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기절정 속 방송금지곡 날벼락
- 백야성 가요계 떠나 온갖 일 전전

부산항이 본격적으로 활황기에 접어든 것은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다. 수출 주도로 경제성장을 펼치려면 물류산업 전진기지가 필요했는데 부산항이 그 역할을 도맡아 했다. 당시 우리의 수출 주종 품목 가운데 우리 국토의 살점인 중석을 비롯해 대리석과 고량토가 실려 나가고, 우리네 어머니의 살점이라 할 수 있는 머리카락마저 잘려서 가발로 수출하던 때였다. 수출품은 물질적인 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인력 수출도 대단했다. 선원 송출과 월남파병, 그리고 브라질로 향하는 이민선도 부산항에서 떠났다. 그러다 보니 부둣가에서 들려오는 뱃고동과 갈매기 소리마저도 마냥 구슬프게 들리기만 했다. 한마디로 부산항은 이별의 항구였고 눈물의 항구였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즐겨 불렸던 노래가 '잘 있거라 부산항'이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대표 수출 전진기지였던 부산항 제2부두 모습.

'아~아~ 잘 있거라 부산항구야/ 미스킴도 잘 있어요 미스리도 안녕히/ 온다는 기약이야 없으려마는/ 기다리는 순정만은 버리지 마라 버리지 마라/아~ 아~ 또다시 찾아오마 부산항구야'

비록 이 노래가 오가는 술잔 속에 정든 아가씨와 나누었던 마도로스의 이별가이긴 하지만, 낯익고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 놓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일을 하면서도 그 아픔과 피로를 풀기 위해 술잔을 나누며 다독이던 노래이기도 했다. 어디 그 뿐일까. 파월장병을 가득 실은 수송선이 3부두에서 출항할 때 이별의 배경음악이 되어 눈물의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던 노래였다. 우리는 이런 노래를 위안 삼아 드디어 1964년에 1억 달러라는 수출금자탑을 쌓았다.

'잘 있거라 부산항'이란 노래가 만들어진 것은 1960년 여름이었다. 당시 극장 쇼의 명 사회 콤비로 유명세를 떨치던 코미디언 서영춘과 배삼룡 그리고 가수 김용만과 백야성이 부산역 앞 송옥여관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후 이들은 그날 공연상황을 결산하면서 백야성이 부른 마도로스 풍의 노래에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나누던 중에 배삼룡이 가사를 흥얼거리고 이걸 김용만이 즉석에서 기타를 치면서 하나의 곡을 만들었다. 이게 바로 백야성의 히트곡 '잘 있거라 부산항'이었다. 이 무렵 우리나라에선 외항선원의 인기가 날로 치솟을 때라 마도로스 풍의 노래 또한 최고였다.

이렇게 극장가를 누비며 인기 절정을 누리던 백야성에게 뜻하지 않은 날벼락이 닥쳤다. 그가 부른 노래가 왜색풍이란 이유로 방송금지곡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가요계를 떠난 그는 포마이카상 판매상, 당구장 주인, 건설업 등 다양한 업종을 전전하게 되었고, 심지어 1966년엔 일본에서 연예활동을 할 계획을 잡았다. 그는 카메라 등을 팔아 30만 원을 마련한 후 일본으로 가려고 부산 송도에서 밀항 시도를 하다가 '설은 쇠고 가자'는 알선업자들의 말을 듣고 상경하면서 많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마음을 고쳐먹었다. 카메라만 잃은 셈이다.

그가 마치 신인가수처럼 인상 깊게 TV에 얼굴을 내민 것은 20여 년이 흐른 1986년 KBS의 '가요무대' 프로그램이었다. 이 방송을 보고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말기 늑막암을 앓고 있던 그의 아내였고, 그의 열창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바친 선물이 되었다. 부산항구와 마도로스를 누구보다 즐겨 불렀던 가수 백야성. 지난 10월 초 그마저 세상을 떠났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