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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낙동강 하구 스토리 여행 <3> '단짝' 을숙도와 일웅도-그 섬은 새들의 낙원, 생명의 모태였다

강·바다가 만나는 경계 아닌 경계, 사람과 자연의 길 이야기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12-04 19:02:55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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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만년동안 침식·퇴적으로
- 하구의 모래톱 빚어낸 땅
- 만, 갯벌, 사주 되풀이하다
- 1987년 하굿둑 완공 지금의 모습

- 복원 위한 인공습지 만들고
- 에코센터 건립 교육문화 장으로
- 최근엔 매립장 리모델링 고심
- 세월따라 지형 바뀌어도
- 부산 생태계 마지막 보루

을숙(乙淑). 예쁜 여자애의 이름 같다. 코 흘리고 투정을 부려도 마음이 예쁠 것 같은 여자애. '을숙 을숙~'이라고 말하면, 한 무리의 새들이 몰려들어 집단시위를 하는 것 같다. 허공을 수놓는 아름다운 시위다. 강 하구의 평화로운 어느 모래톱이었을 것이다. 모래톱 위쪽으로는 강물이 부드럽게 쓰다듬고, 아래쪽으로는 바닷물이 다소 격하게 출렁됐을 것이다. 여기서 '을숙~' 하면 저기서 '을숙~', 자연스럽게 주고 받는 소리가 자연의 대합창으로 허공에 메아리쳤을 것이다. 장엄하고 가슴 벅찬 풍경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낙동강 하구에서 천혜의 요지로 꼽히는 을숙도는 원래 섬 상단부의 옛 일웅도와 따로 떨어져 있었지만 1987년 완공된 낙동강 하굿둑으로 인해 일웅도와 하나로 합쳐졌다. 사진은 강서구 명지동에서 본 을숙도 모습.

#섬 아닌 섬

새 을(乙) 맑을 숙(淑), 새가 많고 물이 맑은 섬. 을숙도의 한자 이름을 그대로 풀이하면 이 모래톱의 정체가 드러난다. 말 그대로 이곳은 새들의 지상 낙원이었다. 실제 그랬다. 1970년대 후반까지 개발의 삽날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을숙도는 동양 최대·최고의 철새도래지로 사랑받았다. 그곳은 자연 사랑의 도래지였고 희망의 살림터였다.

을숙, 자연이 생성한 이 여자애의 거처는 낙동강 하구 천혜의 요지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河口), 경계 아닌 경계, 섬 아닌 섬에서 을숙은 만남과 이별을 말하고, 사람의 길과 자연의 길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을숙도, 여자의 섬 바로 위에 남자 섬 하나가 있었다. 수로와 갈대숲, 적당한 경작지가 공존하던 운치 그득한 모래톱이었다. 이름이 씩씩한 남자 아이를 연상케 하는 일웅(日雄)이다. 강원도 태백에서 1300리를 흘러온 낙동강이 하구에 이르러 바다가 되는 지점이 일웅의 거처다. 갈대밭이 좋았고 강은 맑았고 재첩이 지천이었다. 문인들이 즐겨 찾았고 청춘 남녀들에겐 둘도 없는 데이트 장소였다. 1970년대까지는 영화촬영지로도 인기였다. 이 섬에서 요산 김정한의 명작 소설 '모래톱 이야기'가 태어났다.

을숙과 일웅…. 이름들이 재미있군, 결혼시켜 버릴까?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작당을 하고 두 섬은 결혼을 하게 된다. 원치 않는 결혼이 비극이 된다는 걸 몰랐던 걸까. 전대미문의 낙동강 하굿둑 공사가 시작되면서 두 섬은 인위적으로 맞붙게 되고 그 사이로 산업도로가 뚫렸다. 하구는 거대한 둑에 막혔다. 1980년대 초에 일어난 일이다.

