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 고향이자 낙향 후 터 잡았던 봉하마을
- 숲길 정비해 2가지 둘레길로

- 유년시절 꿈 키운 봉수대, 유명 달리했던 부엉이바위 등
- 그의 숨결·흔적 고스란히 남아

가을의 끝자락에 찾아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烽火山)은 주섬주섬 붉은색, 노란색의 저고리를 갈아 입느라 여념이 없었다. 봉화산은 해발 140m에 불과한 야트막한 산이다. 하지만 주변이 평야지대에 둘러싸인 까닭에 이 산이 제일 높아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 기능을 하기에 제격이었다. 왜적의 침입에 있을 때 남해안 저 멀리 가덕도, 녹산에 이어 릴레이식으로 횃불을 들어올려 한양에 알렸다.

산 몸뚱어리에 선명하게 새겨진 숲길을 따라 걸으니 산은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유년시절을 보내고 낙향 후 즐겨 찾았던 인연 때문인지 풀 하나, 바위 하나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뭇잎처럼 널려 있다. 그의 숨결과 흔적을 찾은 사람들은 이 숲길의 이름을 '대통령의 길'로 명명했다. 숲길을 따라가니 바람결에 그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오는 듯했다.

■출발지, 아픔 간직한 부엉이바위

봉화산에서 하산하는 길. 길 아래로 노 전 대통령이 유년시절 호연지기를 키웠던 낙동강이 한눈에 보인다. 박동필 기자

대통령길은 크게 1길(5.3㎞)과 2길(2.0㎞)로 나뉜다. 1, 2길 모두 노 전 대통령 묘역에서 출발해 정상인 사자바위를 둘러보고 원위치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엇비슷하다. 단지 2길이 1시간30분 걸리는데 비해 1길은 1시간이 더 소요된다.

1길은 정상에서 하산하면서 편백 숲길과 장방리 갈대집을 둘러보며 더 많은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이번 탐방에는 비교적 무난한 코스인 2길을 택했다. 묘역 주변 둘레길 초입은 최근 완공된 숲 공원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깔끔하게 정돈된 공원을 지나 둘레길에 접어들기 무섭게 머리 위로 가슴을 내밀고 서 있는 거대한 바위산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부엉이바위'다.

해발 90m에 불과한 이 바위는 낙향했던 노 전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했던 곳으로, 이곳을 찾는 탐방객들을 숙연하게 만드는 곳이다. 무거운 분위기에 눌린 탓인지 가볍게 묵례를 한 뒤 지나가기도 한다. 부엉이바위라는 이름은 한때 이곳에 많이 서식했던 부엉이들이 울음을 쏟아내던 곳에서 유래됐다.

목도로 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자 숲 여기저기에 피어난 순백의 장군차 꽃잎들이 눈길을 끈다. 노 전 대통령이 귀향 후 이곳에 심었다고 해설사가 알려줬다. 장군차는 2000년 전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후가 가야에 시집오면서 배에 싣고 와 전파한 김해지역 특산종으로, 대한민국 명차로 유명하다.

■소년 노무현의 유년과 추억

10분여를 오르면 길 왼쪽에 500㎡(150여평) 남짓 되는 너른 공터가 나타난다. 공터 한 켠에는 두 개의 거대한 바위 사이로 입구가 있는데 비가 올 때 어른 5, 6명이 거뜬하게 비를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생태해설사 임점향 씨는 "이곳은 옛 사찰 터로 노 전 대통령의 유년시절 추억이 깃든 곳"이라며 "노 전 대통령은 생시에 '근처에서 친구들과 놀이를 하며 지내다가 갑자기 비라도 쏟아지면 이곳으로 피신했다'고 종종 말했다"고 일러줬다. 평소 노 전 대통령은 하루 3, 4번이나 봉화산에 올랐다고 한다. 임 씨는 "낙향 후 대통령께서는 유년시절 고무신을 신고 산을 올랐으며 바위를 타고 칡도 캐 먹은 일들을 회상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소나무 숲길에 다다르자 진득한 향기가 콧속을 후볐다. 녹색잎을 팔랑거리는 키 큰 떡갈나무는 미끈한 다리를 뽐내며 탐방객 일행을 반겼다. 발 밑으로는 뾰족한 가시가 돋친 야생 밤송이와 도토리가 굴러다녔다. 올겨울 청설모나 다람쥐들이 끼니 걱정 없이 동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30여 분 동안 산중턱을 오르자 저 멀리 봉수대(사자바위)가 보인다.

