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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대기자의 人香萬里(인향만리) <2-1> 지역 정신을 세운 사람들- 부산대 초대총장 윤인구(上)

그의 눈빛·열정이 말했다 "위트컴 장군, 이 땅의 꿈·교육 비전을 사주시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6-03-06 18:54:39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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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윤인구. 맑고 투명한 눈빛이 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야심찬 청년의 기상을 보는 듯하다.
- 1953년 전쟁 폐허가 된 한국에
- 국내 최초 민립·국립대학 세워

- 부지 50만 평 마련 성공 이끈
- 위트컴과의 건립 실화도 유명

- 종 모양의 캠퍼스 배치도부터
- 당겨진 활 시위같은 무지개문
- 자유의 상징 옛 본관 건물까지
- 학생이 꿈꾸는 공간에 적극 투자
- 대학이 가야할 교육철학 담아

저 눈빛. 찌를 듯, 파고들 듯하다. 잘 생긴 얼굴이란 느낌마저 압도하는 저 강렬함. 저 눈빛과 열정으로 국내 최초의 민립·국립대학을 세우고, 동해의 기운을 불러 새벽벌(曉原)을 열었으리. 청년이 꿈꾸고 노래하는 법과 이 땅의 교육이 가야할 길을 가르친 교육 선각자. 윤인구 부산대 초대 총장(1903~1986).


#위대한 꿈을 팔다

1953년 서구 대신동 부산대의 판잣집 건물로 잘 생긴 벽안의 미군 장성이 들어선다. 윤인구 부산대 초대총장의 초청을 받고 온 위트컴 미군 군수기지사령관이었다. 반갑게 위트컴을 맞은 윤인구는 집무실에 붙여놓은 그림 한 점을 보여주며 말했다.

"장군, 내 그림을 사 주시오."(윤인구)

"무슨 그림이요?"(위트컴)

"이 땅의 꿈과 교육 비전이 담긴 그림이오."(윤인구)

"하하. 그거 흥미롭군요. 좋소. 내가 그 그림을 사겠소!"(위트컴)

인류사에 남을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이 거래되는 순간이었다. 그 그림은 부산대 장전 캠퍼스 배치도였다. 대학 문을 열었으나 캠퍼스 부지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윤인구는 위트컴의 통근 수락에 감격했다. 윤인구가 요구한 캠퍼스 부지는 금정구 장전동의 산지 50만 평. 일반적인 상상을 초월하는 면적이었다. 1952년 준공한 서구 대신동의 부산대학 건물 면적이 566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무려 1000배 가량 넓은 땅이다.

위트컴은 호탕하게 웃은 뒤 윤인구가 '사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 꿈의 내용에 주목했고, 도시 재건 차원에서 통 크게 수용했다. 위트컴은 곧바로 정부와 경남도지사를 설득해 장전캠퍼스 165만 ㎡(50만 평)가 무상양여될 수 있게끔 조치했고, 캠퍼스 시설 공사비 25만 달러를 대한미군원조처(AFAK)를 통해 지원받게 했다. 미군 제434공병부대는 온천장~부산대 길이 1.6㎞의 진입도로를 뚫어 주었다.

오늘날 부산대는 이렇게 해서 터전을 마련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상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보잘 것 없는 대학의 총장이 그림 한 장으로 세계 최강국의 군수기지사령관을 감동시킨 일화는 음미하면 할수록 짜릿하다. 그 만남이 있은 후 위트컴은 윤인구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대학 건설에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54년 11월 장전캠퍼스 부지 설정 공고판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위트컴(1894~1982)은 부산을 사랑하고 헌신한 미국인이다. 그의 묘지는 부산에 있다. 그는 대연동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미군 32명 중 유일한 장성이다. 그의 부인 한묘숙(91) 여사에 따르면 장군이 소장한 책이 컨테이너 몇 대분이었는데 사후 부산대에 기증할 생각이었으나 이사 과정에서 분실하고 말았다고 한다. 어쨌든 부산대는 워트컴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종(鍾)에 들어앉힌 캠퍼스

부산대 초대총장 윤인구가 그린 종 모양의 장전동 캠퍼스. 이 그림 한장으로 윤인구는 위트컴 장군의 지원을 받아 50만 평의 장전동 캠퍼스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위트컴의 마음을 사로잡은 윤인구의 '그림'은 지금 봐도 신통방통하다. '부산대 동래캠퍼스 평면도'라는 제목을 단 그림은 종 모양으로 설계돼 있다. 종 속에는 종의 추가 움직이는 형태로 대학 본관(현 인문관)과 무지개 문, 대학극장, 도서관, 운동장 등이 짜임새있게 배치돼 있다. 상단에는 종 전체가 흔들릴 수 있게 고리를 달아 놓았다. 캠퍼스 그림을 그리면서 윤인구는 동료에게 "이 거대한 종소리가 울리는 날 진리가 세계 끝까지 울려 퍼질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인구는 워트컴을 초청하기 전부터 그림(캠퍼스 배치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참고한 그림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1929년 제작한 '캠퍼스 라이프 안내' 팸플릿이었다. 윤인구는 1929~1930년 프린스턴 대학의 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하며 그곳의 캠퍼스 분위기와 건물 배치 등을 눈여겨 봐두고 있었다.

