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로 확장구간 분리대 충돌 후
- 조수석 차문 안 열려 탈출 지연
- 연료통 깨지고 순식간에 불길
- 내리막길 끝에 울산행 나들목
- 과속·차선변경 사고위험 상존

지난 13일 밤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 인근에서 발생한 울산 관광버스 화재 사고는 불과 10여 분 사이에 1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워낙 순식간에 빚어진 대형 참사여서 대형버스 운전 경험이 많은 기사는 물론 경찰의 베테랑 교통사고조사 및 감식요원들도 의아해할 정도다. 어떻게 이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경찰의 1차 감식 결과와 당시 도로 상황 등을 토대로 원인을 짚어봤다.

지난 13일 밤 발생한 화재로 관광버스 승객 10명이 숨진 사고 현장인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언양분기점 인근에서 14일 경찰이 도로 구조를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 차량이 다니는 길이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이고 가운데는 콘크리트 분리대이다. 왼쪽은 확장공사 구간이다. 연합뉴스

■ 단시간 강력한 발화와 충격

사고가 난 관광버스는 폭탄을 맞은 듯 형체를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철구조물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처참한 사고 당시를 가늠케 했다. 새까맣게 타버린 버스 내부는 어디가 좌석인지도 제대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는 순식간에 강하게 발화됐다는 걸 의미한다.

또 사고 버스는 고속도로 편도 2차로를 확장하는 공사 중인 도로와 구분하려고 고속도로 오른쪽에 설치해 놓은 높이 1.2m, 두께 30㎝의 콘크리트 분리대에 부딪힌 채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사고 현장을 조사한 한 경찰관은 "버스기사와 승객들의 진술을 종합해 볼 때 버스의 타이어(오른쪽 앞바퀴)가 갑자기 펑크 났거나 차로를 급하게 바꾸는 과정에서 차가 오른쪽으로 급격히 쏠리면서 갓길 분리대를 들이받은 상태로 100여 m를 나아간 뒤 멈춰 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방증하듯 사고 직후 현장에는 블록형으로 연결된 콘크리트 분리대가 갈지자 모양으로 수십m나 흐트러져 있었고, 버스는 충격 탓에 조수석 쪽 외형 철구조물이 오른쪽으로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다. 여기에다 사고 버스의 유일한 출입구인 조수석 쪽 차문이 분리대에 막히는 바람에 승객이 탈출할 수 없었던 것 역시 피해를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버스 구조적 문제도 악영향

14일 사고 버스를 조사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경찰은 출입구 쪽 연료통이 파손된 것을 확인했다. 버스 연료통은 대개 2개인데 하나는 운전석 아래, 하나는 조수석 쪽 출입구 옆에 있다. 사고 버스는 조수석 쪽 출입구 아래에 있는 사각형 연료통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지면서 연료는 모두 새나간 상태였다.

사고 순간 연료통이 있는 버스 조수석 쪽 앞부분이 콘크리트 분리대를 3차례가량 들이받은 후 차가 정차하기도 전에 강한 불길이 치솟았다. 분리대와 부딪히면서 연료통이 깨졌고, 새어 나온 연료가 분리대와 버스 간 마찰로 생긴 불꽃에 점화돼 불이 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승객이 대피해야 할 운전석 오른쪽 출입구 아래 연료통이 깨지면서 발화돼 탈출을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고 장면이 찍힌 CCTV를 보면 출입구 연료통 쪽에서 강한 불길이 일어났고, 이 때문에 승객들은 운전석 뒤쪽 유리창을 깨고 탈출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 한 관광버스 운전기사도 "연료통이 발화되지 않는 한 버스가 충돌한다고 해서 갑자기 큰불이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도로 확장공사로 사고 위험

사고가 난 지점은 수년째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공사 탓에 갓길이 거의 없는 편도 2차로이다. 급커브와 내리막길이 많아 평소에도 교통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게다가 내리막 끝 지점에 울산으로 빠지는 나들목이 있어 과속하는 차량이 많고, 울산으로 진입하기 위해 급히 차선을 바꾸기도 하는 지점이다. 이곳은 울산∼영천 고속도로 확장 공사의 울산 마지막 구간이다.

특히 55.3㎞인 이 구간 양쪽에는 공사 지점과 고속도로를 구분하기 위한 콘크리트 분리대가 갓길을 차지하며 길게 늘어서 있다. 이 때문에 2차로 바깥선 끝과 분리대 사이에 갓길은 아예 없거나 폭이 30∼40㎝에 불과하다. 노폭도 좁아 이곳을 지나는 운전자들은 마치 좁은 미로를 통과하는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최고 제한속도는 시속 80㎞이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운전자가 많다.

울산 울주경찰서 관계자는 "현 여건상 교통사고 위험이 높은 구간이므로 세심한 주의 운전이 필요하다. 그러지 않을 경우 이번처럼 대형사고가 발생할 개연성은 항상 있다"며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 하겠지만 이번 사고도 이러한 요인들이 작용한 복합적인 인재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방종근 기자 jgba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