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다. 스토리에 텔링(telling)을 활용한 기법으로 새로운 가치와 파워를 창출하고 돈도 만들어낸다. 각 분야에서 이야기를 발굴해 입히고 콘텐츠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다. 이야기가 없는 자원·상품으로는 차별화와 경쟁력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지와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는 국내 스토리텔링 우수사례를 탐방하고 그 내용을 3차례로 나눠 싣는다.
- 사용 않는 수도가압장 인근
- 윤동주 하숙집 가까워 착안
- 산책하며 걷던 시인 향기 덧입혀
- 문학관으로 개조 시집 등 전시
- 뒤편 산책길 조성 관광자원화
- 많을 땐 하루 1000명 찾기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 자락의 '윤동주 문학관'. 도시철도 경복궁역 버스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15~20분 가면, 창의문로의 오르막길 왼쪽 도로변에 문학관 건물이 나온다. 이곳은 2012년 7월 문을 연 이래 서울시민뿐 아니라 내외국인들이 찾아오는 '작은 명소'가 됐다. 지난해 2월 윤동주(1917~45)를 다룬 영화 '동주'가 개봉된 이후 방문객들이 줄을 잇고 그 존재가치도 더욱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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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문학관' 제1전시실은 시인의 순결한 시심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
■어떻게 탄생했나
이 문학관이 생긴 배경을 살펴보면 흥미롭고 의미가 깊다. 문학관 건물은 애초 청운동 지역의 수도가압장이었다. 인근 고지대 주민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려고 물탱크에 저장된 물을 펌프로 압력을 가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노후 아파트 등의 철거에 따라 수도가압장 시설은 2008년부터 그 기능이 없어졌다. 이렇게 버려진 가압장이 어떻게 윤동주 문학관으로 재탄생하게 됐을까.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와는 출생 연고가 없는 이곳에 그의 문학관이 들어섰다는 점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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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으로 꾸며진 문학관 외관. 종로문화재단 제공 |
윤동주는 1941년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1938년 입학)에 다니던 시절,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 종로구 누상동에 있던 소설가 김송(1909~88)의 집에서 문우(文友) 정병욱과 함께 하숙생활을 했다. 당시 하숙집과 현재의 문학관이 같은 지역에 있었던 셈이다. '별 헤는 밤'과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등 윤동주의 대표작들은 이 시기에 작성됐다.
이런 사실에 주목한 종로구 등은 수도가압장을 개조해 윤동주 문학관으로 만들어냈다. 개관 이전에도 2009년부터 가압장 바로 뒤편 산길에 '윤동주 시인의 언덕길'을 조성해 시 낭송회와 문학둘레길 걷기대회 등을 열어왔다. 시인 윤동주의 정신 및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이곳과 언덕길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문화콘텐츠화하고 관광지로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 문학관 관계자는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 많을 때는 하루에 1000명 정도에 이른다"고 말했다. 전국 각지에서 오는 학생 수학여행단의 방문 코스로도 자리를 잡고 있다.
■문학관 내부 전시실
윤동주 시인에 대한 각종 자료가 배열돼 있는 전시대.
서울시 건축상(2014년) 대상을 수상한 이 문학관은 흰색 외벽에 전체 면적이 219㎡(약 66평) 정도로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윤동주의 숨결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정문 입구 벽에 교복을 입은 청년 윤동주의 얼굴과 그의 시 '새로운 길'이 새겨져 있다.
무료 입장인 문학관은 모두 3개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우선 '시인채'로 불리는 제1전시실은 시인의 순결한 시심(詩心)을 상징하는 순백의 공간이다. 9개의 전시대에는 각종 사진자료와 친필원고가 있는데, 시인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배열했다. 시인이 1944년 일본 교토지방재판소에서 독립운동 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판결문, 그의 재학시절 학적부 등이 눈길을 끈다. 친필원고는 원본이 아닌 영인본(影印本)이라고 한다. 전시실 한쪽 벽에는 시인이 생전에 즐겨 읽던 시집과 책들의 표지가 걸려 있다. 또 중앙부에는 시인의 고향인 길림성 용정에서 가져온 나무로 만든 우물(모형)이 있고, 그를 둘러싼 유리벽에는 '자화상'이 적혀 있다.
폐기된 수도가압장을 윤동주 문학관으로 개조한 것은 '자화상' 시 속에 나오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그래서 당초 물탱크였던 제2전시실은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해 중정(中庭, 집 안의 건물과 건물 사이 마당)으로 만들었고, '열린 우물'이라 명명했다. 물의 흔적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 있어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을 느끼도록 해 준다고 문학관 측은 설명했다. 또 하나의 물탱크였던 제3전시실은 원형 그대로 보존해 '닫힌 우물'로 이름지었다. 침묵하고 사색하는 공간으로 조성된 이곳에서는 윤동주의 일생과 시 세계 등을 담은 영상물이 상영된다. 특히 이곳은 윤동주가 일제에 의해 숨을 거뒀던 후쿠오카 형무소의 감방과 차가운 복도를 연상케 한다.
윤동주 문학관 측은 수도가압장과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세상사에 지쳐 타협하면서 비겁해지는 우리 영혼에 윤동주의 시는 아름다운 자극을 줍니다. 그리하여 영혼의 물길을 정비해 새롭게 흐르도록 만듭니다. 윤동주 문학관은 우리 영혼의 가압장입니다."
종로구와 종로문화재단은 시인의 삶과 문학작품을 기리기 위한 윤동주 문학제를 2014년부터 문학관과 시인의 언덕 등에서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행사에서는 윤동주 시인을 주제로 한 스마트폰 영화제를 비롯해 제2회 전국 윤동주 창작음악제, 제3회 전국 청소년 윤동주시화공모전 및 전시회, 영화 '동주' 상영회, 윤동주 캐리커처 그리기, 윤동주 시인 체험 이벤트 , 야외공연 및 시 낭송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 2015년에는 이곳에서 감성문화콘서트도 개최해 관심을 모았다.
구시영 선임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