 정해 마을을 찾기도 했다. 할머니들의 길쌈은 새로운 이야깃거리이자 과거로의 여행이었다.

그러나 전통테마마을체험은 그것이 끝이었다. 프로그램이 단조로웠기 때문이다. 삼나무를 삶고, 껍질을 벗겨 말려 두었다가 이를 다시 물에 불리면서 물레질로 실을 만들어 베틀에 연결해 베를 짜는 모습들은 일회성 구경거리에 그쳤다. 아이들이 공정에 개입하면 베가 불량품이 나올 수도 있어 함부로 맡기기 곤란했다. 신기한 구경거리임은 틀림없으나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되지 못했다. 여기에다 어렵게 만든 베가 창고에 쌓이기만 할 뿐 팔리지 않아 자금이 묶이는 어려움이 있었다. 값싼 중국산에 밀려 한 필(20자)에 30만~40만 원이라는 가격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악순환이 계속되자 전통테마마을은 시작한 지 4~5년 만에 시들해졌다. 탐방객에게는 추억도 좋지만 직접 느껴보는 체험의 기회가 필요했다.

■농어촌 체험휴양마을로 변신

마을 체험에 참가했던 아이들이 마을 앞 하천에서 돌탑쌓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새로 태어난 것이 농촌체험마을이었다. 주민들은 2012년 대학교수의 자문을 받아 프로그램의 주제를 '길쌈'으로 하면서도 체험 위주로 확 바꿨다. 말 그대로 체험과 휴양이 있는 마을로 변신한 것이다. 기존 삼베체험관에서는 길쌈을 진행하되 학생들이 직접 베를 짤 수 있는 미니 베틀 20여 개를 제작해 베틀의 원리를 이해하고 직조가공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독립운동가들이 비밀통신을 위해 종이에 쓴 편지를 말아 베를 짠 뒤 옷을 만들어 입고는 중국과 만주 등지로 달려가 전달한 과정을 살펴보는 역사체험도 있다.

또 마을을 한바퀴 돌면서 만나는 돌담길과 느티나무 정자, 다리, 빨래터 등을 통해 우리 조상들의 삶을 살펴보고 그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상상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마을 앞 중앙에 건립된 체험장에서는 허브향 주머니나 오미자 아이스크림을 만들 수 있고 나무로 목걸이를 만들거나 솔방울로 부엉이를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봄철에는 봄나물 캐기, 오가피 새순 따기, 강낭콩 심기, 산야초 모종 옮겨심기, 피라미 잡기 등을 할 수 있고 여름에는 산야초 관찰, 강변 생태탐구, 밀사리, 감자수학, 모내기, 물놀이 등을 할 수 있다. 가을에는 가을꽃 탐방과 벼 베기, 고구마 수확, 오가피 음료 만들기, 조각배 만들기를 할 수 있고 겨울에는 김장을 하거나 메주 만들기, 모닥불에 군고구마 구워 먹기, 돌탑 쌓기 등도 즐길 수 있다.

삼베체험관 내 전시된 물레

마을 뒤에 있는 옛 서당에서는 선현들의 공부방을 살펴볼 수 있으며 붓글씨도 써볼 수 있다. 마을 뒤 텃골재에서는 독립선언을 외친 마을 출신 애국지사의 독립정신을 기려보고 마을회관에서는 부녀회에서 제공하는 푸짐한 시골밥상도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지친 심신을 씻어준다.

우천바리안마을에서 실무를 맡고 있는 손상희(여·43) 씨는 "농촌마을의 작은 소재들은 스토리텔링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재미있고 유익한 관광상품이 될 수 있는데도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며 "일찍부터 테마마을로 출발한 우리 마을이 꾸준한 변화와 개선을 통해 전국 최고의 힐링마을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 늘어나는 즐길거리

- 종이배 띄우는 조각배축제, 가마솥 삼시세끼도

이제 바리안 마을은 다른 지역에서 모방할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체험마을을 준비하고 있다.

조각배 축제와 길쌈(베 짜기), 쌀로 음식 만들기를 합친 '배 베 밥 체험마을'을 조성 중이다. 지난해 5회째를 맞는 조각배축제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특화한 것이다. 구룡저수지 상류의 작은 하천에 소원이나 바람을 적은 작은 종이배를 만들어 띄우는 이 축제를 체험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특화된 행사로 꾸민다.

길쌈은 미니베틀과 물레 등을 늘려 체험객 모두 베를 직접 짜볼 수 있도록 하고 마을 할머니로부터 길쌈에 얽힌 애환들을 나누는 시간도 갖는다. 특히 잊혀가는 베틀 노래를 복원하고 베 짜는 기구들을 모아 민속전시관을 만든다는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여기에다 올봄부터는 밥과 관련된 체험행사를 대폭 늘린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나 어른들이 둘러앉아 함께 밥을 하고 같이 나눠 먹는 프로그램이다. 가마솥에 보리밥이나 잡곡밥, 고구마밥, 콩나물밥 등은 물론 솥뚜껑에 볶음밥이나 파스타를 해 나눠 먹을 수 있고 여러 가지 죽이나 누룽지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게 할 계획이다. 밥도 놋그릇이나 질그릇, 박 바가지 등 여러 종류의 용기에 담아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 외에도 못 입는 옷이나 천을 잘라 마을 안 다리 난간에 붙이기도 하고 마을 빈집을 임차하거나 매입해 농가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하고 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