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어른 삼삼오오 모여 집회
- 시국 걱정하는 대화 일상 돼
-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정착

- 시장 배출한 스페인 시민정당
- 이탈리아 '오성운동' 돌풍 등
- 대표적인 시민 정치참여 사례

최순실 사태로 인한 촛불집회가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광장이 아닌 동네 단위에서 주민들이 촛불을 들고나와 시선을 끌고 있다. 부산에서도 벌써 한 달 전부터 마을주민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나가는 주민들 또한 그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참여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제는 정치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의 몫이 아니라, 주민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청와대 방향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횃불을 든 시위대도 함께 행진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처럼 정치에 관한 이야기들이 이제는 우리의 일상 공간으로 확산되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삼삼오오 모여 시국을 걱정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도 '풀뿌리 정치'(grass-roots politics)가 정착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풀뿌리 정치란 땅 아래 뿌리를 내려 싹을 틔워 올리는 풀과 같이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를 의미한다. 즉, 시민이 중심이 된 민주주의를 일컫는다(국제신문 2014년 6월 11일 자 21면 참조).

그렇다면 이와 같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주목할 만한 해외 성공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는 2015년 시민들이 만든 정당인 '바르셀로나 엔 코무'가 기존의 쟁쟁한 정당 후보자들을 물리치고 지방선거에서 시장을 배출했다. 시민들이 내세운 시장 후보인 아다 콜라우는 경력이 화려한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다가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결국 거리로 내몰린 한 가정의 평범한 주부였다.

문제는 당시 스페인에서는 비슷한 이유로 집을 잃은 서민들이 상당수였다는 것이다. 콜라우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시위를 시작했고, 집을 잃은 사람들의 편에서 싸워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바르셀로나 시장 후보에 출마했고,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당당히 시장에 당선됐다. 시민들이 만든 최초의 시장이자, 바르셀로나 최초의 여성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정치인 급구, 경력자 사절'이라는 독특한 슬로건을 내걸고 2009년 출범한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은 시민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를 목표로 하고 있다. 코미디언 출신인 베페 그릴로가 운동의 리더를 자처했다. 그릴로는 "정치는 직업이 아니라 일시적인 봉사"임을 강조하면서, 2번 연임한 정치인은 다시 출마하지 못한다는 규칙을 강조했다. 또한 시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공공수도, 지속가능한 교통수단, 지속가능한 개발, 인터넷 접속권, 그리고 생태주의'라는 다섯 가지 이슈를 발전시킨다는 취지로 '오성운동'이란 이름을 붙였고, 스스로를 정당이 아닌 운동단체임을 강조했다. 오성운동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탈리아를 변화시키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모으고 나누는 토론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2013년 총선 결과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영향력이 큰 정당으로 도약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출범한 지 4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지난 6월에는 사상 최초의 여성 로마 시장을 당선시키기도 했다. 주인공은 올해 37살의 여성 변호사인 비르지니아 라지다. 2700년 로마 역사상 최초의 여성 리더라는 역사적인 변화였다. 물론 그녀가 당선된 것은 여성이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로마 시민들의 삶에서 정말로 필요한 정책들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엔 코무'와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그들의 리더는 정치인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진 자가 아니라, 성난 시민들의 아우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시민들의 목소리는 국회 또는 의회에 전달될 수 있었고, 정치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 해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바로 이것이 시민이 참여하는 풀뿌리 정치의 가장 이상적인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로까지 촛불집회가 퍼지고 있는 2016년 대한민국 시민들에게도 이와 같은 풀뿌리 정치의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촛불을 들고 외친 메시지가 국회의사당과 시의회에서 심사숙고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보자.

박선미 사회자본연구소 대표

김정덕 한국언론진흥재단 부산지사 NIE 강사


■생각해 볼 점

평범한 이웃들이 대한민국의 정치를 바꾸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시민이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사례를 살펴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엔 코무'는 어떻게 평범한 주부를 시장으로 당선시킬 수 있었을까?

-이탈리아 '오성운동'이 2700년 만에 로마의 여성 지도자를 탄생시킨 비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