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가 조롱박 바가지로 쓰이는 박은 포과(匏瓜). 호박죽으로 끓여 먹고 씨까지 먹는 호박은 남과(南瓜). 된장찌개에 넣어먹는 애호박은 소남과(小南瓜). 맛이 단 참외는 감과(甘瓜). 참외는 아니지만 참외 모양의 열매가 나무에 열리니 목과(木瓜), 즉 모과다. 참외보다 크며 껍질이 거친 메론은 향과(香瓜). 덩치가 더 큰 메론을 중앙아시아에선 드냐라 부른다. 건조한 땅에서 맺은 천국열매 맛이다. 물이 많은 수박은 수과(水瓜) 또는 서과(西瓜). 샐러드나 김치로 담가 먹는 오이는 황과(黃瓜) 또는 호과(胡瓜). 과육 가운데가 거칠고 억센 섬유질 실같아서 설거지할 때 썼던 수세미외는 사과(絲瓜). 차로 달여 마시고 한방에서 약으로 쓰는 여주는 그 맛이 쓰기에 고과(苦瓜)다.

이들은 넝쿨성 한해살이풀에서 열리는 박과(科) 식물이다. 모두 오이 과(瓜)라는 한자를 공통으로 쓴다. 손톱 조(爪)와 글자가 비슷한 과(瓜)는 박과 열매를 본뜬 상형문자다. 이들은 사과 등의 과수 열매와 달리 띄엄띄엄 열리니 외로워 보인다. 특히 참외는 더욱 그렇다. 참으로 외롭게 열리기에 참외라는 설이 재밌고 뜻깊다.

'외'의 모음을 나누면 오이다. 외나 오이나 외톨이처럼 외롭다. 고아(孤兒)도 외롭다. 외로울 고(孤)에 과(瓜)가 있는 게 예사롭지 않다. 외로움(loneliness)과 달리 고독함(solitude)은 바람직한 것이란다. 이런 항간의 폼나는 구분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외로움은 고독함과 다르지 않다. 참외는 외로운 고독한 열매다. 고독함을 고독감과 고독력(孤獨力)으로 맺은 귀한 열매다. 그 외로움을 고독함보다 못한 것이라 인간 관점에서 비하하면 참외는 참 슬프다.

박기철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