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덕도·거제도 가짜 일본섬 둔갑
- 강제 송환 배에서 전세 비행기로
- 밀항자 제주도 출신 많아 이채

밀항지는 대개 밀항자가 숨거나 도망치기가 쉬운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곳에 있다. 알선책이 모집한 밀항자가 적게는 10여 명에서 많을 때는 30~70여 명에 이르는데, 이들의 외부 노출이 우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1950년대 밀항은 주로 야간에 1인당 5000~1만 원의 밀항비를 낸 이들을 2~15t짜리 거룻배나 발동선에 태우는 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1960, 1970년대를 거치면서 20t짜리 밀항선이 등장하는 등 밀항 수법이 대담해졌다. 1962년 1월 9일에는 일본어선(풍어환·6.9t)이 영도 동삼동 하리 어촌 마을까지 잠입해 밀항을 시도하기도 했다.

밤이 되면 밀항선으로 둔갑하곤 했던 어선들.

한창 밀항 바람이 세차게 불던 1964년에는 밀항 사기꾼이 설쳐대는 바람에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해 6월 17명의 밀항자가 1인당 1만 원의 비용을 내고 부산항에서 유선을 탔다. 그리고 이들은 부산 앞바다의 무인도로 옮겨져 땅거미가 지는 오후 7시 밀항선을 탔다. 이들은 선창에 갇힌 채 항해를 해야 했다. 새벽 3시가 되자 선장은 밀항자들에게 일본에 도착했다며 하선 지시를 내렸다. 날이 밝았고, 이들을 맞은 것은 진해 해군방첩대였다. 배가 밤새 부산 인근 해역을 맴돌다가 가덕도에 밀항자를 내려놓고 도망친 것이다. 가덕도 못지않게 거제도는 밀항 사기꾼이 좋아하는 '가짜 일본 섬'이었다. 밀항자들은 사기꾼에게 당해 일본 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것보다 밀입국을 하다가 일본 오무라수용소에 갇히는 게 차라리 덜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무라수용소에서 밀항자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강제송환된 것은 1950년 12월이었다. 당시 955명의 밀항자가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1983년 6월에는 128명의 밀항자가 JAL전세기를 타고 김해공항에 내렸다. 100번째 강제송환이었고, 도합 2만1239명이 밀항에 실패했다. 처음에는 배를 타고 부산항으로 송환되던 것이 1980년 7월 이후에는 전세 비행기로 돌아왔다.

강제송환자는 부산항에 오면 사하구 괴정동의 외국인수용소로 보내졌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며칠간 정보기관의 조사를 받고 나서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특히 남북 관계가 대치 국면일 때 강제송환자가 일본이나 오무라수용소 생활 중 조총련과 접촉을 했는지 여부는 민감한 조사 사항이었다.

1983년 일본 경찰은 일본 내 한국인 불법 입국자를 약 5만 명으로 추산했다. 이들은 해방 전후 이산가족이거나 한국전쟁 당시 이후 생존, 돈벌이를 위한 밀입국자였다. 특히 이들 중 제주도 출신이 많은 것은 제주 4·3사건 등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건 이후 일본 내 연고자를 찾아 밀항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일밀항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위기 때마다 밀항자에게 탈출구를 마련해준 비밀스런 통로이자 애증이 점철된 바닷길이었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