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년인데 왜 수입하나…햅쌀값 폭락에 들녘마다 분통

추수 앞두고 공급과잉 현실화

김인수 기자 iskim@kookje.co.kr
| 입력 : 2016-09-25 19:40:25
| 본지 13면

- 최근 재배 면적 감소세에도
- 생산량 매년 늘어 재고 산더미
- 연 40만t수입, 가격하락 부채질

- 진주RPC, 남는 벼 소비대책 촉구
- 농림부 "자체결정 불가 협의 필요"
- 28일 진주서 대규모 농민대회

쌀(벼)값 폭락으로 농심이 들끓고 있다. 올해 벼 재배 면적이 77만8734ha로 지난해보다 2만610ha(2.6%) 줄었음에도 조생종 벼 값은 20% 이상 떨어졌다. 이에 농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조생종 벼 값은 본격적인 수확기인 중만생종 벼 값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쌀 재고량이 줄어들지 않는 데다 해마다 40만 t이 넘는 쌀이 수입되면서 쌀값 하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경남 진주시 명석면 들녘에서 농민이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다.

■ 재배면적 줄어도 값 하락, 왜

경남 진주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최근 자체 수매(벼 매입)한 올해산 조생종 벼 값은 가마(40㎏)당 4만 원. 지난해 5만1000~5만2000원보다 22~24%나 떨어졌다. 여기서 더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진주농협 RPC는 자체 수매를 중단했다. 이는 전국의 농협 미곡종합처리장마다 비슷한 실정이다. 진주농협 RPC 관계자는 "지난해 이맘때 7만6000원 하던 시중 쌀값(40㎏)이 5만2000원까지 떨어진 데다 조생종 쌀의 수요도 적어 자체 수매를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결정한 올해산 산물 벼(40㎏) 1등급 기준 공공비축미 우선 지급금도 4만5000원으로, 지난해 5만2000원보다 13.4% 떨어졌다. 공공비축미 가격은 수확기(10~12월) 산지 쌀값을 기준으로 결정되는데, 정부는 벼 출하 농가에 우선 지급금을 준 후 매입 가격이 확정되는 다음 해 1월 정산을 통해 나머지 차액을 지급한다.

쌀값 하락은 수요량보다 공급량이 많은 데서 비롯됐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432만7000t으로, 수요량 397만 t보다 35만7000t이 많았다. 이 때문에 정부는 두 차례에 걸쳐 34만3000t을 '시장격리'(수확하지 않은 채 출하 정지) 조처했다. 2014년에도 24만 t의 쌀을 시중에서 격리했다.

벼 재배 면적은 2014년 81만5506㏊에서 2015년 79만9344㏊로 감소한 데 이어 올해는 다시 77만8734㏊로 줄었다. 하지만 10a당 생산량은 2014년 520㎏에서 지난해 542㎏으로 오히려 2%가 늘었다. 농민단체들은 올해도 풍년이 예고됨에 따라 쌀 생산량이 423만~425만 t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 수확 본격화 때 값 폭락 더 심화


	경남 진주의 한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정부관리 양곡을 관리인이 가리키고 있다.

조생종에 이어 이달 말부터 중만생종 벼 수확이 본격화되면 쌀값 폭락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남 도내 RPC들은 중만생종 벼 자체 수매 가격이 조생종보다 더 떨어진 40㎏당 3만 원대에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산물 벼 수매를 앞둔 경남지역 RPC들은 벼 매입 가격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진주농협 RPC 관계자는 "지난해 벼 재고를 비롯해 올해 남는 벼에 대한 시장격리가 우선돼야 쌀값 하락을 막을 수 있다"면서 정부 측에 선제 격리 조처를 촉구했다. 농민단체들도 쌀값 안정을 위해 올해산 쌀 생산량(예상) 423만~425만 t 중 23만~25만 t에 대한 시장격리 조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농림부는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의 재고량이 175만 t에 이르고 있는 탓에 추가 격리를 정부부처 간 협의해야 해 자체적으로 결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014년과 지난해 정부의 격리 조처는 쌀 담당 농림부와 예산 담당 기획재정부 간 협의가 아닌, 국회 등의 논의를 통해 이뤄졌다. 그나마 2014년과 지난해 이맘때 정부의 재고량은 각각 83만8000t, 135만3000t으로 올해보다 훨씬 적었다.

또 해마다 40만9000t에 달하는 의무수입 물량도 쌀 재고가 쌓이는 데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정작 쌀을 소비할 방안을 찾지 못하는 것 역시 문제다.

■ 성난 농심, 전국 곳곳에서 시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 쌀 생산자협의회 등 소속 농민 6000여 명은 지난 22일 서울 대학로에서 전국농민대회를 열고 쌀값 폭락에 따른 정부의 수매가 인상 등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영오 전농 회장은 "30년 전 가격인 11만 원(80㎏ 기준) 수준으로 쌀값이 폭락하자 농민들은 수확을 앞둔 논을 갈아엎으며 절규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올해 6월 초 미국 밥쌀을 사들이더니 9월에도 쌀 수입을 계속하고 있다"며 정부를 비난했다.

전북과 전남, 경북 등지에서는 햅쌀 가격이 폭락하자 농민들이 트랙터로 수확을 앞둔 볏논을 갈아엎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진주시농민단체협의회와 쌀전업농협의회 등 지역 농민단체들도 지난 20일 쌀값 폭락 대책 촉구, 대기업 농업 진출 저지를 위한 '진주농민대회 투쟁선포식 및 기자회견'을 개최한 데 이어 28일 진주시청 앞에서 대규모 농민대회를 열 예정이다.

경남 도내 시·군의회도 밥 쌀용 쌀 수입 중단과 쌀값 보장을 촉구하는 성명을 잇달아 채택하고 있다. 거창군의회는 최근 임시회를 열고 '밥 쌀용 쌀 수입 중단과 쌀값 보장 촉구 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김인수 기자 iskim@kookje.co.kr

※2013~2015년은 10월 말 기준, 2016년은 7월 말 기준〈자료=농림축산식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