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은 2017년 새해 발품 파는 뉴스인 '현장과 사람' 코너를 신설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사회1부 정철욱 기자의 부산 촛불집회 자원봉사 체험기입니다. 병신년부터 정유년까지 '1박2년' 동안 진행된 '송박영신' 촛불집회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뒤에서 묵묵히 준비한 이웃들을 담았습니다.
- 10대 포함 100여 명 봉사자
- 31일 구획 나눠 집회 질서유지
- 피켓, 사직 '봉다리'만큼 인기
- 日영사관까지 행진 시작되자
- 분주하게 쓰레기 회수 작업
- 새해 첫날까지 소녀상 지켜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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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박영신'을 주제로 지난달 31일 부산진구 서면에서 열린 제9차 부산시국대회에서 정철욱 기자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정 기자는 참가자들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까지 행진한 뒤 1일 새벽까지 소녀상 옆을 지켰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2017년 1월 1일 0시 무렵. 부산 동구 일본 영사관 후문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은 외롭지 않았다. 병신년에서 정유년으로 넘어가는 '1박2년' 동안 많은 국민이 찾아와 목도리를 해주고 따뜻하게 안아줬기 때문이다. 혹시 모를 소녀상 기습 철거나 파손을 막기 위해 추위에도 자리를 지키던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 활동가 얼굴에도 온기가 퍼졌다.
"소녀상은 아직 '불법 딱지'를 떼지 못했어요. '공공조형물'로 인정받을 때까지 우리가 지켜야죠. 결국은 이길 겁니다." 소녀상 옆에서 떡을 나눠주던 40대 남성의 말이다. 이날 오후에도 해맞이를 하고 소녀상이 '안녕한지' 확인하려는 발걸음이 이어졌다. 누군가는 소녀상의 손에 순백의 목화솜 다발을 놓았고 다른 누군가는 시린 발을 목도리로 감쌌다.
기자는 지난해 12월 31일 부산진구 서면에서 열린 '송박영신(박근혜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다) 제9차 부산시국대회' 자원봉사자로 참가해 1일 새벽까지 소녀상을 찾는 이웃들을 만났다.
31일 오후 3시 쥬디스태화 앞 중앙대로. 벌써부터 자원봉사자들이 도로 곳곳에 구획을 나누고 있었다. 기자는 경광봉을 들고 통행로를 확보하는 일을 맡았다. 피켓은 사직야구장에서 나눠주는 '봉다리' 만큼이나 인기였다. "예쁜 사람한테만 주는 거예요" 라며 피켓을 쥐여주는 자원봉사자 최모(45) 씨의 모습에서 능숙함이 묻어났다.
최 씨는 지난해 4월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하는 전단을 배포한 혐의(명예훼손)로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지만 한 번도 자원봉사를 쉬지 않았다. "벤치에 전단을 잠깐 둔 적이 있어요. 잊고 지냈는데 경찰이 조사받으러 나오라고 연락이 왔어요. 알고 보니 나를 찾으려고 승용차 블랙박스 영상까지 뒤졌더라고요. 그렇게까지 할 일인지…. 빨리 세상이 바뀌었으면 합니다."
집회가 시작되자 중앙대로는 금세 꽉 찼다. 자녀와 함께 온 한 40대 남성은 기자에게 "이쪽에는 왜 모금함이 오지 않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모금함이 도착하자 자녀에게 5만 원권을 쥐여주고 넣게 했다. 추위가 몰려와 '장갑이라도 가져올걸' 후회하는 찰나 자원봉사자 이준혁(26) 씨가 말을 건넸다. 이 씨는 "힘들어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웃들이 가족의 팔짱을 끼고, 친구와 어깨동무를 하고, 연인과 손잡고 나온다. 그들이 원하는 건 특별한 세상이 아니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다. 내가 완벽하게 그리던 정치 이상"이라고 말했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초등학교 6학년인 최혁준(12) 군도 있었다. 최 군은 모금·질서유지·홍보물 배포까지 안 해본 일 없는 베테랑이다. '토요일에 집에 있을 거면 학원 한 곳 더 보낸다'는 아버지의 으름장을 피해 자원봉사를 하게 됐단다. 기자가 "여기서 어른들이 하는 말 알아듣니?"라고 하자 막힘없이 이슈들을 풀어냈다. 함께 있던 6학년 조모(13) 양도 "최순실이 대통령을 등에 업고 대기업한테서 돋 뜯어냈다"고 보탰다.
일본영사관까지 거리행진이 시작되자 자원봉사자들도 바빠졌다. 종량제 봉투를 가지고 다니며 쓰레기를 주워 담고 무대도 철거했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구호를 따라 하던 자원봉사자 최지웅(45) 씨는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버틸까요? 1000만 명이 주말 반납하고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데…. 올해는 정말 정의롭고 공정한 나라가 됐으면 합니다."
이날 부산시국대회 자원봉사자는 80여 명. 많을 땐 100명을 넘기기도 한다. 권성하 자원봉사단장은 "오는 7일 자원봉사단 신년회를 여는데 다 올까봐 걱정"이라며 농을 던졌다. 기자는 '송박영신 촛불'이 타는 내내 울컥했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부산이 자랑스러웠다.
정철욱 기자 jc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