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 당시 최루탄을 맞고 숨진 이한열 열사 추모 29주기인 9일, 그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연세대 신촌캠퍼스 교문 왼쪽 기둥 앞에 추모 동판이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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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이한열 열사 추모 동판 제막식'이 열린 9일 오후 서울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서 87년 당시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지냈던 우상호 원내대표가 발언하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연합뉴스 |
이한열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이 열사의 모친 배은심 여사와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자 장례식 때 이 열사의 영정을 든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마름모 형태로 바닥에 설치된 동판에는 국화 그림과 함께 '1987년 6월 9일 오후 5시 당시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곳, 유월 민주항쟁의 불꽃이 피어올랐다'는 글귀가 새겨졌다.
이 열사가 숨진 1987년은 '6월 항쟁'의 시기였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대통령 간선제를 규정한 기존 헌법을 고수하겠다고 발표한 데 이어 같은 해 1월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국적으로 민주화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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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이한열 열사 추모 동판. 연합뉴스 |
이 열사는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한 달 뒤 숨을 거뒀다.
우 원내대표는 제막식 인사말에서 이 열사의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눈물을 흘렸다. 그는 "저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라며 "당시 총학생회장으로 말로만 투쟁했던 저 같은 사람 때문에 이 열사가 숨졌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작은 자유도 그 앞에 수많은 헌신, 희생, 고통 끝에 온 것을 국민이 알아야 한다"며 "교문에 새긴 것은 동판이 아닌 이한열 열사가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강조했다.
배 여사는 헌화가 이뤄지는 동안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추모 동판 제막식에 이어 이날 저녁에는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이한열문화제-유월을 노래하다' 추모 문화제가 열린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