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화케미칼에 함께 입사했던 50~60대 퇴직자 부부와 지인들
- 비행기 연착돼 심야운행 참변

- 사망자 10명 중 부부 3쌍 포함
- 주검 훼손 심해 성별만 추정 가능
- 유전자 검사 후 유족 인계키로

"꿈 많던 20대 청년 시절 만나 37년간 우정을 나누던 입사 동기들이 이렇게 허망하게 함께 떠나다니…"

14일 오후 울산 울주군 서울산 IC 회차로 인근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직원들이 지난 13일 밤 발생한 경부고속도로 관광버스 대형교통사고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13일 밤 10시11분께 경부고속도로 언양분기점 경주IC 방향 1㎞ 지점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화재 참사 희생자들 대다수는 1979년 6월 울산 석유화학업체 한화케미칼에 입사한 동기들로 50, 60대 퇴직자이다. 버스 탑승자 총 20명 중 14명은 2011년과 2012년에 회사를 은퇴한 사원과 부인들로, 퇴직 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우의를 다져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사망자 10명 가운데 부부가 3쌍이 포함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날 동기 모임 회원 부부와 지인 등 여행객 20명은 4박 5일간의 중국 장자제(張家界)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애초 여행객 인원은 총 22명이었지만 이들과 함께 도착했던 원모(54·대구 거주) 씨 부부는 대구공항에서 따로 귀가해 참변을 면했다.

한화케미칼 관계자는 "수십 년간 회사에 다녔던 분들이 희생돼 매우 안타깝다"며 "은퇴한 분들이지만 회사에서 지원할 방법이 있으면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입사 동기들의 달콤했던 중국 여행은 마지막에 어긋났다. 중국 공항에서 항공기가 연착할 때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애초 중국 공항에서 오후 2시 50분에 뜨려던 비행기가 오후 4시 30분에야 출발하면서 귀국이 늦어졌다. 이 때문에 대구공항에서 울산으로 향하는 관광버스도 예정시간보다 약 2시간이나 늦게 출발했다. 귀국 스케줄에 차질만 없었어도 울산 도착시각이 이처럼 늦지 않았을 것이고 위험한 심야 버스 운행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또 이들 일행은 애초 경북 영천 평사휴게소에 도착해 늦은 저녁 식사를 하려 했지만, 식당 문이 닫혀 경주 건천휴게소에 들러 우동을 먹었다. 한 유족은 "남편이 밤 9시 30분쯤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전화했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순식간에 버스에 불이 붙으면서 시신이 크게 훼손돼 유족들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경찰은 유가족의 DNA를 채취하는 작업을 마친 상태다. 사망자의 것과 비교해 신원을 확인할 방침인데 총 5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신이 안치된 경남 양산시 물금읍 부산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이곳에서 만난 울산 울주경찰서 교통조사계 김동길 경위는 "유족이 여기 왜 있겠나? 누가 누군지도 알아볼 수 없는 상황인데…. 교통사고 조사만 8년째인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라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가족대기실로 가봤지만 운구차 기사 2명만이 TV를 보고 있을 뿐, 유족은 없었다. 운구차를 운전한 장례회사 한 직원은 "시신 훼손 상태가 워낙 심각해서 성별만 추정할 수 있을 뿐이었다. DNA 채취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유족이 시신을 찾을 수 없는 형편"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시신이 나뉘어 안치됐던 울산 서울산보람병원과 좋은삼정병원에도 유족은 없었다. 병원은 간간이 취재 차량이 보이는 것 외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이 두 병원에 이송됐던 환자들도 대부분 다른 병원으로 옮긴 상태였다. 병원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환자 김모(63) 씨를 찾아 잠시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족 중 한 명으로부터 "죄송합니다. 돌아가세요"라는 말을 들었다. 간호사로부터 김 씨가 이번 사고로 함께 여행했던 아내를 잃었다는 말을 전해 듣고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