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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대기자의 人香萬里(인향만리) <1> 프롤로그

산천 기운 받아 인걸 쏟아진 터전…그곳이 부산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12-31 19:09:21
  •  |   본지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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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과 노무현. 부산이 정치적 고향인 두 전직 대통령은 한국정치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지만 인간적 애증도 남달랐다.
- 대륙과 해양 맞닿은 지형
- 인재 태어나고 모인 도시

- YS·노무현 두 대통령 배출
- 현재 여야 주역들 이곳 출신

-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이들과
- 살신성인 보여준 의인들
- 문학인·향토사학가 업적도
- 만리 퍼지는 향기 찾는 여정

인걸지령(人傑地靈)이라 했다. 인걸은 산천의 좋은 기운을 받아 태어난다는 뜻이다. 산천이 생기롭고 주변의 기운이 좋으면 훌륭한 인재가 배출된다는 말이겠다. 풍수학적으로 부산의 지령이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지만, 무수한 인걸과 호걸이 배출된 것을 보면 지령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부산은 지형지세가 수려하다. 금정산과 황령산, 장산이 도시를 진호(鎭護)하고 민족의 대하 낙동강이 백두대간의 기운을 몰아 역동적인 하구를 형성한다. 거기에 도시 전면에 태평양이 무장무장 펼쳐져 있다. 또 대륙으로 뻗은 길들과 해양으로 나가는 길들이 부산에서 시작되고 끝난다. 지정학적·지경학적 요처다.

#지령이 좋은 땅

근현대사의 격랑이 일 때마다 외래 문물과 함께 삶의 보따리를 이고 진 귀환동포들과 8도민들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이 서로 부대끼며 어기여차 치열한 삶의 용광로를 빚어낸 곳이 부산이다. 부산의 개방성과 역동성, 의리성은 이렇게 도시의 DNA로 박힌다. 역사적 시련을 겪으며 무수한 인걸과 호걸들을 얻었으니 이는 지령의 선물일 터. 부산이 움직이면 역사가 바뀌고, 부산이 움츠리면 나라의 기가 꺾인다는 말도 있지 않았던가. 하고 보면 인걸지령이요 지령인걸이다. 사람이 도시를 만들고, 도시가 인물을 만든다는 것이다.


#한국정치 1번지 부산

부산은 한국정치의 1번지로 통했다. 김영삼(YS)과 노무현,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도시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부마민주항쟁과 6월 항쟁을 주도하며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 된데다, 높은 정치적 표심이 한국정치를 좌우할 만큼 파워풀했다는 뜻이다.

지역에 미치는 파워의 강도를 떠나 한국정치의 여야 주역들이 모두 부산출신이란 것은 주목할 부분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 정의화 국회의장 등이 모두 부산 출신이다. 김·문 대표는 경남고, 정 의장과 안 전 대표는 부산고를 나왔다. 보기에 따라선 '부산이 다 해 먹는다'는 말을 들을 만하다. 여야 대표와 국회의장이 모두 부산 출신이 차지한 건 해방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 11월 서거한 YS는 한국정치의 거목 이전에 부산정치의 거산(巨山)이었다. 경남 거제 출생인 YS는 부산에서 중, 고등학교를 다니고, 국회의원 9번 당선 중 서구에서 7선을 했을 할 정도로 부산과 인연이 각별하다. 대통령 재임시 YS는 부산 신항만을 국책사업으로 만들었고 거가대교 건설을 추진했다. 또 지역 해양 수산인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해양수산부를 신설했고, 1995년 우여곡절 끝에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자동차) 공장 부산 유치를 성사시켰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도 당시 민주당 총재인 YS의 국회의원직 제명에 분노한 부산·마산시민들의 궐기에서 비롯됐다. 부산이 민주화의 성지로 우뚝 선 것은 YS라는 걸출한 정치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YS의 부산 행적은 현대사의 궤적이자 부산의 지역사다. 부산 서구가 추진 중인 YS기념관은 국가적·지역적 의미를 함께 갖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정계에 입문시킨 이도 YS였다. 노무현은 김해 진영 출신이지만 부산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저는 이 도시에서 고등학교(부산상고, 현 개성고)를 다녔고, 변호사를 했고, 처음 국회의원을 했습니다. 시장선거에서 떨어지기도 했고요."(2005. 11. 부산APEC 최고경영자회의)

그의 말처럼 인생의 출발도, 정치적 영광과 좌절도, 대통령이 된 것도, 탄핵을 당한 것도 모두 부산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 부산에 대한 노무현의 애증은 특별했다. 부산 출신 대통령으로서 부산시민들에게 인정받고 싶었으나 그 바람은 끝내 '짝사랑'처럼 돼 버렸다. 2004년 대통령 탄핵이란 극한 위기에서도 부산은 그를 지키려 하지 않았다. 당시 부산시민들이 노무현 정권을 '부산 정권'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정치지형의 문제를 넘어 '지역주의'를 곱씹게 만드는 대목이다.

