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원이 욕실서 발견
- 호텔방엔 술병 뒹굴어

박근혜 정부의 핵심 실세로 통했던 현기환(57)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검찰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를 앞두고 두 차례 자해했다. 현 전 수석은 '이영복 게이트'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 가운데 가장 많은 의혹을 받은 인물이다. 지난해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박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였지만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된 다음 날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결국 "엘시티 수사를 철저히 하라"고 했던 박 대통령의 지시가 오히려 최측근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30일 자해를 시도한 현기환(가운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 정철욱 기자

현 전 수석은 30일 오후 6시를 전후해 호텔 방 욕실에서 자해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손목 인대가 손상돼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행원이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욕실 바닥과 욕조에는 피가 흥건했다. 신고를 받은 호텔 간호사가 침대에 누워 있는 현 전 수석을 발견해 지혈한 뒤 붕대를 감는 등 응급처치를 했다. 당시 현 전 수석은 의식이 있었으며 상태를 묻은 간호사의 질문에 정상적으로 대답했다. 방에는 양주를 비롯한 술병이 다수 있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현 전 수석은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구급대원에게 "오늘(30일) 새벽 1시께도 자해했었다"고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 손목에 비교적 가벼운 상처가 1군데 더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구급대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는 것이다. 현 전 수석은 또 이날 오후 6시를 전후해 지인에게 전화해 흐느끼면서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곧바로 끊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 전 수석의 자해로 검찰의 수사 일정에 차질도 우려된다. 검찰은 전날 오전 10시 현 전 수석을 소환해 밤 10시까지 조사했다. 부산지검 고위 관계자는 "소환조사는 변호인 입회하에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됐다. 중간중간 휴식시간도 충분히 줬고 식사도 2번 했다"며 "현 전 수석의 변호인은 (현 전 수석이) 검찰 조사에 전혀 불만은 없었다고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오후 7시 정각께 현 전 수석의 사전구속영장을 부산지법으로 보냈다. 현 전 수석이 자해를 했다는 119 신고는 30분 앞선 오후 6시 29분께 접수됐다. 이 때문에 현 전 수석이 자신의 구속영장 청구 사실을 알고 자해를 시도한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현 전 수석은 자신이 엘시티 비리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은 것에 자괴감을 느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그동안 알려졌던 '알선수재' 외에 정치자금법 위반과 뇌물수수 혐의도 적용했다. 전날 현 전 수석을 소환한 검찰이 추가 조사 없이 다음 날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그만큼 혐의 입증에 필요한 물증과 진술 증거를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송진영 정철욱 기자 roll66@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