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량 왜관선착장(현 부산데파트 부근)은 대마도 비선이 무역을 위해 200여 년이 넘도록 빈번히 드나들던 공간이었다. 사진은 18세기 부산포 초량왜관도.

- 조선통신사로 파견됐던 조엄
- 이 선박에 고구마 실어 들여와

1763년 10월 6일. 472명의 인원을 거느린 조선통신사 정사 조엄(趙曮)은 이른 아침 부산포 영가대를 출발해 그날 오후 늦게 대마도 북단의 사스나(佐須奈)포구에 도착했다. 40여 일 동안 부산에 머물면서 바다를 무사히 건너기 위해 기회를 노린 대장정의 첫 결실이었다.

그러나 바다를 건너오면서 배의 방향타가 망가져서 고생도 많았지만 정사 조엄은 첫 기착지 사스나에서 구황작물인 고구마를 발견하고 먼저 두어 말을 구해 동래부로 보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여기에 정사와 부사가 탄 1·2기선의 방향타가 부실하게 건조된 것에 대해 책임과 죄를 거론한 장계(狀啓)와 집안 안부편지도 준비해 차왜(差倭)로 하여금 부산으로 함께 보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날씨가 고르지 못해 몇 일간 모든 배들이 포구에 발이 묶이는 바람에 마음만 졸였다. 드디어 닷새째 되는 날, 날씨가 점차 수그러들자 모든 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대마번주는 이들 조선통신사 일행의 첫 기착을 조선 측에 신속히 알리기 위해 연락선을 대기시켜놓은 상태였다. 이러한 특수임무를 띠고 대마도에서 운항되는 선박이 비선(飛船)이다. 조선 땅에 들어온 첫 고구마도 이 선박에 실려 왔다.

우리 기록에 비선이란 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인 17세기 초가 아닌가 싶다. 1605년 박인로가 통주사(統舟師)로 부산에 부임할 때 수군의 병선 위에서 전쟁의 비애와 평화를 추구한 노래 '선상탄(船上嘆)'을 보면"飛船에 려드러 先鋒을 거치면"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비선은 고구마를 실은 성신외교의 연락선이 아니라 왜구들이 탄 침략의 병선이다.

17세기 중반이후로 가면서 비선은 자주 나타난다. 예조 산하 전객사에서 편찬한 '전객사별등록'이나 '왜인구청등록'을 비롯해 조선통신사 사행록과 조난표류기 등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개항 이후에 와서도 '한성순보'나 부산항감리서기 민건호의 일기 '해은일록'에서는 선명이 아닌 비선이란 명칭으로 개항장을 드나든 선박으로 기술돼 있다.

본래 비선은 일본 에도시대의 작고 빠른 배를 가리킨다. 오래 전부터 일본 세도나이카이에서 연안화물이나 사람들을 운송하는 데 사용됐다. 그러니까 비선은 오랜 역사를 가진 일본의 전통 선박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대마도와 같은 섬에서는 촌선(村船)이라 부르며 오래 전부터 생업에 이용되어 왔을 뿐 아니라 통신연락의 방편으로서도 크게 활용하였다.

특히 임진왜란이후인 1609년에 맺은 기유약조에 따라 부산포에 단일 왜관이 들어서면서 무역과 연락을 위해서는 비선의 역할이 컸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대마번주는 수시로 조선과 일본 대마도 간에는 어용비선(御用飛船) 즉 공용비선을 띄웠다. 그 가운데 승선인원이 7, 8명 되는 소형 선박이 가장 빈번하게 오갔다. 수시로 일본에서 산출되는 은을 싣고 왜관으로 들어오다 보니까 은선(銀船)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출항 시에는 인삼과 같이 일본에서 시장가격에 민감한 품목을 싣고 나갔는데, 그 당시엔 이러한 인기품목을 급히 수송하는 데는 비선이 제격이었다.

부산세관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