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전자 무과실 입증 가능할 것"
최근 자동차를 장만한 박정연(여·34) 씨는 5개 카메라가 동시에 녹화되는 5채널 블랙박스를 구매했다. 4개 카메라는 차의 전후좌우에 설치했고, 나머지 한 개 카메라는 운전석 아래쪽에 페달 부분을 향해 달았다. 혹시 모를 급발진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박 씨는 "최근 언론 통해 급발진 의심 사고를 종종 접하다 보니 불안한 마음에 카메라를 페달 쪽으로 달았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부산 동래구청에서 발생한 제네시스 차량 민원실 돌진사건(본지 지난 15일 자 6면 보도)의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면서 급발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표적 예로 급발진을 입증하기 위해 페달 쪽을 촬영하는 이른바 '페달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운전자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 급발진 의심 사고는 증가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2014년 8월까지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는 총 417건에 달한다. 2010년 28건에서 2011년 34건, 2012년 136건, 2013년 139건, 2014년(1~8월) 80건으로 늘고 있다.
하지만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급발진이 공식적으로 판명이 난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다. 자동차의 결함은 같은 현상을 재연함으로써 입증할 수 있지만, 급발진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12년 미국에서 토요타 리콜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항공우주국(NASA)까지 나서서 급발진을 조사했지만, 입증에는 실패했다. 따라서 급발진 의심 사건 대부분이 운전 부주의와 같은 운전자 과실로 처리된다. 사고에 따른 인명·재산 손해를 운전자가 전부 책임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운전자 스스로 급발진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박 씨가 설치한 '페달 블랙박스'뿐만 아니라 브레이크·가속 페달과 블랙박스를 특수케이블로 연결해 페달 조작 기록을 자동으로 저장하는 방법도 등장했다. 부산진구 양정동에서 블랙박스 설치업체를 운영하는 박관녕(42) 씨는 "급발진 의심 사고의 동영상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최근 고가 차량을 중심으로 페달 블랙박스 설치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페달 블랙박스가 급발진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동래경찰서 교통조사계 관계자는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판단할 문제라 단정할 수 없다"면서도 "차가 전진하는 장면이 정면 카메라를 통해 녹화되고, 같은 시간에 운전자가 가속 페달이 아닌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것을 찍은 영상이 있다면 논리적으로 급발진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명대 임석연(자동차공학과) 교수도 "자동차의 결함까지는 입증이 어렵더라도 최소한 운전자에게 과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고 본다"고 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