이때부터 을숙, 일웅 두 개의 섬은 '을숙도'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통용되었고, 일웅도는 잊힌 존재가 되었다. 을숙과 일웅의 사랑도, 한숨도, 눈물도 모두 전설이 되었다. 나이 드신 어른들 중에 기억을 더듬어 일웅도를 기억하는 분이 있지만, 일웅도는 이제 세상의 지도에서도 사라졌다. 일웅도에게 미안하지만, 지금부터 이야기하는 섬도 을숙도라 호명할 수밖에 없다.



#급격한 해수면 변화

을숙도 상단부(옛 일웅도)에 조성돼 있는 둘레길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을숙도가 언제, 어떻게 형성됐는지는 정확히 드러난 게 없다. 낙동강 하구는 그 형성 과정이 복잡할 뿐만 아니라, 지금도 변화하고 있는 지형이다. 낙동강이 살아있기에 야기되는 변화다. 세계적으로도 이렇게 극심한 변화 모습을 보이는 곳은 드물다고 한다.

하구의 모래톱(삼각주)은 수만 년 동안의 홍수와 그로 인한 퇴적·침식작용이 빚어낸 땅이다. 오랜 옛날에는 낙동강의 형태와 주변 지형이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가야시대 때 낙동강 하구는 만(灣)이었다. 이른바 고(古) 김해만이다. 김해 봉황동 봉황대 앞은 가야시대의 선착장 자리로 드러나고 있다. 밀물이 되면 봉황대 항구에는 저 북방의 낙랑과 저 남쪽의 왜(倭), 그리고 낙동강 줄기 따라 들어선 가야 소국들의 배들이 진을 치고 각국의 사신들과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장을 펼쳤다. 철기를 납작하게 가공한 판상철부(板狀鐵斧) 꾸러미와 중국에서 건너온 화천(貨泉)이란 동전도 보인다. 가락국 초기에 김해는 국제무역항이었다.

김해 일대가 만(고 김해만)이란 사실은 고고학적 자료에서 드러난다. 김해시 장유면 수가리 패총의 단면과 예안리 고분의 지질 변화 및 인근 해식동을 조사해 보면 당시의 해수면은 지금보다 5~6m 높았다. 장유면 수가리 가동마을 패총은 시대별로 층을 이루고 있는데, 제5기 패총의 연대는 지금부터 1700~1900년 전에 형성됐다. 초기 철기시대의 패총인 것이다.

고 김해만은 김해 농소리, 회현리, 예안리 패총의 지역분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들 패총을 연결하면 김해 내만의 해안선이 그려진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 공주가 인도에서 김해에 이른 과정도 '고 김해만'을 설정해야 그림이 그려진다. 김해가 가야의 항구였다는 사실은, 김해 봉황동 유적지에서 나온 굴립주 같은 건물 흔적에서도 확인된다.

가야시대 때부터 1930년대까지 낙동강 본류는 지금의 서낙동강 쪽이었다. 일제가 낙동강에 일천식 제방을 쌓아 김해평야를 만들면서 낙동강 본류는 지금처럼 구포, 사상 쪽으로 흐르게 되었다. 물줄기의 변화는 지형과 생태 변화, 인간 삶의 변화를 불러왔다.

지질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낙동강 하구가 형성된 것은 약 2만 년 전으로 매우 추운 시기(뷔름 빙기)였다. 지층구조를 보면 현재의 김해평야에 자갈층이 먼저 퇴적되었고,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모래자갈층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바다의 높이, 해수면은 지금보다 110~140m 정도 낮았으며, 하구 일대는 일본의 대마도까지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지형이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하곡과 만입을 메우면서 두꺼운 충적층으로 변했다. 장구한 세월에 걸쳐 이해하기 힘든 대변화를 겪어온 셈이다.



