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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동래온천장의 재발견 <1> 한강 정구의 동래온천 요양기-'봉산욕행록' 다시 읽기

老학자의 동래 요양기행…그 여정에 영남 유생 300명이 모였다

  • 박창희 대기자 chpark@kookje.co.kr
  •  |   입력 : 2016-06-05 19:04:41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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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는 부산의 성성한 뿌리이자 오래된 심장이다. 동래, 그 중에서도 온천장 지역은 이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이 샘솟아 관광휴양지로 주목받는 곳이다. 국제신문과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동래구청이 동래온천에 숨어 있는 이야기의 샘을 찾아 월요일 격주로 스토리텔링 여행을 시작한다.

- 퇴계·남명의 학통 함께 계승하고
- 실학의 선구자였던 정구 선생
- 75세 때 중풍 치료차 동래온천행

- 칠곡서 출발해 총 45일 간의 일정
- 낙동강 따라 뱃놀이·시회 즐겨
- 행차길부터 온천 숙소까지
- 그를 흠모해 달려온 선비 줄이어

- 이동거리, 날씨, 숙소 내방객부터
- 욕조와 입욕법, 복용약제까지
- 요양 기록들 '봉산욕행록'에 남겨

   
일러스트=서상균 기자
1617년 음력 7월 20일 경북 칠곡의 지암(枝巖) 나루. 늦여름의 눈부신 아침 햇살이 낙동강의 수면에서 물비늘로 튀었다. 물새 소리 낭랑한 나루터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갔다. 이윽고 백발이 성성한 선비가 일행을 거느리고 모습을 드러냈다.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 선생이었다. 일흔 다섯의 병든 노인이지만 풍모가 곧고 위엄이 흘렀다. 비록 2년 전 풍비(風痺·중풍)를 만나 오른쪽 반신이 불편하지만, 제자들을 대동해 견여(肩輿·간단한 가마)를 타고 나들이 하는 모습은 가히 어떤 재상도 이르지 못할 엄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일흔 셋의 노인에게 어느날 갑자기 찾아든 풍비는 그의 삶을 뒤흔들었다. 신병 치료를 위해 온갖 침과 약을 써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로부터 동래온천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안의 8대 조 어른 중에 고려 때의 문신 정포란 분이 있었는데, 그가 남긴 시에도 동래온천의 효험이 언급돼 있다. '온천이 옛날부터 전해 내려와/ 욕실이 지금까지 남아 있네/ 물줄기 오는 곳 멀지 않으니/ 욕조가 항상 따뜻하네/일년을 질병에 시달린 몸/반나절 목욕으로 씻은 듯하네…'.

'반나절 온천욕으로 씻은 듯 나았다'는 대목은 한강을 유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잖아도 가보고 싶은 동래였다. 나서는 걸음에 낙동강 뱃놀이도 즐기고, 지기와 제자들을 만나 세상사를 논한다면 이보다 더한 즐거움이 어디 있을텐가.



#뱃놀이·시회 겸한 나들이

"날씨가 좋구나. 강물이 맑으니 산천이 푸르도다. 유산(遊山)하고 선유(船遊)하기에 손색없는 날씨로다. 준비 하느라 다들 고생이 많았다. 동래온천이 멀기야 하겠지만 강물따라 노젓고 바람따라 내려가는 길이니 멀먼 얼마나 멀겠느냐."

배에 오르며 한강이 기분좋게 한마디 하자, 동행한 제자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스승을 모시기에 여념이 없다. 유산·선유하며 시회를 열거나 교류하는 건 조선 중기 유학자들의 일반적인 풍조였다. 유학자들의 산수 유람은 공자 맹자 시대를 거쳐 신라때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다. 조선시대에는 스승과 함께 산수 유람하며 기상을 높이고 성품을 길러 높은 정신세계를 구축한 사례가 많다. 그림자조차 밟지 않는다던 스승이 아니던가. 게다가 당시 한강의 학덕은 온 나라가 인정하고 떠받들 정도로 높았으니 더 말하여 무엇하리오.

한강은 경북 성주 출신으로 도동서원에 배향된 한훤당 김굉필의 외증손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21세 되던 1563년 퇴계 이황을 찾아 도산 문하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어 24세 되던 1566년에는 남명 조식에게 나아가 덕천 문하에도 이름을 올렸다. 인(仁)을 중시한 퇴계와 의(義)를 높이 치는 남명의 학통을 동시에 흡수한 한강은 영남학파의 계승자일 뿐만 아니라 실학의 선구자였다. 벼슬길에는 늦게 나아가 창녕현감, 함안군수, 대사헌 등을 지냈으나, 65세때 칠곡의 낙동강변으로 낙향해 후학 양성에 매진했다. 그가 기른 제자가 300명이 넘는다. 김굉필 이언적 정여창 이황과 함께 영남 5현 중 한명으로 꼽히며, 사후에는 성주 회연서원과 천곡서원, 칠곡의 사양서원, 창녕의 관산서원, 충주의 운곡서원, 현풍의 도동서원 등에서 그를 제향할 만큼 학업과 학맥이 탄탄했다. 실로 조선의 대학자였다.

