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폐해진 활천마을
- 120여 가구 251명 사는 농촌
- 하루 최대 130회 81dB 소음내며 고속열차 밤낮없이 마을 통과
- 주민들 불면증·우울증 병원행
# 해결 방안 없나
- 터무니 없이 낮고 짧은 방음벽
- 9m 높이·터널형으로 교체 절실
- 비현실적인 소음 측정법도 문제
- 철도시설공단, 민원 매번 외면
"국책사업에 협조해서 돌아온 대가가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란 말입니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쏟아지는 고속열차(KTX) 소음에 송아지는 죽어 나가고, 노인들은 불면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병원으로 실려 가고…. 세상 어디에도 이런 마을이 없을 겁니다."
8일 오후 만난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활천마을 주민들의 호소는 이처럼 애절했다. 마을은 대낮인 데도 인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민 대부분이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바로 마을 옆을 바짝 붙어 지나가는 KTX 고속열차의 굉음에 가까운 소음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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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활천마을 KTX 경부고속철도 교량 구간으로 열차가 달리고 있다. 이쪽 교량 구간에는 방음벽이 아예 설치돼 있지 않다. 방종근 기자 |
■ 굉음 속 마을, 피폐해진 주민 삶
여느 농촌과 다름없이 평온하고 조용하게 느껴졌던 일요일 오후의 활천마을. 갑자기 '우웅~~우웅'하는 바람을 가르는 듯한 기계음이 멀리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내 점점 커진다고 느끼는 순간 소리는 '쿠구구구'하는 굉음으로 바뀌면서 순식간에 터널을 빠져나온 KTX 고속열차가 눈앞에 나타났다가 긴 꼬리를 물고 저 멀리 사라졌다. 1분여에 지나지 않는 짧은 시각이었지만, 마을 전체로 퍼져나간 진동은 열차가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느껴지는 듯했다.
이 마을에서 이 같은 상황은 온종일 많게는 130차례 넘게 반복되고 있다. 고속열차가 오가는 새벽 5시18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30분까지 21시간 동안 어김없이 계속된다. 열차가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최대 81㏈의 소음이 발생한다. 현행 법정소음 한도는 주간 65㏈, 야간 60㏈이다. 일반적으로 소음이 40㏈을 초과하면 숙면을 취하기 어렵고, 50㏈을 넘으면 호흡·맥박수가 증가한다. 나아가 60㏈ 이상이면 수면 장애가 시작된다. 70㏈부터는 장시간 노출되면 말초혈관의 수축 반응이 일어나고, 80㏈이면 청력손실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는 게 학계의 보고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주민들이 겪는 피해는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활천마을에는 120여 가구 주민 251명이 살고 있다. 특히 이들 중 30여 가구는 고속철도와 50m 이내에 인접해 있어 피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최근 송아지 4마리가 폐사했고, 주민들 가운데 불면증 탓에 수면제 처방을 받은 사람도 많다. 체력이 약한 노인들은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TV를 시청하고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 정도다. 견디다 못해 마을을 떠나는 주민들이 생겨나면서 빈집만 늘고 있다. 반면 마을로 이사 오려는 사람은 없다 보니 땅값은 떨어지고 있다.
이분덕(86) 할머니는 "가뜩이나 잠이 없는 나인데 집이 철길 바로 옆이어서 열차가 지나가면 자다가도 바로 깬다. 옆집 할머니는 불면증에다 우울증까지 겹쳐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 방음벽 있으나 마나, 제 기능 못해
그렇다면 왜 이런 소음과 진동이 고스란히 마을과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것일까. 문제는 터무니없이 낮은 방음벽에 있다. 마을 양쪽에는 터널과 터널이 있고 가운데는 길이 500m, 높이 6m의 철길 교량이 마을을 스치듯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방음벽은 고작 교량 부분의 절반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높이 1.5m로 열차 바퀴를 가릴 수 있는 정도다. 그러다 보니 열차가 지나갈 때 발생하는 소음이 반사되지 않고 그대로 마을로 전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9m 높이 방음벽이나 기찻길 전체를 덮는 터널형 방음벽 설치를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다섯 차례나 제기했다. 울주군도 수차례 공문을 보내 해결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철도시설공단은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을 제시하며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최고 81㏈의 소음이 측정되는 데도 기준치에 못 미친다는 게 공단의 주장이다.
