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전국을 강타한 지진의 여파로 부산시민들도 대혼란을 겪었다. 처음 겪는 지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지진 대비 매뉴얼을 몰라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다가 갇힌 사례도 속출했다.

일본 지진 지침서- 일본 수도 행정기관인 도쿄도가 재난 대비 행동 수칙을 모아 제작한 '도쿄 방재'의 내용 중 주방이나 거실에 있을 때 지진이 발생한 상황을 표현한 그림. 깨진 유리 등에 몸을 다치지 않고, 가구 밑에 깔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당부가 담겼다. 연합뉴스

■엄마는 허둥지둥, 아이는 탁상 밑

이날 저녁 식사 후 가족과 TV를 보던 중 지진을 감지한 주부 김민지(36·동래구 사직동) 씨는 생전 처음 겪는 일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이부터 찾으니 7살짜리 아들은 '유치원에서 배운 대로' 쿠션으로 머리를 감싼 채 식탁 밑으로 몸을 피했다. 김 씨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조건 나가자'고 채근했으나 판단이 쉽지 않았다. 남편에게 몇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결국 김 씨와 김 씨의 어머니는 각각 아들과 세 살배기 딸을 안고 계단을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김 씨는 "나가는 도중에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을지, 밖에 있으면 땅이 갈라져 더욱 위험하지 않을지 등 오만 가지 생각이 났다. 지진에 대한 교육도, 경험도 없어 정말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비상계단 대신 엘리베이터 이동

대피 요령을 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갇힌 경우도 잇따랐다. 12일 오후 8시40분께 부산 남구 용호동 한 아파트에는 지진의 여파로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췄다. 당시 엘리베이터 안에는 중학생 박모(14) 양과 임모(14) 양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앞서 있었던 규모 5.1의 지진으로 귀가 조처를 받고 학원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같은 동에 사는 친구인 이들은 서로 손을 붙잡고 울면서 구조를 기다렸지만, 전화가 먹통이 된 바람에 신고도 하지 못했다. 이들은 이웃 주민의 신고로 갇힌 지 40분 만에 구조됐다. 이들은 지진이 추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여겨 엘리베이터를 탔던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 먹통… 공원 대피처 부상

이날 평소 외부와의 통로 역할을 하던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지진을 몸소 느낀 시민들은 스마트폰으로 가족과 지인의 안부를 묻거나 대피 요령을 검색했지만, 한동안 전화와 데이터통신이 작동하지 않았다. KT 관계자는 "통화량과 데이터통신 사용량이 폭증하면서 통화와 데이터통신이 일시적으로 다운됐다. 경북 경주를 중심으로 접수되면 불편 신고가 최초 신고 후 1시간도 안 되는 시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고 말했다.

지진을 피해 밖으로 나온 시민들은 근처 공원과 학교 운동장 등의 공터로 몰렸다. 특히 부산진구 부산시민공원·해운대구 대천공원, 강서구 오션시티 근린공원 등에는 수백 명의 시민이 피신했다.

■한국형 대피 매뉴얼 만들어야

탁상 밑에 숨는 것이 올바른 대피 방법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국민안전처는 지진 때는 밖으로 대피하거나 머리를 보호한 채 탁자 밑으로 몸을 숨기라고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서병수 부산시장은 13일 오전 열린 지진 대책회의에서 현재 일본식을 차용한 지진 대피 매뉴얼을 부산 실정에 맞는 것으로 대체하라고 지시했다.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에서는 지진이 발생하면 탁자 밑으로 대피하는 것이 맞을지 모르지만, 콘크리트 건물과 고층 건물이 많은 부산에서는 이런 매뉴얼이 실제 상황에 부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