#설레는 '요양 행차'

   
한강 정구 선생이 배를 타고 지났던 창원 동읍 본포나루 일대.
이날 한강의 행차는 영남 도처의 제자들이 스승을 위해 특별히 기획하고 준비한 신병치료 여행이었다. 각별한 의미가 실린 만큼 제자들은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에 신경을 써야 했다. 스승의 신병을 안타까워한 제자들은 동래온천의 효험을 전해 듣고 스승을 모시기로 뜻을 모았다. 동래온천은 신라의 왕들이 자주 찾았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고, 선인들의 싯귀에도 종종 등장한다.

한강은 전날밤 잠을 자지 못했다. 연전에 함안 도흥나루 일대에서 낙동강 선유와 시회를 겸한 나들이를 한적이 있어 몸은 비록 불편하지만 은근히 선유를 즐기며 지기 및 제자들과의 정을 돈독히 하고픈 생각도 있었다. 오른쪽 반신을 못쓰게 한 풍이 동래온천물에 녹아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상상도 해 보았다.

출항지인 지암 나루는 한강의 거처인 사수촌(泗陽村·현 경북 칠곡)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지암 나루에는 대구부사를 비롯, 주변의 내로라는 문인 20여 명이 나와 있었다. 한강과 처음부터 동행했던 문인은 채몽연 곽영희 이천봉 이언영 이윤우 배상룡 이명룡 유무룡 이난귀 이학 정천주 등 12명이었으나 상당수는 중간에 돌아가고, 이윤우 이서 이천봉 이육 등은 끝까지 남았다. 남은 이들은 한강의 지기와 제자들이다. 배는 현풍 도동서원의 곽근 원장이 말끔하게 수리해 하루 전에 대기시켜둔 것이었다.

한강의 요양 행차 소문은 낙동강을 따라 영남지역 곳곳에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의 직계 제자는 말할 것도 없고, 관직을 맡은 부사나 군수, 수사 심지어 관찰사까지 한강의 행차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평소 먼발치서 한강을 흠모해온 선비와 유생들은 한강의 행차 정보를 캐기에 바빴다. 이 즈음 한강의 행차는 영남 유림계의 핫 이슈였다.



#봉산욕행의 촘촘한 일정

   
동래온천의 상징 온정개건비.
한강 일행의 동래온천 여정은 그의 제자들이 쓴 '봉산욕행록(蓬山浴行錄)'에 아주 자세히 그려져 있다. 봉산은 동래의 다른 이름이고, 욕행록은 온천을 즐겼다는 기록이다.

'닭이 세 번 울자 한강 선생이 견여를 타고 길을 떠나 동이 틀 무렵 낙동강 지암에 이르렀다…'.

'봉산욕행록'은 영남의 깊숙한 산골에서 나라의 변방인 동래의 온천으로 요양을 가는 노학자가 마치 밤새 닭이 울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길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한다. 욕행록에는 날짜와 날씨, 이동거리, 이동 수단, 숙소, 방문객, 당직자까지 적혀 있고, 한강의 심사까지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다.

여정은 낙동강 물길을 따라 칠곡 지암에서 출발해 대구 하빈~현풍(도동서원)~고령~창녕(우산촌)~함안~영산~밀양~김해(신산서원)~양산을 거쳐 7월 26일 목적지인 동래온정에 이른다. 가는 길은 7일 간의 여정에 물길 710리, 뭍길(육로) 20리 등 730리에 이르는 먼길이었다.

양산 황산진(물금)을 지나 동래의 하용당(下龍塘·현 화명동 일대)에 이르자 동래부사가 보낸 군관이 한강 일행을 맞았다. 한강은 날이 어두워 곧장 온정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민가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말과 견여를 번갈아 타고 온정으로 향했다.

동래온천에서 꼬박 30일을 묵으며 온천욕과 휴식을 취한 한강은 8월 26일 동래를 떠나 육로로 양산~통도사~경주~영천~하양~경산을 거쳐 9월 4일 거처인 칠곡 사수촌(泗陽書院)으로 돌아왔다.

한강이 여정 중 머문 곳에는 내방객이 끊이지 않았으며, 수시로 주연과 시회가 열렸다. 한강은 '낙동강 선비'라 불릴 정도로 평소 낙동강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다.

