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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낙동강 하구 스토리 여행 <6> 을숙도 주변 문화지도- 내사랑 을숙도, 추억의 돛을 달고

바닷길 잃은 강, 철새 떠난 섬…남은 갈대만 서럽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12-25 19:47:19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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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치 있는 갈대밭과 철새떼
- 시·소설·영화의 단골소재 각광
- 하굿둑 건설로 자연 훼손되자
- '원형상실' 성찰의 장소로 주목

- 요산 김정한 '모래톱 이야기'
- 소설가 이문열의 '하구'
- 세밀한 묘사로 지역성 그려낸
- 대표적 향토문학으로 꼽혀

을숙도는 문학의 섬이다. 을숙도의 독특한 풍경과 운치는 그 자체가 시(詩)가 될만큼 대단한 아우라를 품고 있다. 그 때문에 문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고 시와 소설의 단골 소재가 되었다. 하굿둑이 들어선 후에는 자연훼손, 원형 상실을 성찰하는 상징적 장소로서 주목받았다.
갈대밭과 해질녘 철새들의 군무가 일품이었던 을숙도는 과거 영화촬영지, 시·소설 등 문학의 무대 등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1987년 하굿둑 완공과 함께 을숙도는 옛 모습을 잃었다. 박수정 사진작가
문학과 영화는 통한다 했던가. 을숙도 갈대밭은 한때 영화촬영지로 인기를 끌었다. 해질녘 붉게 물드는 서녘 하늘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군무는 지상에서 찍을 수 있는 최고의 영상이었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갈대밭이 있었다.

을숙도는 문학의 무대로 더욱 각광받았다. 많은 시인들이 을숙도에서 그리움의 근원을 찾고, 사랑을 부르며 위안을 얻거나 상처를 받는다.

'우리가 물이 되어 흐른다면/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녁엔/ 깊어가는 강물로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강은교의 <우리가 물이 되어> 부분

강이 물이 되어 부끄러운 처녀인 바다를 찾아가는 마지막 배웅지가 을숙도다. 바다에서 소멸의식을 치르고 다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고 약속하는 마중 장소 또한 을숙도를 낀 낙동강의 하구다. 여기서 하구(河口)는 바닷물을 마중하는 '강의 입'이다.

하굿둑이 들어선 뒤 강은 바다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 시인은 조용히 옛 영화(榮華)를 떠올린다. 영화(映畵)는 종영되어 추억이 되었는데, 그리움은 영화로 되살아난다. 시인은 예전 영화관에서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상영되던 애국가의 한 화면을 추억하고, 다시 그것을 뼈아프게 반추한다. 날아가버린 새들을 부르는 주문처럼.

'옛날 영화에서 봤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애국가가 울려날 때/ 허공을 가르며 비상하는 새떼,/ 새떼들의 을숙도 그 푸른 날개 짓을 기억한다…/ 화면을 가득 메우고 날아오르던 새떼들/ 지금은 어느 하늘을 떠돌까/ 을숙도에 와서 자꾸 을숙 을숙,/ 그 새들의 안부가 궁금하고 궁금하다' -박남준 <을숙도 그 옛날 영화> 부분

영화가 끝났는가. 시인은 석양에 젖어 눈시울을 붉힌다. 갯벌이 붉게 물들고 마음이 발개진다. 새들이 떠난 갯벌에 쓸쓸함이 나부낀다.

'석양 때도 아닌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마음은 자꾸 갯벌처럼 빠지고/ 나는 왠지 슬퍼져서/ 알고 있는 새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그 많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강은 말이 없고/ 갈대들만 갈데없이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습니다.// 을숙도가 아니라 얼룩도 같고/ 도래지가 아니라 도태지 같습니다…'. -천양희 <을숙도에서> 부분

을룩도, 도태지라니! 훼손된 자연을 위로하는 언어가 조롱 또는 비아냥거림이어야 하는 현실이 아프다. 새들이 떠난 을숙도에서 시인은 눈시울을 붉힌다. 그리고 조용히 바라본다. '새의 길이 하늘의 길임'을 알고 다시 눈시울을 붉힌다.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어깨 들썩이며 붉게 우는 것 뿐인지 모른다. 1987년 하굿둑 완공과 함께 을숙도는 옛 모습을 잃었고 시인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이는 을숙도 문학의 상실을 의미한다. 을숙도의 영화를 되살리는 문학제(文學祭)라도 열어야 할 것 같다.

