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르웨이의 위대한 조각가
- 비겔란이 표현한 인간의 생
- 스쳐지나간 부산의 조각들과
- 새삼스럽게 대화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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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진은 비겔란 조각공원의 작품. 아기를 함께 껴안은 남녀. |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장전된 무기다. 우리는 한 무리의 비둘기다. 우리는 목초지의 꽃이다. 우리는 숲속의 돌멩이다. 우리는 바닷가의 자갈돌이다. 우리는 선반 위의 알파벳이다. 우리는 상자 위에 각인된 한 점의 그림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손화수 옮김, 쉰네 순 뢰에스의 소설 '아침으로 꽃다발 먹기'에서)
한국인 입양아 출신으로 2002년 노르웨이의 브라게 문학상(청소년도서 부문)을 받은 쉰네 순 뢰에스는 '인간은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다'라고 절규한다. 인간, 그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에 관한 물음은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그 물음의 대답은 살면서 겪는 경험이나 고통으로, 철학이나 문학이나 예술로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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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업고 달리는 남자. |
노르웨이 조각가 구스타브 비겔란(1869~1943)은 조각공원을 만들어 나체 조각으로 그 답을 보여준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 있는 공원 입구는 그 물음의 답이 쉽게 열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을 주는 쇠문으로 되어 있다. 그 쇠문의 앞에 놓인 숲길은 그 물음이 답을 마련하도록 만든 걷기 명상의 길인지 모른다.
■조각공원에서 삶을 통째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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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높이 17m 돌기둥 조각상 '모노리텐'. |
그 첫 번째 답은 숲길을 지나 만나는 다리 위의 조각상들이 보여줄 것 같다. 다리 위에는 양쪽 난간의 청동 조각과 네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석상 조각이 있다. 청동 조각들은 어린이에서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태어나서 자라고 죽어가는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다. 그 모습들은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기쁨과 슬픔, 쾌와 불쾌, 사랑과 미움 등을 드러낸다. 석상 조각들은 용과 남, 용과 여가 서로 얽혀 있다.
배척의 대상이며 악으로 존재하는 용(서양의 용)과의 싸움은 인간의 고통이나 번뇌를 표현한 것일지 모른다. 사람은 혼자 혹은 여럿이 늘 사소한 감정을 삭이지 못해 사랑하거나 싸우는 일생을 살아간다. 이것이 다리 위 조각상들이 던져준 답이다.
그렇지, 우리의 삶이 그렇지, 뭐 특별할 게 있냐고 중얼거리면서 다리의 끝자락을 지나면 분수대가 다가온다. 여섯 남자는 힘차게 솟아올라 가다가 내려오는 물을 맞으면서 수반을 높이 쳐들고 있다. 그 물을 청년과 노년들은 밖으로 쏟아붓고 있다. 맑은 물로 머리를 감아 액운을 씻어내는 물맞이처럼, 사람은 살아가면서 부딪치는 악의 고통이나 번뇌를 이겨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무게에 짓눌려 겨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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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뜩 화가 난 아이. |
그 물을 비켜선 자리에는 나무 조각들이 서 있다. 조각들은 어린이와 유골에서 시작해 죽음까지 보여준다. 어린 소녀 집단. 성적 욕망을 표출하고 거부하는 청춘 남녀. 서로 사랑하는 듯, 싫어하는 듯, 화해하는 듯 외로운 듯 여러 감정을 표현하는 부부. 죽음의 순간을 맞는 늙은이. 어린이와 나란히 있는 해골은 삶이 곧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라는 뜻일까?
■높이 17m 돌기둥, 모노리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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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소녀. |
답은 그가 유일하게 명명한 '생명의 프리즈'에서 찾아질 것 같다. 그 앞의 조각들은 입체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환조이지만, '생명의 프리즈'부터는 평면 위에 입체로 제작된 부조이다. 빛과 시선의 위치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는 환조와는 달리 '생명의 프리즈'는 하나로 보이며, 하나의 의미로 다가서는 듯하다. 부조는 신전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맺는다. '파르테논' 신전. 동물과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 아기를 보거나 서로 싸우거나 춤추거나 노는 소년소녀들. 서로 갈망하거나 거부하거나 부끄러워하거나 기대어 앉은 청춘 남녀들. 자녀를 꾸짖거나 남편을 껴안거나 두 남자 사이에 있거나 아기를 안고 기뻐하는 부부들. 자녀의 손을 잡거나 바라보거나 서로 앙상한 몸으로 안고 있는 늙은이. 신전에서 시작해 삶과 죽음이 하나에 이른다는 '생명의 프리즈'는 사람의 삶은 신이 만들어 놓은 운명이라는 뜻일까? 사람의 일생을 담은 나무도 '생명의 나무'이며, 신의 부름에 따라서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운명도 정해진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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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명의 늙은 여성. |
'생명의 프리즈'를 지나 언덕에 올라서면 모노리텐과 화강암 조각 군상이 기다린다. 모노리텐은 높이 17m 돌기둥에 뒤엉킨 남녀노소를 조각한 것이다. 시체 같은 늙은이를 맨밑에 두고서 올라갈수록 나이가 어려지고 서로 화해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공중으로 올라가는 한 어린이를 맨 꼭대기에 형상화한다. 이 또한 사람의 일생을 거꾸로 말한 것이다.
■공원을 나서면 묘지의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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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 네 명을 쫓는 남자. |
사람의 삶이란 서로 화해하고 돕는 것이란 뜻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하면서 공원을 나서면 바로 묘지의 벤치가 지친 사람을 맞아준다. 벤치는 신이 사람에게 삶과 죽음의 운명을 내려주신 것을 확인하는 자리인 것 같다.
비겔란 조각 공원처럼 부산 시민의 삶의 곁에 바짝 다가와 있는, 예술 향기 가득 찬 공원을 찾고 싶다. 부산시민공원이나 송상현광장이 아니면 어때? 어디든 예술이 자리할 공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부산 곳곳에 이미 있는 조각공원으로 나가 도심을 지키고 선 조각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에서 시작해볼까.
★구스타브 비겔란(1869~1943)
노르웨이의 위대한 조각가. 인간의 삶과 죽음, 희로애락을 담은 조각 작품을 남겼다. 비겔란 조각공원(32만3700㎡)은 세계 최대 조각공원으로 꼽히며, 비겔란의 작품 200여 점이 있다. 공원이 완성되기 전 비겔란은 타계했다. 그 바람에 공원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