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이론'이란 말은 '가짜' 또는 '싸구려'의 대명사가 되어 여기저기 직업군에 붙여 쓰는 하나의 속어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나일론'보다는 '나이롱'이 더 낯익게 들린다. '나이롱 환자', '나이롱 박사', '나이롱 신자' 같은 말을 오랫동안 들었기 때문일까? 외래어 표기법상 나일론으로 적어야 하는데 이들 제품이 '나이롱(ナイロン)'으로 통하는 일본에서 많이 건너왔었다. 더욱 흥미를 끈 것은 한국전쟁 이후 이들 나일론양말이나 나일론복지를 밀수선에 싣고 부지런히 나르던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롱 선원'이었다.

통상 우리가 외국을 드나드는 외항선을 타려면 선원법에 따라 소정의 교육이나 심사를 받아 여권 기능을 하는 선원수첩을 교부받고 선박회사와 고용계약을 맺는다. 이런 절차를 무시하고 선원수첩을 발급받아 선원 행세를 하는 사람을 '나이롱 선원'이라 불렀는데, 이들은 대부분 생업으로서가 아니라 밀수나 밀항, 또는 유람을 위해 외항선에 올랐다.

이러한 나이롱 선원 무리 속에 천재 화가 이중섭과 시인 박인환도 끼어 있었다면 놀랄 것이다. 이중섭은 1953년 7월 대한해운공사로 부터 어렵사리 선원증을 구해 도쿄로 보낸 일본인 처와 두 아들을 상봉하기 위해 부산항에서 출항을 시도했다. 그러나 배편이 여의치 않자 인근 통영으로 가서 시모노세키로 가는 활선어선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히로시마 옆 작은 우지나 어항에서 마중 나온 가족과 1년 만에 상봉하는 기회를 가졌다. 시인 박인환도 미국여행을 한답시고 사무장이란 직책으로 대한해운공사 소속의 나이롱 선원이 됐다. 이런 목적으로만 나이롱 선원이 됐다면 무슨 걱정을 할까만, 대부분은 밀수꾼 앞잡이로서 배를 탔기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특히 1960년대 대마도를 거점으로 하는 해상특공대밀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는 나이롱 선원의 인기는 더욱 높았다.

그 당시는 폭력배들 가운데 상당수가 나이롱 선원 행세를 하면서 맘대로 배를 오르내리고 밀수 비호세력으로 군림했다. 이러한 낌새를 알아차린 정부는 검찰을 동원해 1965년 7월 특공대밀수의 근원 중 하나인 나이롱 선원에 대한 일제 손질을 가했다. 그때 선원수첩을 불법으로 발급해 준 민원창구가 일차로 된서리를 맞았다. 이어서 그해 9월 교통부에서는 총 300t 미만의 외항선에 한해 단돈 1만 원(현재 약 100만 원)어치의 밀수를 했거나 정당한 보수를 내지 않는 선원(나이롱 선원)을 태웠을 때는 무조건 외국취항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강경조치에 대해 당시 해운업계는 해운업육성에 역행하는 조치라며 반발이 컸지만, 밀수 근절이라는 시대흐름 앞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