■요산 김정한과 을숙도

을숙도는 시 못지 않게 소설 무대로도 활용됐다. 대표적인 작품이 요산 김정한의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다. 교과서에 실려 있을 만큼 널리 읽힌 작품이다.

1936년 소설 '사하촌'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한 요산은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1940년 절필, 공백기를 거쳐 1966년에 문단에 복귀한다. 꺾은 붓을 26년 만에 다시 세워 써낸 작품이 '모래톱 이야기'다. 그때 나이가 58세. 다가오는 황혼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후 요산은 '유채' '수라도' '뒷기미 나루' '산서동 뒷이야기' 등 가슴에 저며둔 이야기들을 활화산처럼 뿜어낸다. 당시 요산의 관심은 애오라지 낙동강이었다. 강변 '따라지(민초)'들의 간난과 애환, 짓눌림은 요산의 발성을 통해 낙동강을 타고 흘러갔다.

요산은 평생 부산을 벗어나지 않았다. 문단과 재야의 '언덕'이 되어 전국 대표 자리를 맡고 있을 때나,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의 선봉으로 활동할 때도 그의 눈빛은 지역을 향해 있었고 낙동강에 쏠려 있었다.

문단의 평가를 모아보면, 그는 인정 많은 '부산 싸나이'였다. 문학평론가 김중하(전 부산대 교수)는 요산의 정신을 '정의와 포용' 두 단어로 정리한다. 요산을 저항적 작가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며, 그에겐 저항을 뛰어넘는 인간적 너그러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대표작 '모래톱 이야기'는 소외계층인 이 땅의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삶의 애절함과 그 비극을 그렸다. 이 소설은 한 교사가 낙동강 하구의 가난한 섬마을인 '조마이섬'에서 살아가는 건우라는 가난한 제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액자소설이다. 부당하게 땅을 빼앗고 섬을 집어삼키려는 유력자에게 저항하는 한 농민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한다. 이 작품을 민중소설, 농민소설로 보는 이유다.

소설 속의 '조마이섬'은 어디를 말하는 걸까? 작품을 잠깐 들여다보자. '이 고장 사람들이 젖줄같이 믿어 오는 낙동강 물이 맨들어 준 우리 조마이섬…. 낙동강 하류의 삼각주 일대가 대개 그러하듯이, 이 조마이섬이란 데도 부락을 이루고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집 두 집 띄엄띄엄 땅을 몰고 있을 따름이었다…. 아침 저녁 그 속에서 갈밭새들이 한결 신나게 따그르르 따그르르 지저귀어 대면 머잖아 갈목도 빠져 나온다.'

요산은 조마이섬에 대해 똑부러지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해서 해석이 분분했다. 어떤 특정한 섬이 아니라 낙동강 하구의 조막만한(자그마한) 섬, 강서구 조만포의 어느 섬, 상상 속의 모래톱 등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작가는 바로 이 점을 노렸을 수도 있다. 소재를 중의적으로 활용하는 장치가 그것이다. 생전에 요산은 문단 후배들과의 모임에서 조마이섬에 대해 이렇게 술회한 적이 있다. "몇 해 전에 어느 신혼부부로부터 '모래톱 이야기' 속의 조마이섬으로 신혼여행을 가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지. 그런데 여러 관공서에 문의해도 조마이섬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는 거라. 그때 내가 일러줬지. 조마이섬은 실재의 섬은 아니지만 모델은 을숙도와 일웅도라고!"

'낙동강 파수꾼'으로 불리며 평생 낙동강 곁에서 살았던 요산이 을숙도의 자연성과 그 곳에 사는 농민들의 현실을 외면했을 리 없다. 요산은 대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민중의 삶의 권리를 극적으로 표출하는 방법으로 '조마이섬'을 끌어왔을 것이다.

실제로 을숙도의 당시 상황도 소설 속 설정과 비슷하다. 눈여겨 볼 것은 '모래톱 이야기'의 주제의식이다. 소외지대 사람들의 비극적 삶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은 끝난 게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개발을 명분으로 유력자는 잇속을 챙기고, 민중들은 삶의 터전에서 내쫓기는 것이 현실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권력이 자본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을숙도에 가면 지금도 요산의 숨결이 느껴진다. 갈밭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에 요산의 문학정신과 올곧은 일갈이 북소리가 되어 가슴을 울린다. '사람답게 살아가라. 비록 고통스러울지라도 불의에 타협한다든가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이 갈 길은 아니다'. 요산이 자신의 소설 '산거족'에 쓴 문장처럼, 그의 정신은 이제 낙동강을 따라 바다가 되었다.

