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당국 설득 가까스로 선내 수색
- 갑판장 일행 밀수 전모 드러나

부산항 제3부두는 파월장병들의 애환이 묻혀 있는 공간이다. 1964년 이후 이곳에서 환송·환영식이 벌어질 때면 태극기, 오색 꽃가루 휘날리는 바람을 타고 목메어 불러대던 이름 석 자에 부산항도 울고 웃었다. 이런 까닭에 부산항 3부두는 한동안 국방부 전용부두로서 이름을 날렸다. 오늘날은 북항 재개발사업에 따라 3·4부두가 국제여객터미널로 바뀌어 부산항의 새로운 관문으로 탈바꿈했다.

1954년 당시 부산항 제3·4부두 전경. 중앙부두 쪽에는 제대로 매축이 되지 않아 물웅덩이가 남아있다.

부산항 제3부두가 만들어진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총독부의 부산항 축항공사에서 비롯된다. 4부두와 함께 축조된 이 공사는 1941년에 완공돼 태평양전쟁을 맞았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얼마 있지 않아 6·25전쟁이 발발하자 수심이 깊고 창고시설까지 갖추어져 있는 3부두에 군수물자를 실은 화물선이 자주 접안했다. 그런데 가끔 이러한 화물선이 밀수를 하는 바람에 관계자를 혼란에 빠뜨리곤 했다.

피란수도 말기인 1953년 5월 8일 오전 11시께 제3부두에는 위기감이 감돌았다. 평소 같으면 하역작업을 한답시고 부두가 한창 바쁠 시간인데 이날은 유별나게 긴장감이 엄습해 왔다. 부두에는 일본에서 영국군의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영국 국적의 4000t급 화물선 화생호가 접안해 있었다. 이 배에는 선장을 비롯한 영국인 고급선원과 60여 명의 중국인 선원이(현 타이완 국적) 타고 있었다.

부산세관 심리과에 한 시민이 느닷없이 찾아와 특급 밀수 제보를 던져주고 간 것은 전날 오후였다. 영도 바닷가 움막집에 산다는 제보자는 밤에 소변을 보러 나갔다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금괴 밀거래 상황을 목격했다는 것. 그러잖아도 시중의 금괴 밀수 풍문에 골머리를 앓던 세관으로서는 이번 제보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 즉시 수사반을 편성한 세관은 전쟁이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호경기를 누린다는 광복동의 금은방 몇 군데를 급습해 현품을 확보했다. 저녁 무렵에는 금괴운반책을 3부두 근처에서 검거하고, 이들로부터 화생호에 금괴가 은닉돼 있다는 정보까지 얻었다. 사기충천이 된 수사 요원들은 기필코 화생호에 올라 선내를 수색할 참이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았다. 처음부터 중국인 선원들이 망치와 같은 둔기를 들고 난동을 부리면서 완강히 저항했다. 경찰의 협조 없이는 더 이상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어 긴급타진을 했다. 부두에는 곧 세관 및 경찰 수사관 30여 명과 경찰대원 150여 명이 무장한 채 집결했다. 영국도 자국의 선장 등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군 2개 중대를 완전무장하여 출동시켰고, 부두 질서 차원에서 미국 헌병마저 현장에 출동해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야말로 전쟁 와중에 한·중·영·미 4개국이 부두에서 대치하는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제일 먼저 달려 나온 사람은 주한영국공사관의 비어치 일등서기관이었다. 이어서 우리 정부의 외무부의 담당과장, 치안국의 담당 부국장까지 나와 직접 경찰대를 지휘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우리 측에서 사건의 경위를 영국 측에 이해시켜서 선내수색이 이뤄졌다. 맥주 상자 속에 금괴와 시계가 숨겨져 있었고, 밀수 주범은 덩치 큰 갑판장 일행이었다. 이들은 군수화물수송선이 세관검사를 생략한다는 것을 알고 노무자와 짜고 영국 선장 몰래 밀수를 강행했던 것이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