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7년 탐사선 들어와 주민 접촉
- 1853년엔 미국 고래잡이선 표류
- 이양선 이야기 담을 공간 필요

매축으로 인해 사라지고 없지만, 1960~70년대만 해도 용당포는 우리나라 합판산업의 메카로 이름을 떨쳤다. 지금은 신선대컨테이너터미널이 들어서서 상전벽해의 공간이 되고 말았지만, 본래는 외항 근처에 자리한 아늑한 포구로서 일찌감치 어촌이 들어설 정도로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19세기 서세동점을 맞아 부산 앞바다를 지나던 이양선마저 느닷없이 찾아들어 부산포에 긴장감이 돌았다.

10여 일간 용당포에 머물면서 조선 사람들에게 한동안 '며리계'라는 깊은 인상을 심어준 미국 고래잡이어선 사우스 아메리카(South America·616t급)호.

부산항에 최초로 이양선이 들어온 것은 220년 전이다. 1797년 10월 13일 브라우턴 함장이 지휘하는 87t급 영국해군 탐사선 프로비던스호가 그 주인공이다. 2년 후 영국으로 돌아간 브라우턴 함장은 1804년 5월에 런던에서 '북태평양 항해기'를 출판하면서 8일간에 걸쳐 용당포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이것이 서구사회에 부산항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브라우턴 함장 일행이 용당포로 찾아든 것은 바닥난 물과 나무, 부식 등을 보충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이 지역의 관방수장인 동래부사는 직접 현장으로 나가 생선과 해초 등을 선물하며 어서 이양선이 물러나주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선원들에게 필요한 건 선물이 아니라 물과 부식이었다. 브라우턴 함장 일행은 본연의 임무인 탐사활동을 비밀리에 벌이면서 '조선항(Choson Harbour)'이라는 항박도를 그리기도 하고, 우리말 38단어와 식물 26가지를 채록하기도 했다. 남자(Man)는 사내(Sanna), 여자(Women)는 계집(Kageep), 다리(Leg)는 장단지(Tantangee)로 불리는 점을 주민들과 손짓발짓을 해가며 흥미롭게 조사했다. '풀을 뜯고 있는 소를 가리키며 구입의사를 표했지만, 그들을 설득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는 돈도 소용없고, 이해시킬 방법마저 없다'는 등의 실망감도 감추지 않았다.

대화가 어려웠던 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정조실록'에 경상도관찰사 이형원(李亨元)의 치계 내용을 보면, "역관을 시켜 그들에게 국호와 표류하여 오게 된 연유를 물어 보았는데 한어(漢語), 청국어(淸國語), 왜어(倭語), 몽고어를 모두 알지 못했습니다. 붓을 주어서 쓰게 하였더니 모양새가 마치 구름과 산을 그린 그림과 같아서 알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마지막 날 브라우턴 함장은 용당포를 떠나면서 조선의 감시 수병이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던 권총과 망원경을 선물로 주었다.

영국 함선이 떠나고 57년이 흐른 1853년에 미국의 고래잡이 어선 한 척이 용당포로 다시 표류해 왔다. 부산포의 문정관이 표류 선원들과 대화를 하였으나 말이 통하지는 않고 그저 '며리계'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고 '일성록'에서는 전한다. 결국 필담을 나누었는데, 구름과 산을 그리듯 글씨를 쓴다고까지 했다. '며리계'는 아메리카라는 말이었다. 훗날 이 고래잡이배는 미국의 '사우스 아메리카호'로 판명됐다. 바다 건너 해외로 나가는 것을 금기하는 해금정책(海禁政策) 시대여서 그랬을까? 숱한 세월이 흘렀는데도 필담 상의 글씨에 대한 설명이 어떠한 변화도 없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용당포는 영어권역의 선박이 최초로 드나들었던 유서깊은 포구다. 긴장감 속에서 펼쳐진 서양문화와의 첫 접촉 일화는 우리의 감춰진 이야기를 들춰보듯 신선하다. 서구 관광객들이 부산에 더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양선 이야기가 담긴 문화공간도 설립을 고민해볼 만하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