#1900년초에 사람 살아

을숙도가 형성된 시기는 1900년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1861년에 발간된 대동여지도에는 지금의 삼각주 지대에 대저, 맥도, 명지도 그리고 칠점산 등의 하중도가 표시되고 있다. 남단에는 넓은 사빈이 형성되고 있으나 을숙도는 보이지 않는다. 이로 미루어 대저도 명지도 등 오늘날 낙동강 하구의 대삼각주들은 1861년 전후에 형태가 잡힌 것으로 볼 수 있다.

1910년대에 들어서면 크고 작은 갯골로 얽힌 을숙도가 남쪽을 향해 발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을숙도의 첫 출현이다. 또 명호도(명지) 앞에는 대마등이, 그 서쪽에는 진우도, 그 안쪽 내륙으로는 신호도가 각각 사주로서 등장한다. 명호도와 대마등 사이의 갯벌은 중간 부분이 홀쭉하게 들어가 면적이 좁은 반면, 대마등 동쪽은 을숙도 남단과 이어져 넓은 갯벌이 만들어진 모습이다.

요산 김정한의 소설 '모래톱 이야기'를 보면, 을숙도와 명호도에는 1910년대 전후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 같다. 1955년 위성지도에는 을숙도 주변으로 큰 갯골이 형성되면서 갯벌이 재조정되고 확대되어 가는 현상이 나타난다. 대마등 남쪽에 새로운 사주인 장자도가 등장하고, 진우도 주변에도 새로운 갯벌이 형성되고 있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 장자도와 을숙도 남단 사이에 새로운 사주인 신자도(일명 새등)와 백합등이 조성되고 진우도는 이전보다 규모가 확대된다. 이후부터는 시간이 갈수록 갯골의 폭이 커지면서 갯벌은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양상이다.

1980년대 낙동강 하굿둑 건설 시기(1983년 9월 착공, 1987년 11월 완공)에는 물막이 공사와 엄청난 하상 준설작업이 이뤄지면서 낙동강 하구 삼각주가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는다. 새로운 사주가 생기고 갯벌이 넓어진다. 1984년 백합등 남쪽에 새로운 사주인 도요등이 형성되고 명호도 남쪽으로는 복잡한 모습을 보이던 갯골이 매몰된다. 육상 퇴적물이 하굿둑에 막히고 바다 쪽에서 밀려든 토사가 새로운 사주를 만들었다.



1987년 11월 완공된 낙동강 하굿둑은 을숙도의 지형과 생태를 크게 변화시켰다. 일웅도가 을숙도에 통합되면서 전체 면적이 303만 ㎡(하단부 222만 ㎡, 상단부 81만 ㎡)로 늘어났다. 토지 소유는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 소유의 국유지(12필지)와 한국수자원공사 부지(17필지), 사하구청 부지(16필지) 그리고 사유지(1필지)로 구성돼 있다. 전체적으로 국·공유지가 대부분이다.

하굿둑 공사 후 을숙도 상단부(옛 일웅도) 중 13만6000㎡는 문화재보호구역에서 해제되어 관리·편의공간 등 시설이 들어섰고, 나머지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준설토 적치장 등으로 이용됐다. 그러나 2013년 4대강 사업과 함께 상단부 전체가 '을숙도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을숙도 하단부는 2000년 3월까지 파밭, 준설토 적치장, 쓰레기매립장(1993~1996년), 분뇨해양처리장(1992~2006년) 등으로 이용되었다. 부산시는 1997년 훼손된 을숙도를 복원하기 위해 대규모 인공습지(생태계)를 조성하였고, 2007년 7월에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를 건립해 교육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 후 인공습지에 갈대가 과다 번성하여 철새서식지가 점점 줄어들자, 인공습지를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하였고, 최근에는 쓰레기매립장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을숙도 생태계 복원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을숙도가 옛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었다고는 하나, 낙동강 하구 조류생태계로 보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00년 사이의 극심한 변화가 말해주듯, 을숙도는 낙동강과 영원히 함께 해야 할 자연유산이자 생태계의 보루다.

박창희 전 국제신문 대기자

공동기획: 부산광역시 낙동강 관리본부,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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