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안리 청소 외국인 모녀
- 신평 아파트 암 투병 돕기
- 촛불집회 현장 자원봉사
- 오토바이로 길 연 울산 맘
- 버스서 60대 살린 간호사
칠흑처럼 어두웠던 병신년(丙申年)이 저물어간다. 장기 불황에 '청와대 게이트'까지 무엇 하나 반가운 소식이 없었던 2016년. 부산 경남은 조선업 불황에 더 한숨지어야 했다. 하루도 버티기 힘들었던 국민을 웃음 짓게 하고 버틸 수 있게 도와준 힘은 우리의 이웃이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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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군 곰내터널 영웅들. |
미국인 디아나 루퍼트(여·37) 씨는 지난 10월 5일 태풍 '차바' 내습 때 엉망이 된 광안리해수욕장을 청소했다. 큰딸 피오나(12)와 작은딸 스텔라(5)도 해초와 플라스틱병을 주웠다. SNS에 사진으로 올라온 세 이방인의 모습에 누리꾼들은 감동했다. 부산국제외국인학교 교사인 루퍼트 씨는 "큰딸이 '엄마, 광안리는 우리 동네잖아요. 우리가 치워요'라고 했다"며 웃었다. 세 모녀는 부산 수영구의 '자랑스러운 외국인 주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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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으로 엉망이 된 광안리 해변을 청소한 디아나 루퍼트 씨와 두 딸. |
지난 9월 2일에는 곰내터널의 영웅이 등장했다. 김호신(63) 씨 등 11명은 빗길에 넘어진 유치원 버스의 유리창을 깨고 21명의 아이를 구했다. 함진우(37) 씨는 놀란 아이들을 달래고 노래도 불러줬다. '부산아재' 신황수(50) 씨는 "그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든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은 곰내터널의 제한 속도를 시속 80㎞에서 70㎞로 낮췄다.
폭염에 고생하는 이들에게 시원한 물을 제공한 '냉수 천사'도 감동을 안겼다. 부산 부산진구 럭키아파트 주민 이재형(56) 씨는 경비실 앞 아이스박스에 매일 생수를 채워 넣었다. 환경미화원·택배기사·경비원들을 위해서였다. 냉수 기부는 전국 100여 곳으로 퍼져 나갔다.
암 투병 중인 아파트 환경미화원을 위한 모금운동도 펼쳐졌다. 지난 8월 부산 사하구 신평동 한성임호아파트 주민 강영애(여·57) 선은미(여·55) 김임선(여·56) 씨는 환경미화원 이정자(여·70) 씨가 대장암과 간암 4기로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217세대를 일일이 방문해 이틀 새 311만3000원을 모아 이 씨에게 전달했다.
묵묵히 역사의 현장을 지킨 이도 많았다. 부산 촛불집회에는 매주 40~90명의 자원봉사자가 등장했다. 사회복지사인 차정용(33) 씨는 지난 11월 5일 1차 촛불집회부터 방송용 전기선 설치와 질서유지를 도맡았다. 차 씨는 "국민의 의무를 하는 것"이라고 겸손해했다.
지난 9월 6일에는 오토바이를 탄 여성이 '모세의 기적'을 연출했다. 이재현 소방관의 아내 최의정(32) 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울산시 중구 장현동에서 산모를 태운 구급차가 퇴근길 차량들에 막혀 꼼짝도 못하는 것을 봤다. 최 씨는 정차된 차들의 유리문을 일일이 두드리며 길을 양보해 줄 것을 요청했다. 차들이 조금씩 이동해 길이 열리면서 산모는 무사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지난 2월에는 정다슬(여·23) 간호사가 퇴근길 버스에서 심정지로 쓰러진 60대 남성을 심폐소생술로 살려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