■ 비현실적 소음 측정 방식도 문제
철도시설공단의 이 같은 주장은 비현실적인 소음측정 방식에 근거하고 있다. 현행 측정방식은 고속열차가 지나갈 때 측정되는 최고소음도가 아닌 '등가(等價) 소음도'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기찻길 주변 소음을 한 시간 동안 측정해 평균치를 내는 방식이다. 즉 차량이 달리는 일반 도로와 달리 철길은 열차가 지나갈 때만 소음이 발생하는데도 지나가지 않는 시간대의 소음까지 합산하는 것이다. 당연히 평균 측정치는 열차가 지나갈 때보다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철도시설공단이 3차례 자체 측정한 결과만 봐도 고속열차가 지날 때는 최고 81㏈이 나왔지만, 1시간 평균 측정치는 58㏈로 크게 낮아졌다. 현행법 자체가 주민들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도 전정희(전북 익산을) 의원이 지난해 11월 KTX의 소음 관리기준을 등가 소음도가 아니라 최고소음도로 측정해야 한다며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률안은 국회에서 잠을 자고 있다.
서상오(58) 활천마을 이장은 "시골 마을인 까닭에 열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는 도시보다 더 고요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데도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들이대며 주민들의 피해를 외면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철도시설공단 관계자는 "2010년 고속철 개통 당시 환경영향평가 협의 결과에 따라 현재 높이의 방음벽을 설치한 것"이라며 "공단으로선 현행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활천마을 수난사
- 경부고속도로·35번 국도·경부선 통과
- 조각난 마을 앞엔 산단까지 '생존 위협'
활천마을은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의 9개 법정 리 가운데 하나인 활천리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인근 두동면 봉계리와 더불어 경북 경주와 경계를 이루는 울산의 최북단에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농촌 마을 모습이었다. 이후 이 마을 쪽으로 경부고속도로와 35번 국도, 2010년 경부선 KTX 고속철도가 차례로 건설되고 5년 전 138만㎡ 규모의 KCC울산일반산업단지까지 조성됐다. 이처럼 우선 보기엔 도로망이 잘 발달해 있고 대규모 산단까지 들어서 울산의 발전과 궤를 같이해 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이 같은 개발이 더해질 때마다 활천마을은 찢기고 갈라져야 하는 잔혹사를 반복했다.
먼저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놓이면서 마을이 두 동강 나 활천과 가정마을로 갈라졌다. 2010년에는 KTX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활천마을 한 쪽을 할퀴어놨다. 게다가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는 이 마을 교통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을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경주 방면 35번 국도로 가다가 인근 두동면 봉계교차로에서 왼쪽으로 꺾어들어 가 가정마을을 지나야 한다. 이때 경부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통과해야 하는데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정도다. 이곳을 통과하면 소음으로 문제가 된 KTX고속철도가 마을 안쪽 끝부분을 지나간다. 열차가 쏜살처럼 지나가는 광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KCC일반산단이 마을 앞에 조성되는 과정에서 20~30m로 성토가 이뤄져 조망권과 일조권 통풍권 등이 위협받는 독특한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다행히 원만한 합의가 이뤄져 문제는 해결됐지만 활천 주민들은 이젠 무언가 새로 들어선다고 하면 또 생존권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어 바짝 긴장부터 하는 게 몸에 뱄다고 한다.
당시 투쟁위원회 일원으로 활동했던 한 주민은 현재의 마을 모습에 관해 "도로로 말미암아 마을이 위아래로 네 동강 났는데, 이것도 모자라 눈앞에 산단이 가로막고 있고, KTX 고속열차는 쉴 새 없이 굉음을 토하며 오가고 있다. 한 마디로 주거지로 최악이다. 이게 농촌이 맞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책사업을 하다 보면 다소 손해나 불편이 따를 수는 있지만, KTX 소음 문제는 주민들이 겪는 고통이 눈에 보일 정도인데도 이에 대해 해당 공기업은 애써 외면하려는 것 같아 분통이 터진다"고 덧붙였다.
방종근 기자 jgba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