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전력수급 원활 내세워
- 규제 대신 자제요청 계도만
- 원전 추가 건설 명목 무색

정부가 올여름부터 출입문을 연 상태로 에어컨을 트는 '개문 냉방'을 단속하지 않기로 해 빈축을 사고 있다. 2011년 블랙아웃(전기수요가 일시적으로 폭증해 발생하는 대규모 정전) 사태 이후 절전을 외쳐왔던 정부가 경제 활성화와 전력수급 여유를 들어 단속을 포기한 데 대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정부는 고리원전 인근에 신고리 원전 5·6호기를 건설하려는 이유가 '국내 전력 수급률의 안정적 확보'라고 밝혔던 만큼 에너지 절약이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가 이를 규제라고 풀어버려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6일 오후 부산 중구 광복로 패션거리. 도로 양쪽에 늘어선 스포츠 의류점과 화장품 매장마다 실내에 에어컨을 세게 켜둔 채 문을 열고 영업하고 있었다. 일부 매장은 입구 주변에만 가도 서늘한 바람이 확연히 느껴졌다. 점포 관계자는 "문을 열어두면 전기료가 더 많이 들지만, 손님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같은 '개문 냉방'은 단속 대상이었다. 2011년 9월 블랙아웃 사태 이후 정부가 강도 높은 에너지 절약 정책을 폈고, 2012년부터 '개문 냉방'을 적극적으로 단속해왔다. 1차 단속은 경고지만, 재차 적발되면 최대 과태료 300만 원까지 부과했다.

하지만 부산시는 올해부터 '개문 냉방' 단속을 하지 않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에너지 사용제한 공고를 내면 이를 근거로 각 지자체가 '개문 냉방'을 단속해 왔는데, 올해는 정부의 공고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공고가 없으면 '개문 냉방'을 단속할 근거가 없어 대신 자제를 요청하는 계도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산자부 관계자는 "전력 공급 상황과 홍보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난 겨울부터 에너지 사용제한 공고를 내지 않고 있다. 규제 대신 계도와 홍보로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이 계속되면서 전력 사용이 급증해 여름철 최고전력수요 기록을 이틀 연속으로 갈아치웠다. 전력거래소는 이날 오후 3시 최고전력수요가 8111만㎾로 전날 기록한 여름철 최고치 8022만㎾를 경신했고, 예비율도 9.6%(예비력 781만㎾)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예비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것은 올해 두 번째다. 예비력이 500만㎾ 미만으로 떨어지면 전력수급 비상경보가 발령된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이훈전 사무처장은 "에너지 절감은 핵발전소 건설, 기후변화 문제 등과 관련돼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jnm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