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 배로 옮겨타다 선원 1명 희생
- 표류 나흘만에 저멀리 울릉도가…

해방이 되고 마땅한 수출상품이 없던 시절, 동해를 비롯한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고깃배가 밝힌 집어등 불빛을 보고 춤을 추며 비상하는 값진 어종이 있었다. 일명 '살아있는 로켓'이라 부르던 오징어였다. 특히 마른오징어와 한천, 새우와 같은 수산물은 우리나라 제1세대 민간 무역상들이 홍콩과 마카오를 오가면서 한국무역의 기반을 다지던 초창기 수출 주요 품목으로 유명했다. 이처럼 오징어는 격변기에 우리 경제를 버텨준 대표적인 상품으로서 국내 어획량에 따라 무역수지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1950~60년대 선박수리와 어항으로 유명했던 부산 영도구 대평동 도선선착장 부근(일명 '영도 굴강') 전경. 임시수도기념관 제공

정부가 수립되던 1948년 12월, 부산 영도에서 10t급 소형 선박 한 척이 오징어채낚기조업을 위해 강원도 앞바다를 향해 출항했다. 이 배에는 선주 겸 선장 외에 13명의 어부가 타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 속에 사흘 밤낮으로 달려 겨우 묵호 앞바다에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때아닌 돌풍이 휘몰아치면서 바다가 갑자기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선장은 파도를 헤집고 묵호항으로 들어가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배의 방향키가 부러지는 난경에 빠지고 말았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조치할 겨를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다음 날 새벽까지도 바람은 조금도 수그러들지도 않고 배는 산더미 같은 파도 사이를 건너뛰며 하염없이 떠밀려가고 있었다. 조난신호를 보낸들 구조대가 올 여건이 되지 못하는 악천후인지라 그저 선원들은 다가올 운명을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우연히 선원들의 눈앞에 배 한 척이 나타났다. 모두 구조하러 온 선박이다 싶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이 배도 기관고장을 일으켜 조난 중에 있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한 척은 기관은 생생한데 키가 부러져서 야단이고, 다른 한 척은 키는 멀쩡한데 기관고장이 나서 죽을 고비가 되어 있었다.

처음엔 망망대해에서 비슷한 처지의 이웃을 만나 위안이 되기도 했지만, 두 척이 가까워질수록 충돌 위험이 커져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급박한 상황을 알아차린 두 배의 선장은 큰 배 쪽으로 일단 선원을 옮겨 싣기로 하고 먼저 밧줄로 두 배를 고정하기에 바빴다. 조심스럽게 선원 13명이 오르고 마지막 선원이 오르려는 순간 큰 파도가 작은 배를 덮쳤다. 이 바람에 순식간에 선원 한 명과 함께 배는 침몰하고 말았다. 너무나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충돌을 피한 것만은 천만다행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새로 옮겨 탄 선박은 15t급의 도삼호. 선원 15명이 타고 있었다. 여기에 작은 배 선원 13명을 더해서 28명의 대가족이 새로운 표류가 시작됐다. 어느새 3일째 표류하던 밤이었다. 어디서 오는 배인지 모르지만 1만t급의 선박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선원들은 목이 터지라고 구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철사 끝에 매단 넝마에 불을 붙여 긴급구조 신호 '에스오에스(SOS)'까지 보냈지만, 좀처럼 뱃머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하나의 희망이 사라지자 선원들은 허탈감에 빠져들었고 여기에 혹독한 추위와 졸음까지 찾아들어 더욱 기력을 잃어 갔다. 무심한 파도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이들을 괴롭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갖고 버티던 나흘째 되던 날, 저 멀리 울릉도가 어렴풋이 다가서고 있었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