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공사 등 책임 13년 만에 인정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엿가락처럼 휘어져 붕괴된 부산항 크레인의 피해와 관련, 부두시설 시공업체와 크레인 제작사가 함께 273억 원의 손해를 컨테이너 부두 운영업체(터미널)에 물어주게 됐다. 당시 크레인 붕괴 사고는 초강력 태풍이라는 불가항력적 자연재해가 아닌 크레인 제작업체의 부실시공이 원인이라는 게 법원의 최종 판단이었다. 소송 제기 12년, 피해 발생 13년 만의 일이다.

2003년 태풍 '매미' 내습에 붕괴된 부산항 신감만부두의 크레인들. 국제신문DB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부산항 신감만부두 운영업체인 동부부산컨테이너터미널이 부두시설 시공사인 대우건설과 크레인 제작업체인 한진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피고들은 273억2935만 원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대우건설과 한진중공업의 과실 정도에 관한 원심의 사실인정이나 비율 판단이 현저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동부부산컨테이너터미널은 2003년 9월 12일 발생한 태풍 '매미'로 부두에 설치된 갠트리 크레인 106호기 등 6기가 붕괴되자 부두 시설업체와 크레인 제작업체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당시 사고는 106호 크레인이 태풍에 계류 위치를 벗어나 넘어지면서 105호기 등 나머지 5개의 크레인이 순차적으로 붕괴돼 일어났다. 106호기의 수평 이동을 방지하는 스토이지 핀과 수직이동을 막는 타이다운의 용접부가 쪼개져 앵커볼트가 빠져 나온 것이 크레인 붕괴 원인으로 지목됐었다.

터미널 측은 허술한 부두시설 공사와 잘못된 설계 제작으로 크레인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제자리를 이탈·붕괴돼 피해를 봤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대우건설과 한진중공업은 사고가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로 인한 것이어서 손해 배상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1심은 피고의 과실을 인정하면서 "최대 순간풍속 추정치가 갠트리 크레인 설계풍속인 초당 50m를 넘지 않고, 쓰러진 크레인과 같은 설계풍속으로 제작된 다른 크레인은 더 많은 풍속의 영향을 받고도 무사했으므로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부두의 크레인은 해풍의 영향을 받을 것이 당연히 예상돼 법규나 계약에 따라 일정한 설계풍속을 규정하고 있는 점에 비춰 피고가 위험의 발생을 미리 예견·예방할 수 있었다"며 "자연적 조건 아래 발생한 사고라고 해도 적정한 조치에 의해 위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면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1심은 배상액으로 238억6525만 원을 인정했고, 2심은 추가 영업손실액 34억6428만 원을 더한 273억2935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송진영 기자 roll66@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