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시간 대치하다 13명 연행
- "아픈 역사 외면" 거센 반발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하려는 시민단체와 동구청·경찰이 5시간 동안 충돌했다.

	28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에서 '평화의 소녀상' 설치를 시도하며 연좌농성을 벌이던 시민단체 회원이 동구청 직원들이 끌어내려는 소녀상을 부둥켜 안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미래세대를 위한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원회(이하 소녀상 추진위)'는 28일 낮 12시30분께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인도에 위안부 소녀상을 설치했다. 앞서 소녀상 추진위는 이날 오전 11시 동구청 앞에서 소녀상 설치를 불허한 박삼석 동구청장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동구 정발장군상 앞에서 열린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반대 수요집회에 참석했다. 집회를 마친 이들은 일본영사관 앞 인도에 소녀상을 설치했다.

애초 소녀상 추진위는 오는 31일 오후 9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동구청이 '소녀상은 도로 점용허가 대상이 아니다'며 공무원 수십 명을 동원해 야간 당직 근무까지 서며 소녀상 건립을 막자 일정을 앞당겨 이날 설치를 강행했다.

소녀상이 설치되자 경찰은 즉각 1000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추진위 측 200여 명과 대치를 이어갔다. 소녀상 추진위 측이 구청의 소녀상 철거를 막기 위해 소녀상 주위를 둘러싸면서 한때 일본영사관 앞 일대가 극심한 혼란을 빚기도 했다.

동구는 소녀상이 설치된 지 약 5시간이 지난 오후 5시께 구청 인력을 투입해 소녀상을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철거에 반대하던 추진위 측 13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소녀상 추진위는 동구가 소녀상을 구청으로 옮기자 이날 밤늦게까지 구청 앞에서 소녀상 반환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부산겨레하나 김미진 운영위원장은 "동구가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자임한 것 같다. 어떻게 소녀상을 철거할 수 있느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난 3월부터 부산시민들의 염원으로 만들어진 소녀상을 부정하는 동구는 반성하고 소녀상을 당장 반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100여 개 노동·시민단체가 참여한 '박근혜정권퇴진 부산운동본부'는 매일 서면에서 열리던 촛불집회 장소를 정발장군 동상 앞으로 옮겨 '평화의 소녀상 촛불집회'로 진행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박삼석 청장과 동구 공무원은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비판했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양미숙 사무처장은 "일본의 눈치를 보느라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역사까지 외면하는 동구는 더 이상 소녀상 설치에 불응하지 말고 전향적인 자세로 소녀상 설치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 20일 소녀상 설치에 대해 "정부 입장과 맞지 않는다. 매우 유감이다"라고 밝혔다. 일본영사관도 최근 동구에 공문을 보내 '소녀상 절대 불가' 방침을 전달했다.

동구는 강제철거한 소녀상을 보관하다 당초 소녀상 추진위가 제막식을 가질 예정이던 31일이 지난 후 돌려줄 예정이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