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 아파트 100여 곳으로 확산

아파트 경비실에 택배기사·집배원을 위한 얼린 생수를 놓아둔 사연(본지 지난 11일 자 8면 보도)이 널리 알려지면서 전국에서 호응이 이어지고 있다. 매일 후원자 수십 명이 생수를 보내는가 하면 '생수 나눔'을 시작했다는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택배원 등에게 생수를 제공한 이재형 씨가 23일 전국의 독지가가 보낸 생수 더미 앞에서 웃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23일 만난 '냉수 천사' 이재형(56) 씨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매일 이 씨 집 앞에 전국에서 배달된 생수 상자가 문 앞에 쌓이기 때문이다. 생수가 충분하다며 마다했지만 경비실 등을 통해 알아낸 주소로 보내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받는 생수는 하루에 20~30상자로 일주일 만에 150상자 넘게 쌓였다. 저녁이면 생수 상자가 아파트 현관문 앞을 가득 채울 정도다. 이 밖에 아이스박스와 '좋은 일에 써달라'며 보낸 후원금도 이어졌다.

이 씨가 가장 기뻐하는 소식은 '우리 아파트 앞에도 얼린 생수를 놓았다'는 말이다. 이 씨는 "워낙 소소한 일이라 이렇게 널리 알려질 줄은 몰랐다"며 "SNS나 전화로 방법을 물어보는 이들도 이어지고 생수를 나눠주는 아파트 단지가 있다는 소식도 접한다. 전국에 100곳은 될 것 같고 내년 여름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 씨는 떡집을 운영한다. 뜨거운 떡을 직접 배달하는 경우가 잦아 집배원이나 택배 기사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 씨는 지난달 29일부터 500㎖ 생수 30병을 냉동실에 얼린 후 매일 오전 9~10시 경비실 아이스박스 앞에 두기 시작했다. 가정용 냉장고 냉동실을 비워가며 생수를 얼리느라 가족들 핀잔도 많이 받았다. 보도가 나가고 시민들 호응이 이어지자 가족들 역시 이 씨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됐다.

비용은 한 병에 350원으로 하루에 만 원 정도. 지금은 전국에서 후원한 생수 덕에 이마저도 들지 않는다. 여름이 지나고 남는 생수는 거동이 불편한 홀몸 노인 가정 등에 배달할 예정이다.

이 씨는 초록봉사단에서 10년 넘게 봉사 활동을 해왔다. 뜻을 같이하는 지인들과 화요일마다 부산진구 연지동 어린이대공원에서 노인과 노숙인을 위한 무료급식소를 운영한다. 겨울이면 연탄 7만 장을 소외계층 가정에 배달하기도 한다.

이 씨는 "봉사도 때로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 같다. 하루에 만 원이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호응이 이어졌다"며 "그렇다고 힘들게 봉사하는 이들의 열정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