'평생에 무슨 일이 가장 으뜸이던고/ 오늘의 뱃놀이도 노래할 만하구나/ 좋은 벗과 해후하여 함께 취했는데/ 물속에 잠긴 저녁노을 너른 물결을 비추네'.

'봉산욕행록'에 따르면, 한강이 45일 동안의 온정욕행 과정에서 만난 선비가 약 300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한강 문하의 선비가 80여 명이다. 그 이름과 직함이 다 나온다. 한강의 행차가 단순한 요양여행을 넘어 영남권 선비들의 선유 축제, 교류·회합 마당이었음을 말해준다. 한강은 요양을 구실로 이런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귀로에 양산 통도사를 들른 한강은 뼈 있는 시 한수를 남겼다.

'남계(南溪)에 또한 와룡연(臥龍淵) 있으니/ 양보음(梁甫吟)이 전해져 옛 성현을 사모하네/ 애석하게도 독 안에 갈무리 한 보배여/ 일생의 영욕이 무슨 인연을 따르던가.'

당시 한강은 간사한 자들이 활개 치고 도리가 행해지지 않는 혼란한 세상을 적이 걱정하고 있었다. 와룡은 제갈공명의 별호이고, 와룡연은 성주 회연서원 인근의 지명이다. 양보음은 제갈공명이 불렀다는 노래. 그러니까 한강은 제갈공명처럼 웅대한 기상을 품고 도(道)가 펼쳐질 세상을 갈구한 것이다. 그런 한강에게 동래는 요양처이자 은신처, 기상을 재충전하는 장소였다. 한강의 동래 요양이 단순히 건강회복을 위한 행차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퇴계·남명 양문을 넘나든 한강의 포용성과 호방함은 동래 요양 후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손에 잡힐듯 생생한 요양 기록

'봉산욕행록'의 하이라이트는 한강의 동래온천 요양일지다. 한강 일행이 동래 온정에 도착한 것은 7월 26일 정오 무렵. 황여일 동래부사는 한강 일행의 방문 소식을 미리 듣고 욕탕과 숙소를 정비하는 등 접대에 만전을 기했다. 그러나 한강은 동래부의 극진한 접대에 상당한 부담을 느낀 듯하다. '선생은 지나친 대우는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며 극구 사양했고, 또한 관아에서 제공하는 물자는 거절하였다'는 대목이 그걸 말해준다.

'봉산욕행록'은 한강의 온천욕과 관련해 목욕방법과 횟수, 건강상태, 복용약제, 방문한 사람, 보내온 물품까지 소개돼 있다.

'안팎으로 돌로 만든 욕조가 있었는데 신라의 왕이 지었다고 하며, 욕조 하나는 5~6명이 입욕할 수 있는 크기였다. 욕조의 윗부분에 있는 돌구멍에서 온수가 나왔고 소문대로 너무 뜨거워 급하게 손발을 담글 수 없었다…'.

한강은 영산(창녕)에서 온 의원의 조언을 받아 목탕과 석탕을 오가며 온천욕을 하였고, 몸 상태에 따라 침과 뜸 시술을 받았다. 중풍 치료제인 강활유풍탕(羌活愈風湯)도 복용한다.

동래에 머무르는 동안 내방객은 더욱 늘어나 마치 동래에 한강 학당이 세워진 듯했다. 다녀간 사람은 동래부사는 물론 수군절도사, 수세관, 만호, 좌수, 감관, 소모장, 대구부사, 김해부사, 양산군수, 황산 찰방, 울산 판관, 그리고 각지의 유생 등 수없이 많았다. 멀리서 온 사람들은 며칠 씩 묵으며 온천욕을 즐기고 돌아갔다. 일부 내방자는 쌀 조개 전복 광어 나물 포도 소주 안주 송이 등을 선물로 갖고 오기도 했다. 한강을 수행한 문인들은 짬을 내 국방 요충지로 경치가 빼어난 다대포의 몰운대를 유람하기도 했다.

'봉산욕행록'에는 한강의 온천욕 마지막 날을 이렇게 적고 있다.

'25일(마지막 날); 비가 오락가락 함. 아침에 내정에 입욕함. 오전에 다시 입욕, 오후에 세 번째 입욕. 이로써 선생은 모두 41번의 온천욕을 하셨다…. 9월 4일 집에 돌아오셨는데, 안색과 기혈이 전보다 나으니 보는 사람들이 모두 목욕의 효과라고 말하였다.'

   
400년 전의 동래온천, 그곳 온정의 효험이 마치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온다. 기록의 위대함이요, 동래의 기운이며, 온천의 힘이다.

박창희 대기자 chpark@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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