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사고 불러도 형사책임 없어
- 과태료 스티커 발부가 전부
- 대부분 운전자 부주의로 결론

- 교행 불편으로 원룸촌도 몸살
- 소방차 골목 진입 막기 일쑤
- 소방본부 단속 작년 5만대 달해

- 부산시 공영주차장 확대하고
- 일부 노상 밤샘주차 도입했지만
- "강력 단속 우선" 목소리 높아

도로에 적당히 차를 세워도 별 탈이 없는 부산은 엄밀히 말해 '주차난'은 없는 도시다. 대신 도로 위의 얌체족 탓에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만큼 주차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부산시는 주차장을 늘리는가 하면 대중교통 활성화를 통해 자가용 수요를 줄여보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속 강화가 1순위라고 지적했다.

	119구급대원이 부산 강서구 신호동 도로에 불법주차된 트레일러 차량과 승용차 사이에 발생한 추돌 사고를 수습하는 모습.

■도로 위 흉기 불법 주차

지난 3월 18일 새벽 5시10분 부산 강서구 신호동 신호산단1로 군부대 앞 삼거리에서 A(28) 씨가 몰던 승합차가 불법으로 주차돼 있던 트레일러 차량을 보지 못하고 그대로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A 씨는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어두운 밤 도로변에 세워둔 차량이 도로 위의 흉기로 변한 것이다. 부산경찰청은 이처럼 주차된 화물차량에 의한 교통사고가 지난해 107건이 발생해 174명이 다쳤고 5명이 숨졌다고 21일 밝혔다. 올해는 지난 4월까지 36건이 발생해 60명이 다쳤고 6명이 목숨을 잃었다.

도로변 불법 주차가 사고를 일으키지만 사고가 나면 대부분 운전자의 과실로 결론이 난다. 사고가 나도 불법주차 차주는 도로교통법상 불법주차에 대한 책임을 질 뿐 사고에 대한 형사상의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민사소송으로 사고 책임을 따져 볼 수는 있지만 쉽지 않다. 경찰은 숨진 A 씨 사례도 전방주시 태만으로 인한 운전자 과실로 결론을 냈다.

도심 골목 곳곳에는 불법 주차 차량이 판을 치고 있다. 21일 오후 연제구 연산동 시청 인근 원룸촌은 불법으로 주차된 차들로 몸살을 앓았다. 주차가 금지된 어린이보호구역 도로에 승용차는 물론 화물차를 세워 혼잡을 부추겼다. 도로 양쪽에 주차한 차들 탓에 교행이 힘들었고, 마주 보며 주행하던 차들은 서로 먼저 진입했다며 한참을 버티는 등 신경전이 벌어졌다. 특히 빌라 등 원룸형 다가구주택이 우후죽순 들어서 있어 주차난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부산 이면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소방공무원들은 화재나 위급상황 발생 때 도로가 협소해 소방차량 통행에 장애가 발생할 수 있는 구간이나 소방로 등의 불법 주·정차 차량을 단속하고 있다.

부산시소방안전본부가 공개한 단속 실적을 보면 2013년 7만715건, 2014년 5만7219건, 지난해 4만9946건에 달하는 불법주차 차량이 적발됐다. 그렇지만 대부분 현장 조치만 했을 뿐 과태료를 잘 물리지 않는다.

소방 관계자는 "소방관들은 주목적이 신속한 구조나 화재진압이기 때문에 주차 단속까지 하면 시선도 곱지 않고 인력도 부족하다"며 "시민들 또한 소방관들이 불법 주·정차 단속을 하면 심하게 반발한다. 담당 지자체의 적극적인 단속을 기대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주차장 확충도 좋지만 강력단속 필요

	부산진구 범천동 한 아파트단지 인근 통행로에 세워진 불법주차 차량 탓에 소방차가 지나가지 못하고 있다.

부산시는 불법주차를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처음으로 불법 주차단속에 직접 나선다. 자체적으로 주차단속 전담 요원을 별도로 채용하고 단속반을 3개 조로 편성했다. 간선도로·버스정류장·어린이보호구역·인도 등 중점 단속이 필요한 지역 중점단속구역 178곳을 대상으로 단속을 벌인다. 이달까지는 계도에 그쳤지만, 다음 달부터는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또 연내에 불법주차단속이 지속적으로 필요한 지역 20곳에는 CCTV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단속과 함께 주차장 인프라도 늘린다. 주거지역에는 312억 원을 들여 공영주차장 9곳 654면을 설치한다. 또 주거지 전용주차장 15곳 184면, 주거지 주변 자투리땅을 이용하는 그린주차장 235면도 추가로 설치한다.

또한 올해부터 전국 최초로 화물차 노상 밤샘주차장을 운영하고 있다. 강서구 녹산산단로(1.3㎞) 남구 신선로(0.7㎞) 사하구 감천항로(1.7㎞) 등 3곳이다. 화물차 노상 밤샘 주차장은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화물차를 세워둘 수 있다. 부산시는 화물차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화물자동차 밤샘 주차에 관한 조례안'을 공포하고 일반 도로에 화물차를 세울 수 있는 노상 주차장 조성을 준비해왔다. 노상 밤샘주차장을 도입한 이유는 화물차고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산시에 등록된 화물자동차는 모두 4만1000대지만 차고지는 3만5000면에 그친다. 이 때문에 부산항·부산신항·감천항 등 물류 중심지 주변으로 화물차량이 불법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시설 확충도 좋지만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의대 신용은(도시공학과) 교수는 "아무 길에나 차를 댈수 있는 부산은 사실상 '주차난'이 없는 도시다"며 "대신 도로변 불법주차가 만연하면서 도시계획이 무색해지는 등 각종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단속권은 엄연히 법적인 권리인 만큼 경찰에 주차 단속을 맡겨야 한다"고 했다.

경성대 신강원(도시공학과) 교수는 "주차장을 늘리더라도 도심지에 설치하면 수요만 늘리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법과 원칙에 따른 불법주차 단속이다. 지금은 단속에 걸린 시민들 상당수가 '잘못 해서'가 아닌 '재수가 없어서'라고 생각하는데, 불법주차하면 무조건 걸린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숫자로 보는 부산 불법주차 관련 현황

20곳…올해 단속 CCTV 추가 설치

107건…작년 화물차 주차 사고유발

6000면…화물차 차고지 부족

4만9946건…작년 소방본부 단속실적

※공동기획 : 부산시, 도로교통공단 부산광역시지부, 손해보험협회, 부산교통공사, 부산지방경찰청

권용휘 기자 re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