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고 넓게 지진(煎) 떡(餠)인 전병은 세계 곳곳에 있는 보편적 음식이다. 우리나라에도 밀전병이 있다. 파전 부추전 김치전 해물전 고기전 모듬전 등 다양하다. 찌짐이나 부침개라고도 한다. 인류는 밀로 빵 국수 만두를 해먹기 이전에 더 쉬운 조리법으로 밀전병을 해먹었을 것 같다. 피자도 밀전병이다. 피자가 서양식 밀전병이라면, 밀전병은 한국식 피자다. 전통 밀전병이 솥뚜껑을 뒤집은 프라이팬 위에 돼지비계 기름으로 지졌다면, 전통 피자는 진흙으로 만든 화덕에서 구웠을 뿐 본질은 같다.

녹두로 만든 빈대떡, 감자로 만든 감자전, 메밀로 만든 메밀전병 등 밀이 아닌 재료로 만든 전병도 많다. 또띠야(tortilla)는 가장 생명력이 강한 곡물인 옥수수로 만든 멕시코식 전병이다. 인젤라(injera)는 가장 크기가 작은 곡물인 테프로 만든 에티오피아식 전병이다. 반짱은 쌀반죽을 종이처럼 펴서 말린 베트남식 쌀전병(rice paper)이다. 여기에 야채와 고기를 돌돌 말아 싸서 월남쌈을 먹듯이 또띠야나 인젤라에도 싸서 먹는다. 또띠야에 싸면 타코다. 밀전병에 싼 음식을 그리스에서는 기로스(gyros)라 한다. 터키에서는 케밥(kebab)을 밀전병에 싸서 먹는다. 춘절에 먹는 춘권(Chinese spring rolls)인 중국식 전병도 밀전병에 야채와 고기를 싸서 만두처럼 튀기거나 구운 음식이다.

밀전병에 싸든, 또띠야에 싸든, 인젤라에 싸든, 반짱에 싸든 쌈은 조화의 음식이다. 곡물 야채 고기 그리고 소스까지 네 박자가 조화롭다. 싸움을 그치고 누군가와 화해했다면 오늘 메밀전병쌈이나 월남쌈을 먹을 만하다.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