■이문열이 그린 을숙도와 하단포

을숙도는 1990년대에 부산시의 쓰레기매립장으로 사용됐다. 사진은 당시 쓰레기 매립지의 콘크리트 벽 일부로, 그 모습이 현재 을숙도에 보존돼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이문열의 연작 소설 '젊은 날의 초상'(민음사, 1981) 1부에 수록되어 있는 '하구(河口)'는 놓쳐서는 안될 낙동강 문학목록이다. 이 작품은 한 청년의 내적 고뇌를 담은 성장 소설로, 주인공인 '나'가 몇 년간 방랑하다가 강진(江盡)이라는 곳에서 열 달 남짓 체류하게 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작가 스스로 "이 책처럼 내 삶과 밀착된 것도 드물다"고 밝힐 정도로 이 소설은 현장감있게 전개된다. 소설의 배경인 '강진'은 '강이 끝나는 지점'을 뜻하며 오늘날의 하단포 일대를 가리킨다. 소설 도입부를 보자.

'…강진은 이름처럼 낙동강이 다하여 남해 바다와 합쳐지는 곳에 자리잡은 포구로, 마을 앞을 흐르는 것은 넓은 대로 아직 강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물은 거기서부터 육십 리 상류까지 이미 소금물이었다. 행정구역으로는 그 무렵 갓 직할시가 된 부산시에 속해 있었는데 대도회의 일부라는 표지는 겨우 잊을 만하면 나타나던 시내버스 정도였다.'

소설 속의 시간은 부산이 갓 직할시가 된 즈음이니 1963년 이후가 될 것 같다. 이 소설이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란 사실을 감안하면 소설 속 화자의 나이로부터 당시의 무대와 정황을 대략 읽을 수 있다. 실제로 이문열은 1965년 안동고를 그만두고 3년 간 방랑하다가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학력고사를 치른 뒤 1968년에 대학에 입학한다.

이러한 이력은 소설 속 '나'의 상황과 아주 비슷하다. 이렇게 보면 소설 속 시간은 1966년 전후로 추정할 수 있다. 행정구역이 부산시였다는 것과 그곳이 '강진'이라는 정보는 하단포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 강진이라는 작은 포구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분위기가 생생히 묘사되고 시기가 어느 정도 드러나니, 그 당시 하단포의 모습을 그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소설 속에는 낙동강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시온섬' 이야기도 나온다. 시온섬은 하단 포구 앞에서 신평의 낙동강 안으로 길게 뻗은 삼각주로, 하단 포구와는 좁은 물목 샛강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온통 갈대밭으로 덮힌 낭만의 섬이었다. 이 섬은 '종(種)의 합성'을 연구한 우장춘 박사가 일본에서 들여온 씨없는 수박을 시험재배해 성공시킨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시온섬은 해방 직후 미군정 당시 부산부윤(현 부산시장)이던 양성봉의 누나 양할란이 괴정 대티고개 인근에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원생들을 데리고 하단포 앞 모래톱에다 갈대밭을 개척해 얻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양할란 원장 사망 후 고마원이 없어지면서 시온섬도 다른 사람의 소유로 넘어갔고, 하단 본포박이들이 건너가 장삿집을 열게 된다. 그 후 에덴공원 아래에 있던 강나루, 대학촌 등이 입주하여 막걸리 거리로 성업을 이루지만 강나루 주점들은 하단포 개발계획에 따라 보상을 받고 흩어졌거나 다시 에덴공원 일대로 옮긴다. 정취 가득한 시온섬과 에덴공원 일대의 주점들도 하굿둑 공사와 함께 대부분 사라져 옛 이야기가 되었다.

이문열은 소설을 통해 '강진', 즉 '강이 다한 곳'이 '삶의 끝' '막장'이 아니라 낙동강이 바다를 만나는 경계, 낙동강이 중상류에서 끌고온 모래를 부려 삼각주라는 새로운 영토를 구축한 곳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강진은 '삶이 다시 시작되는 곳' '생성의 공간' '희망의 터전'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지역성과 향토성을 담아내면서 삶의 긍정을 유도하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박창희 스토리랩 '수작' 대표

공동기획: 부산광역시 낙동강 관리본부,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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