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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길 <14> 김해 화포천 아우름길

물억새·왕버들 벗삼아 걸으니, 솜털처럼 가벼워진 몸과 마음

  •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
  •  |   입력 : 2016-12-11 18:59:56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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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태학습관~어은마을~국궁장
- 총 14.3㎞ 중 핵심길 4.8㎞ 탐방

- 물억새로 지붕 만든 갈대집 운치
- 물안개 피어오른 새벽과 해질녘
- 왕버들군락 정취는 환상 그 자체

-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자주 찾아
- 환경 정화활동 힘쓴 일화 유명

한때 습지는 쓸모없는 땅으로 간주되면서 무차별적으로 매립돼 사라졌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생태계의 보고'이자 '지구의 허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습지는 보호해야 할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겨울이 깊어지는 12월 초순에 찾은 경남 김해시 한림면 화포천 습지. 머리에 노란 볏을 잔뜩 세운 물억새 군락이 바람을 타고 온몸을 흔들었다. 낙동강을 향해 뱀처럼 뻗어있는 화포천 습지는 '물억새의 땅'이다.

길을 걷는 동안 왕버들과 일본 황새인 '봉순이', 습지에 기대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한눈팔 사이 없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무렵, 어느덧 도회지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도 솜털처럼 가벼워진다.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느낄 적지(適地)다.
   
화포천습지 아우름길 구간 중 어은마을 부근에 다다르면 길 양옆으로 물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억새는 철새들에게 좋은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박동필 기자
■퇴래뜰과 왕버들 군락

화포천은 진영읍 대암산에서 발원해 22.5㎞ 흘러 낙동강 본류로 향하는 물길이다. 평소에는 'S'를 그리며 하류로 묵묵히 흘러가지만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화포천은 거대한 저수지로 변신한다.

화포천 아우림길은 습지 주변으로 길게 나 있는 14.3㎞의 오솔길을 말한다. 그러나 4~5시간의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이번에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화포천의 핵심만 볼 수 있는 생태학습관~퇴은마을~어은마을~국궁장~갈대집~생태학습관에 이르는 4.8㎞ 구간을 걸었다.

화포천 생태학습관에서 출발해 제방길을 따라 퇴은마을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10여 분을 걷자 둑 아래 왼편에 있는 습지는 철새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둑 오른쪽에 있는 퇴래뜰은 우렁이 등을 활용한 친환경농사를 짓는 곳이다.
   
퇴은마을을 지나가는 길에 들어서자 버드나무 일종인 왕버들이 장관이었다. 화포천 생태학습관 조미경(46) 교육팀장은 "왕버들 군락은 새벽녘에 보는 것이 제일 아름답다"며 "물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를 무렵이면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감탄사를 쏟기 마련"이라고 귀띔했다. 왕버들 군락의 비경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KTX'다. 동대구~창원을 쾌속 질주하는 KTX 노선이 화포천 옆을 지나가는데 해 질 녘 차창 밖으로 펼쳐진 왕버들군락은 환상 그 자체다. 어은마을에 이르자 나이 먹은 아름드리 버드나무군락이 마치 밀림 속을 걷는 착각을 일으킨다.

■노 전 대통령의 추억과 옛 화포나루

   
생태학습관 전경.
조 팀장은 화포천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들려줬다. 조 팀장은 "이곳은 한동안 쓰레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는 데다 악취까지 풍기는 곳이었다"며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귀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대통령이 쓰레기를 줍고 정화활동을 벌이면서 현재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됐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마대자루를 들고 쓰레기를 줍고 인근 공장으로 찾아가 폐수 방류 자제를 호소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한 사람의 올곧은 행동이 미래 세대에게 큰 자산을 물려줄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퇴은마을을 돌아 어은마을 어귀에 이르자 동행한 김민정(37) 해설사는 이곳에 옛 화포나루가 있었다고 들려줬다. 김 해설사는 "당시 화포나루 부근은 사람 팔뚝만 한 메기가 많이 잡혔고 나루터 주변에는 메기국 집이 즐비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옛 화포 나루터의 꿈은 끝난 게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부산시와 김해시가 관광 루트 사업으로 낙동강 뱃길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화포나루터가 복원될 날이 머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환점을 돌아 활을 쏘는 국궁장으로 향하자 인근에는 광활한 초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과거에는 수초와 철새들의 땅이었지만 어느 순간 사유지로 개간돼 소 사료를 재배하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해설사들은 "하루빨리 사들여 복원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물억새 군락의 향연

   
물억새를 엮어 지붕을 만든 갈대집 전경.
국궁장을 돌아 길을 거슬러 올라가자 오른쪽에 이색 가옥이 나타난다. 초가집을 닮은 이 집은 이곳에서 흔하디흔한 물억새를 엮어 지붕을 만든 갈대집이다. 한림면 장방리 갈대집(경남도 문화재 자료 제421호)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억새가옥이다.

김 해설사는 "이곳은 물억새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 집을 짓는 재료로, 철새들에게는 좋은 보금자리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 이전까지 주변에는 갈대집들이 촌락을 이뤘지만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이어 철새전망대와 잘 닦인 산책로가 나타났다. 땅거미가 질 무렵 출발점인 생태학습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습지를 건너는 작은 교량 아래에는 청둥오리들이 개구쟁이처럼 첨벙첨벙 뛰어놀고 하늘에는 매가 빙빙 도는 등 비경이 펼쳐졌다. 귀청을 찢는 울음소리에 이곳이 아득한 옛날부터 이들의 영토였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아쉽게도 최근 고병원성 AI(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되면서 화포천 주변 출입이 당분간 통제됐다. 다만 생태학습관과 그 주변은 제외돼 방문이 가능하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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