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6 직후 밀수조직 대거 밀항
- 카바레 등 상권 형성하며 불야성

전쟁은 지구상에서 사라져야할 대상이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선 이 용어가 민감하게 등장해 주의를 환기시키곤 한다. 그동안 우리는 범죄와의 전쟁을 비롯 마약·폭력·음주·과외·가짜·살과의 전쟁 등을 벌여왔다. 그중 밀수와의 전쟁도 심심찮게 우리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특히 6·25전쟁을 전후로 경제가 어렵고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 극성을 부렸던 밀수는 1960년대 사회 5대악에 들어갈 정도로 국가적 관심사였다. 한때 '밤의 대통령'이란 말이 장안의 화제가 되었듯 그보다 훨씬 앞서 남해안에서는 '밤의 세관장'이란 말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밀수검거를 위해 주로 야간에 활동하던 부산세관의 한 수사관을 일컬어 그렇게 불렀었다.

1950년대 중반~1969년 대마도 이즈하라항은 밀수선의 모항이었다. 사진은 당시 이즈하라항에 정박해 있던 특공대밀수선.

어디 그뿐이랴. 심심찮게 떠돌던 '합동수사본부'란 용어도 사실은 공권력에 도전하던 밀수조직을 근절하기 위해 공안수사기관이 모여 꾸려졌던 특별수사조직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밀수와 관련돼 회자됐던 용어들은 1950년대 중반 이후 건국 이래 가장 악랄하고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일컬어지는 대마도특공대밀수와의 전쟁에서 나온 하나의 부산물이었다.

흔히 특수작전과 기습공격이 주된 임무인 특공대는 특별히 훈련된 기동성이 뛰어난 공격부대를 말한다. 영국의 코맨도, 미국의 레인저,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 등이 좋은 예다. 대체 무슨 이유로 그 당시의 밀수조직들은 이처럼 으스스한 특공대란 이름을 붙여가면서까지 해상밀수의 대명사로서 군림하려했을까.

대마도특공대밀수는 1950년대 중반, 우리나라가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태동하여 한국경제가 한창 발돋움을 하려던 1969년까지 부산항을 중심으로 남해안을 무대로 활약했다. 이들의 주 근거지가 대마도의 행정수도인 이즈하라항이었다. 이로 인해 대마도특공대밀수 또는 이즈하라특공대밀수란 말이 생겼다.

6.25전쟁 직후엔 우리나라로서는 생필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대일 민간무역이 원활하지 못했다. 1959년에는 대일통상마저 중단상태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즈하라는 일본상품의 한반도 상륙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서서히 밀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즈하라항이 특공대밀수꾼의 거점도시로 자리하게 된 것은 5·16혁명 이후 밀수두목 한필국이 사형으로 형장에서 사라지게 되면서 이 밑에서 일을 하던 조직원들이 하나둘 일본으로 밀항해간 데서 기인한다. 이들이 새로 둥지를 틀고 세력을 규합한 곳이 바로 이즈하라항이었다.

밀항자 이정기는 그곳의 밀수왕으로 군림하며 특공대밀수를 진두지휘했고 현지 일본에서는 이들의 밀수행위를 변칙무역으로 비호까지 해주다 보니 기세는 더욱 등등했다. 심지어 그가 지배인으로 있던 야마다상회는 날로 매출이 늘다 보니 이후에는 일본관헌에서조차 그를 수출유공자로 추대할 정도였다. 점차 이정기는 이즈하라항에 온 밀수꾼을 위해 한국음식점을 비롯해 카바레와 술집, 여관 등을 늘려가면서 그야말로 불야성의 항구를 만드는데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마치 이즈하라항은 밀수꾼의 성지이자 밀수선의 모항인 것처럼 밀수왕국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