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 암행어사는 임금 직속 비밀감찰관이었다. 조선 중종 때부터 자그마치 600여 명이나 되는 암행어사가 배출되어 임지를 누볐다. 그 가운데 박문수는 암행어사의 꽃이었다. 이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1878년에 경상좌도를 감찰했던 이만직(李萬稙)도 특출했다. 그러니까 조선 시대 암행어사의 대명사로 박문수가 있었다면 개항격변기 개항장 주변에는 이만직이 있었다고 할까?

부산 금정구 향토문화재 제8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는 암행어사 이만직의 영세불망비. 현재 금정구 선두구동 하정마을 도로변에 있다.

암행어사 이만직은 언제 어디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를 알 수 없다. 그만큼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승정원일기'와 '조선왕조실록'의 암행보고서인 서계(書啓)와 부속문서인 별단(別單)을 통해서 그의 활동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는 고종 7년(1870)에 공조참의(工曹參議), 그 이듬해에 동부승지(同副承旨), 고종 12년(1875)에 영광군수, 고종 14년(1877)에 다시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어서 고종 15년(1878)에는 경상좌도 암행어사가 되어 조선의 유일한 해상관문인 동래부 일원을 비롯해 영남지역을 감찰하기 시작했다.

특히 부산항은 막 개항을 하고 2년째 접어들 무렵이라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가뜩이나 가뭄까지 겹쳐 곡물 가격이 치솟았고, 여기에 영국산 면직물이 무관세로 들어와서 삼베와 모시를 생산하는 가내공업도 어려워지는 등 민심이 좋지 않았다.

그뿐 아니었다. 중계무역으로 폭리를 취한 일본 상인들은 조선의 곡물 등을 사 밀반출하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조선의 개항장 주변 분위기를 제대로 파악하고 민심을 수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이다.

그는 임지로 내려와 먼저 경상좌도 내 비리 관리들을 찾아 규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계에 따르면 경상좌수사 양주화, 밀양부사 원세철 등 자그마치 15명에 이르는 전·현직 탐관오리에 대해서는 죄목을 적어 올림과 동시에 창녕현감 등 4명에 대해서는 은전을 베풀 것을 보고했다. 이어서 별단을 통해서는 나라 정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 지역의 환곡(還穀)·조창(槽倉)·전정(田政)에 대한 폐단이 있음을 지적하였고, 특히 무관세로 인한 폐단을 지적하면서 '화물이 출입하는 곳에 세액을 정할 것'을 건의했다.

또한 두모포 선창(船艙)에 변찰소 관사를 짓고 있으나 공사비가 없어 중단돼 있는 것을 보고 관찰사로 하여금 철저한 공사감독으로 조속히 마무리가 되도록 조치하기도 했다. 뒤에 이러한 조치 건의에 따라 '세목책자'가 조정에서 내려와 변찰소 내에서 수세를 받는 행정조치가 행해짐으로써 개항 시 놓친 통상 자주권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부산 인근에서의 전해지는 암행어사 이만직의 흔적은 2개다. 우선 '수의상국 이공만직 영세불망비(繡衣相國李公萬稙永世不忘碑)'가 있다. 그가 동래부 내륙관문인 소산역의 실정을 보고 민생복지를 위한 기금 조성을 해준 데 대해 이 역의 감관과 색리가 세워준 송덕비다.

두 번째는 본인이 남긴 것으로 현재 통도사 청류동천의 이름바위에 새긴 이름 석 자다. 그도 시대의 유행을 외면하지 않고 지역유지들이 통도사와 같은 명소를 찾을 때면 바위에 이름을 새기는 것을 놓치지 않고 따랐다. 그리고 곁에 한산(韓山) 이 씨로서 선대인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이름을 새겨둠으로써 은근히 그의 후손임을 내비치기도 했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