목회자가 되고자 했던 윤인구의 교육에 대한 신념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1월 그가 경상남도 학무과장이 되면서 싹이 텄다. 그해 12월 윤인구는 부산대학 창립안을 만들었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을 하나 하나 처리해냈다.


#노래하는 무지개 문

1950년대 말 부산대 전경. 활 형태의 무지개 문과 본관 건물이 보인다. 윤인구의 꿈과 교육사상이 녹아든 건축물이다.
윤인구의 꿈과 교육사상은 장전캠퍼스의 무지개 문과 옛 본관 건물에 상징적으로 표현돼 있다. 윤인구는 회고 글에서 "대학 본관과 무지개 문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무지개 교문은 내가 설계했다. 큰 기둥을 세우는 것보다 뒤에 있는 산, 푸른 하늘, 흰 구름을 다 포함할 수 있는 무지개(홍예) 문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1957년 세워진 무지개 문은 하늘로 높이 화살을 쏘아 올리는 형상이다. 설계자의 의도대로 이 문을 통해 학생들이 드나들고 금정산을 배경으로 하늘과 구름이 무시로 오고 간다. 활 시위처럼 당겨진 무지개 문의 한 중간에는 종을 매달았다.

'나는 하늘로 화살을 날렸다네/ 그러나 어딘가에 떨어졌지만/ 너무나 빠르게 날아갔기에/ 내 눈은 그것을 따라 갈 수 없었다네/ 나는 하늘로 노래를 불렀다네…'.

미국 시인 롱 펠로우의 '화살과 노래'는 무지개 문을 설계할 때 영감을 얻었다는 시다. 교육은 어딘가에 있을, 어딘가에 닿을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다. 윤인구는 "교육가는 차가운 돌맹이에서 혈맥이 뛰는 생명체를 제작해 내려는 사람이다"고 정의한다. 미켈란젤로가 한갓 바위를 망치와 정으로 쪼아 청년 다윗상을 만든 것처럼, 교육가는 창조적 마인드를 품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본관 건물에 투영된 교육철학

초대형 프로젝트가 계획되었다. 윤인구는 1958년 프랑스에서 귀국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중업을 만나 본관 건물(현 인문관) 설계를 요청한다. 윤인구의 두뇌와 김중업의 감각이 결합되자 시너지가 만들어졌다.

본관 건물의 중앙 홀은 5층까지 전면유리로 꾸며졌다. 안에서 창밖을 보면 아스라한 도심 풍경 속에 황령산까지 눈에 잡힌다. 맑고 푸른 날 바깥에서 이 건물을 보면 둥근 유리벽에 하늘과 구름이 넘실거린다. 광명이 주는 진리가 숨쉬는 모습이다.

70m에 이르는 필로티, 즉 공중에 떠 있는 공간은 자유를 상징한다. 이 속으로 금정산의 바람이 드나든다. 윤인구는 자유를 '만사에 구애받지 않음'이라 설명했다. 이는 주어진 환경과 여건 등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을 돌파하는 능력을 말한다. 대학정신의 소중한 덕목이다.

본관 건물은 규모나 디자인, 그 속의 철학 어떤 것을 봐도 획기적인 건물이다. 1950년대에 '63빌딩'을 세운 격이었다. 완공 행사때 당시 문교차관 김선기는 "궁궐같다"고 했고, 유네스코에서는 낭비라고 일침을 놨다. 그러나 윤인구는 "호연지기를 기르고 큰 인물을 키우려면 그만한 그릇이 필요한 법"이라고 응수했다. 부산대 본관 건물에 대해 서울대 김민수(미술사) 교수는 "20세기에 부산에 세워진 현대 건축물 중 역사적 미학적으로 소중한 가치를 가진 건물"이라고 평가했다. 윤인구의 안목을 인정한 말이었다.


#윤인구가 펼친 꿈의 크기

윤인구 재조명 작업에 매달려 온 부산대 김재호(전자공학) 교수는 두 가지 궁금증을 갖고 '옛 대학 본관 건설 규모에 대한 이색 고찰'을 시도했다. 당시 돈이 얼마나 들었으며, 오늘의 국가경쟁력에서 그같은 꿈을 달성하려면 어느 정도의 꿈을 꾸어야 할까라는 것이었다.

연구결과, 본관 건물 공사비는 당시 기준으로 약 300억 원이 들어갔다. 1958년과 2013년을 비교하면 그동안 한국은 359배 성장했다. 금값의 인플레를 고려하면 67배의 실질성장이다. 단순 계산으로 '300억×67' 하면 약 2조 원이 된다.

흥미로운 것은, 본관 건물에는 중앙홀과 필로티 등 비실용적 공간이 전체 건축비의 약 25%가 될 정도로 많았다는 점이다. 대학정신을 표상하기 위해 약 5000억 원의 자금이 들어간 셈이다. 김재호 교수는 "윤인구 총장은 학생들을 위한 어떠한 투자라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신 분 같다"고 했다.

6·25 직후 가난에 허덕이는 상태에서, 그것도 지방에서 국가가 지으라고 한 것도 아닌 대학의 본관 건물을 어떻게 이렇게 웅장하고 미려하게 지을 수 있었는지 놀랍기만 하다. 윤인구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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