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경제 이끈 물류산업 현장
- 북항 재개발되며 역사 속으로

가수 고봉산이 1961년도에 불러 크게 히트를 한 '아메리칸 마도로스'는 부산항을 노래한 대중가요의 하나다. '무역선 오고가는 부산항구 제2부두'로 시작된 노랫말에서 제2부두는 '아메리칸 마도로스'의 주 무대임과 동시에 부산항을 대표하는 부두였음을 내비친다. 이처럼 6·25전쟁 당시 제2부두는 제1부두와 함께 부산항의 가장 핵심이 되는 후방 군수기지였다. 대체로 제1부두가 병사들을 수송하는 기능을 했다면 제2부두와 나머지 부두들에는 전쟁물자와 군 장비를 수송하는 기능이 주어졌다.

6·25전쟁 당시 군수물품이 하역되고 있는 부산항 제2부두의 모습.

특히 제2부두는 미군과 유엔군의 군복, 생활도구, 먹을거리 등을 전선으로 운반하는 병참기지 역할을 하였다. 6·25전쟁 발발과 동시에 미군에 징발됐던 제2부두는 전쟁 후반기인 1952년 10월 25일에 유엔군 당국으로부터 우리 정부에 반환됐다. 이후 휴전이 되면서 전후 구호원조물자를 실은 미국 화물선이 부산항으로 드나들기 시작했고, 밀가루나 옥수수가루 같은 화물은 주로 제2부두에서 하역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제2부두는 부둣가에 미국 선원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아메리칸 부두' 또는 '메리켄 부두'라는 이름의 햄버거 냄새를 풍기는 장소가 됐다.

이후 1962년 초부터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펼쳐지면서 부산항은 물류산업의 현장으로서 생기가 돋기 시작했다. 여기에 같은 해 6월 10일에 단행된제3차 통화개혁을 앞두고 부산항은 또 다른 긴장감에 에워싸이면서 분주해졌다. 영국에서 비밀리에 제조가 된 신 은행권이 그해 5월 18일 부산항 제2부두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이 신 은행권의 하역작업은 당시 중앙정보부 차장의 진두지휘 아래 공수단까지 경비에 참여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디 데이(D-day)'를 하루 앞두고 이 신 은행권이 각지 한국은행 지점으로 모두 수송됨으로써 작전은 끝났다.

이렇게 부산항 제2부두는 군수기지 뿐 아니라 물류산업의 현장으로서 대한해협을 오가는 화객선의 취항식이 열린 역사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먼저 1964년 1월 13일에는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의 한·일간 정기여객선이라 할 수 있는 아리랑호(969t)의 명명 및 취항식이 제2부두에서 열렸다. 대한해운공사 소속인 이 여객선은 부산에서 일본의 시모노세키, 고쿠라, 오사카를 연결하는 항로를 오가다가 1970년께 운항 중단됐다. 아리랑호의 국제항로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부관페리호였다. 1970년 6월 17일 부산항 제2부두에서는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페리호의 취항식이 열렸다.

이제 부산항 제2부두는 북항재개발사업으로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본래 제2부두는 1911년 일제강점기 시작과 함께 삽을 뜬 부산항 제1기 축항공사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이곳은 일제의 대륙침략 교두보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들 시설은 군수기지 또는 우리경제를 이끌어온 물류의 현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우리 근현대사의 역사적 흐름을 함께해 왔다. 요즘 부산항에 부는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그렇다고 남겨진 이야기마저 사라지게 하겠는가.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