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발령 선교사 사보담 이삿짐
- 도로·교통 여건 안좋아 운반고민
- 짐꾼 기지 내 16㎞ 간신히 옮겨

구한말 당시 부산의 영선현교회(현 초량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서 순회목사로 시무했던 미국인 사이드 보텀(Richard H. Sidebotham ·한국명 사보담(史保淡)) 목사는 부산 교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이다.

1899년 조선에 와서 대구에 머물던 미국인 사보담 목사가 1900년 부산으로 발령받아오는 길에 그의 부인 소유 피아노가 나무상여에 올려진 채 현 중구 동광동 5가에 있던 한 병원 앞으로 옮겨지고 있다.

그는 1899년 결혼과 동시에 그해 10월 부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를 타고 일본 요코하마를 거쳐 한 달이 지나 11월 20일에 부산에 도착했다. 이어서 그해 12월 말 대구로 발령을 받았다. 이들 부부가 대구 임지로 갈 때는 부산에서 의료선교사로 근무하던 어을빈(魚乙彬)의 도움으로 영남대로를 따라 3일 만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음 해 3월에는 사보담의 부인 에피(Effie)가 사용할 피아노 한 대가 선박 편으로 부산항에 화물로 내려졌다. 그런데 이 피아노를 대구로 옮기는 일이 여간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조선의 교통이나 도로 사정이 형편 없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도 이사 물품 가운데 특별대우를 받으며 취급되는 것이 피아노 아니던가. 그래서 결국에는 무게도 있고 충격을 받아서도 안 될 물품이라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육로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수로를 이용하는 방법을 택하게 됐다.

개항 이후 부산항에서 수심이 대체로 깊은 삼랑진까지는 기선이 운항됐다. 부산의 선각자 박기종도 1890년에 해운업에 손을 댄 항로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러니까 부산항에 내려진 화물이 낙동강을 따라 경상도 내륙으로 급송하려면 일단 기선을 이용해 삼랑진까지 가서는 이곳에서 거룻배에 화물을 옮겨 싣고 목적지까지 가는 것이 편했다. 대구의 사문진까지는 2주 남짓 걸렸다. 그러나 갈수기에는 강물 부족으로 한 달 넘게 소요되기도 했다. 반대로 하행할 경우는 5일이면 족했다.

에피의 피아노도 이와 같은 낙동강 수운을 이용해서 경상감영(慶尙監營)의 중심포구인 사문진까지 운송됐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나루터에서 대구 종로의 거주지까지 약 16㎞를 어떻게 옮기느냐 였다. 경사지고 노폭이 좁은 시골 고부랑길을 따라 이 무거운 피아노를 무사히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사문진 나루터에 내려진 피아노를 거처까지 옮기기 위해서는 많은 인부와 운반도구가 필요했다. 그런데 이때 짐꾼들이 가지고 온 운반도구가 정말 기발했다. 사람의 주검을 옮기는 상여막대기 6개였다. 첫날 불러 모은 짐꾼은 20명이었는데, 현장에서 이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 짚으로 밧줄 3개를 꼬았다. 그리고는 세로용 긴 막대와 가로 막대를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고 이것을 밧줄로 고정시킨 다음, 가운데에 피아노를 올리고 양쪽으로 두 줄로 밧줄을 엮어서 좌우 각각 9명의 짐꾼들이 어깨에 메고 운반이 되도록 만들었다. 그러니까 피아노를 옮기기 위해서 예전의 나무상여 구조를 최대한 활용한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목적지까지 가는데 사흘이 걸렸고 연 70명의 짐꾼이 동원됐다. 심지어 여러 사람이 장시간에 걸쳐 교대로 운반을 하다보니까 제자리에 있는 건반이 하나도 없었다. 정성껏 조립하여 피아노가 제 모습을 찾았을 때 드디어 건반을 누르자 해맑은 선율이 고을에 울려퍼졌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