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프로젝트 시작 이후
- 6·25전쟁 민주화운동 연애담 등
- 1700여 명의 기억 속 에피소드
- 다양한 스토리 콘텐츠로 구축
- 주제별로 정리 홈페이지 게재
- 전시·웹툰 등으로 재생산되기도
스토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나온다. 기억이 이야기로 구체화되고 그 이야기는 세대 간 소통의 매개가 된다. 더 나아가 콘텐츠로 발전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지침서가 되기도 한다. 이 점에서 서울문화재단의 '메모리 인(人) 서울' 프로젝트는 스토리텔링의 모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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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연말 서울도서관에서 진행된 '메모리 인 서울' 프로젝트 기획전. |
이 프로젝트는 서울시민들의 기억 속 다양한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수집해 채록하고 그 스토리를 자료와 콘텐츠로 구축하는 사업이다. 주요 슬로건은 '당신의 기억을 들려주세요, 당신의 목소리가 도시의 역사가 됩니다'.
2013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00명 가까운 기억수집가들이 참여했고, 1700여 시민들이 자신의 에피소드를 내놨다. 여기에는 6·25전쟁이나 민주화 등 역사적 사건에서부터 학창시절의 소소한 연애담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의 기억들이 담겼다. 이렇게 모인 스토리는 책 출간과 전시, 공연, 웹툰 등 2차 문화예술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있다.
■시민 이야기 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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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획전을 통해 시민들의 기억 속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
지난 연말 서울시청 앞 서울도서관(옛 시청사·중구 태평로). 이곳 1층 메모리스튜디오에서는 '메모리 인 서울' 기획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1개월 넘게 진행된 이 기획전의 소주제는 '오래된 상점과 상인' '1997년 IMF, 서울' '외국인에게 기억되는 서울' 등등. 이와 관련된 160건의 크고 작은 이야기 자료가 공개됐다. 이들 중 일부 내용들이 발췌돼 전시됐다. 1951년생 남성은 이런 기억을 내놨다. "…그 시절에는 큰 페치카(러시아식 난로)'를 가운데 놓고 불 피워 가면서 빈대떡도 굽고 파전도 굽고…그런 풍경이 많이 생각나는데, 그런 것은 이제 볼 수 없겠지."
전시실 앞 소파에는 '역사가 되는 목소리, 예술이 되는 스토리'라는 제목의 '시민기억책'이 비치돼 있다. 이 책은 이번 기획전에 게시되지 못한 시민 100여 명의 기억 속 이야기를 한데 묶어놓은 것이다. 그 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그 시절 서울운동장에 야구, 축구 구경 많이 다녔어. 차범근이 한창 전성기 때였지. 박스컵(박 대통령컵 국제축구대회) 경기하는데 차범근이 10분도 안돼 3골을 넣었어."(1938년생 박모 씨)
전시실 내부에는 '서울 기억산책'이란 영상물도 상영됐다. 시민들의 육성 이야기를 3분40초짜리 영상으로 제작한 것이다. 입구 벽에는 이야기를 제공한 9명의 이름도 적혀 있다. 이곳에 온 젊은 여성이 헤드폰을 끼고 열심히 시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기획전의 또 다른 공간에서는 '문학으로 기억되는 서울'이란 전시가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1890년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문학작품에 나온 서울 관련 이야기의 주요 부분을 뽑아놓은 것이다. 그 중에는 에밀 마르텔의 '조선과 건축' 속 '경성 시가의 추억'(1937년), 염상섭의 '만세전'(1922년), 김승욱의 '서울 1964년 겨울'(1965년), 신동엽의 '서울'(1969년), 김훈의 '배웅'(2006년) 등이 포함돼 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서울시내 25개 구(區)의 지도를 그린 판넬에 각 지역 남녀노소 주민이 시공간을 뛰어넘는 이야기거리를 하나씩 소개하는 코너가 마련됐다.
■새롭게 재현되는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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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들의 각자 에피소드를 묶어놓은 시민기억책. |
이 프로젝트는 2013년 제1기 기억수집가 25명을 선발하면서 본격 진행됐다. 기억수집가는 지난해 제4기 29명을 포함해 모두 95명에 이른다. 서울문화재단은 해마다 '기억의 주제'를 설정하고, 기업수집가를 통해 수집·자료정리 활동을 벌인다. 이들 수집가는 활동시작 전 3개월간 필요한 소양교육을 받은 뒤 서울 곳곳을 찾아다니며 시민들의 오랜 기억을 채록하고, 사라질지 모를 서울에 관한 숨은 이야기들을 발굴해냈다.
이를 위해 재단은 이야기 제공자와의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는 '메모리 스튜디오', 그리고 노년층 등 이야기 제공자가 있는 곳을 직접 방문하는 '메모리 버스'도 운영하고 있다.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후세에 남기고 싶다면 이곳 스튜디오를 찾아와 육성으로 직접 녹음할 수도 있다.
재단은 이렇게 수집된 자료와 녹음된 이야기들을 '메모리 인 서울'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고 시민들이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놨다. 게다가 청취자들의 편리를 위해 전체 이야기 내용들을 지역별, 시대별, 주제별로 정리해 공개하고 있다.
이들 이야기 자료는 그동안 삽화·웹툰으로 제작됐고, 다큐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방송을 타기도 했다. 재단은 또 '서울을 기억하는 세 가지 방법-서울의 아픔 삼풍백화검, 서울의 추억 동대문, 서울의 환희 2002월드컵' 이라는 주제를 통해 팟캐스트를 진행했다. 이와 별도로 전시회, 창작판소리 등으로 재탄생시켰다.
지난해에는 '1995년 서울, 삼풍' 구술집을 발간했는데, 지난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주관하는 2016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수상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은 15명의 기억수집가가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의 당사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기록을 담은 것이다. 약 10개월 동안 전국을 돌면서 만난 108명의 관련 사례 중 59명의 구술이 담겼다.
서울문화재단은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6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은 기억이 많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서울의 오랜 기억들은 수많은 개발과 함께 떠내려갔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서울과 서울시민의 삶을 동시대 우리의 목소리로 기록하고 함께 들으며 공감하는 역사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구시영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