대통령 유년시절에는 허물어져 있던 것을 몇 년 전 김해시가 벽돌로 새로 쌓고 봉수대 주변에는 덱으로 빙 둘러놨다. 이곳을 들르는 탐방객들이 열이면 열 탄성을 지르는 곳이란다.

■숲속 사찰 정토원, 호미든 관음상

봉화산 초입.탐방객 뒤쪽으로 부엉이바위가 보인다.

봉수대를 내려가자 숲 속 아래쪽으로 사찰 하나가 단풍나무 숲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민다. 유년 시절 노 전 대통령이 자주 찾던 곳으로, 대통령의 49재를 지낸 곳으로 유명한 '정토원'이다. 다시 언덕을 오르자 오솔길을 덮고 있던 나무와 숲은 완전히 사라지고 하늘과 맞닿은 오솔길이 행인들을 또다른 정상으로 이끈다. 오솔길 경사가 심해지면서 탐방객들의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산봉우리 위에는 특이하게 호미를 든 관음상이 일행을 반긴다.

함께 한 해설사는 "6·25 전쟁 직후 보릿고개 시절, 이곳에 봉사활동을 위해 찾아온 불교 대학생들이 농민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이런 모습의 관음상을 건립했다"고 설명했다. 관음상이 있는 산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자 시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거대한 강줄기가 말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영남의 젖줄이자 800만 부산 경남 울산지역 생명수인 낙동강. 쉼없이 바다로 달려가는 어머니의 강을 바라보며 유년시절 호연지기를 키웠을 한 소년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산하는 길에 땅거미가 봉화산에 내려 앉자 붉게 물든 단풍잎이 호롱불을 치켜든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추수가 한창인 황금빛 봉하뜰이 일행을 반겼다. 귀향한 대통령이 오리농업 등을 통해 친환경적으로 농사를 짓자고 농민들을 설득했던 곳이다. 덕분에 논 곳곳에 우렁이들이 새끼를 치고 산다. 출발지인 묘역쪽으로 다시 길을 재촉하자 제방길 아래쪽에 '대통령 자전거길'이 나타난다. 밀짚모자를 눌러쓴 대통령이 자전거 뒷편에 귀여운 손녀를 태우고 씽씽 내달렸던 그 길이다.


# 인기 많은 생태체험관

- 친환경 우렁이잡고 숲에선 곤충 관찰…살아있는 자연놀이터

생태체험관은 이달 초 유치원생들이 직접 만든 30여점의 허수아비를 봉하마을 체험장에 전시하고 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들녘 한쪽에 위치한 봉하마을 생태학습관이 최근 확장됐다. 자라나는 2세들에게는 도심에서 볼 수 없는 생태체험 교육을, 시민들에게는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선사한다.

노무현재단과 위탁계약을 맺은 봉하사업본부는 주말과 주중으로 나눠 일반인과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인공습지와 숲 공원을 매개로 한 생태체험 학습을 진행 중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귀향 후 조성된 생태연못은 매입 과정을 거쳐 다양한 수생식물, 수서곤충들이 자라는 습지공원으로 탈바꿈됐다.

또한 대통령 묘역 주변에 들어선 숲공원에서는 나무의 역할을 공부하고 곤충을 잡는 등 산교육이 이뤄진다. 교육생들은 이들 장소 외에 친환경농법을 하고 있는 봉하뜰에서 메뚜기와 우렁이을 잡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낸다. 교육비는 무료다.

주중에 시행하는 유치원 교육은 현재 김해지역으로 국한돼 있지만 부산 등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일반인 대상 주말교육은 전국에서 선착순으로 모집하며 비용은 유료다. 하지만 수익금으로 가져가지 않고 참가자들의 간식비 등으로 되돌려 준다. 현재 월 교육생이 1600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임점향 생태해설사는 "최근 기존 시설을 확대해 문을 열었는데 반응이 좋다"며 "현재 유치원생 교육도 내년부터는 초등생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말해다.

이달 초순에는 30여 점에 달하는 허수아비 전시회를 갖고 있다. 유치원생들은 부모와 함께 집에서 가져온 못쓰는 헝겊이나 천, 볏집 등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었다. 봉하마을 체험장에 한 줄로 서 있는 허수아비는 추수철 새떼를 쫓는 역할을 하지만 풍년도 기원한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주머니 모형 등 모양과 색상도 제각각이어서 이곳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박동필 기자 fe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