노무현은 풍운아였다. 보수 언론과 검찰 등 한국사회의 거대한 기득권의 벽을 실감한 노무현은 그 벽을 깨고자 스스로 그 벽에 부딪혀 산화했다. 단군 이래 그런 정치적 비극은 없었다. 퇴임 후 고향인 김해 봉화마을로 돌아와 서민적 풍모로 농사를 짓고 생태하천을 가꾸던 따뜻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YS와 달리, 노무현에 대해선 부산에서 기념관 건립 시도조차 없다. 그나마 '노무현 정신'을 말하는 일부 시민이 시내 곳곳에 '바보주막'을 열어 그의 유지를 더듬고 있을 뿐이다. 부산은 노무현을 언제까지 '아웃사이더'로 외면할 텐가.

거산과 바보, 이미 고인이 된 두 전직 대통령은 한국정치의 큰 봉우리이자 부산의 중요한 자산이다. 이들의 궤적에 어떤 '부산성(釜山性)'을 입혀 스토리텔링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의리의 사나이들

부산이 의리의 도시라는 것은 내연하는 지역 가치다. 부산 시민 스스로 의리를 중시하고, 역사적으로도 의리의 사나이들이 숱하게 명멸했다. 임진왜란 때 동래성과 부산진성, 다대진성을 각각 맡은 송상현과 정발, 윤흥신 장군은 임지에서 죽음으로 강토를 지켰다. 이들이 한결같이 품은 가치는 견리사의(見利思義), 견위수명(見危授命), 즉 이익을 보면 의를 먼저 생각하고, 나라가 위험에 처하면 목숨을 내놓는다는 자세였다.

영화 '울지마 톤즈'를 통해 아프리카 남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린 고 이태석 신부와 도쿄 지하철에서 달려오는 전동차를 보면서도 뛰어들어 행인을 구하다 숨진 이수현. 이들은 둘다 부산 출생이다. 이들이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통해 확인하고자 한 것은 의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세상은 이들을 의인(義人)이라 부르는 것이리라.

'사람답게 살아가라!'던 요산 김정한의 문학정신은 후대가 두고두고 길어낼 '정신의 샘물'이다. 생전 요산은 그가 살던 서구 서대신동 아파트 거실에 이 문구를 걸어두고 후배 후학들이 찾아오면 넌지시 눈짓으로 읽어보도록 했다. 불의에 저항하고 의롭게 살 것을 무언으로 가르친 것이다. 요산이 강조한 '사람답게'라는 말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무섭게 받아들여야 할 삶의 경구다.

사진가 최민식과 작가이자 향토사학가 최해군이 각각 '인간'과 '부산'을 붙잡고 평생을 씨름한 이유도 따져보면 사람이 지킬 가치, 의를 위한 분투가 아니었을까.

연제구 거제동 거제시장 상인들(거상친목회)이 1985년 광복절에 세웠다는 '군의소리(君義小利)' 비석도 잔잔한 울림을 준다. '군자는 의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이 말은 부산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생각하는 의가 무엇인지 잘 말해준다.

독립운동가들이 항일투쟁을 통해 찾으려 한 것은 자유롭고 의로운 세상이었다. 안희제, 박재혁, 최천택, 박차정과 그의 오빠들(박문희-문호), 한흥교-한형석 부자 등은 자신을 전부를 던져 불의에 맞서면서 민족 정기를 지켜냈다.

독립운동가들을 똑같은 반열에 놓고 단순한 역사 인물로 평가할 게 아니라, 숨겨진 개별 스토리를 찾아 문화콘텐츠화 하는 작업은 늦출 수 없는 과제다.


#만 리 가는 사람의 향기

영웅이 사라진 시대라지만 영웅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난세와 혹세를 풀어가는 선지자(先知者), 선도자(先導者),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가진 자가 있는 법이다. 단지 옛날과 지금은 영웅을 보는 눈과 영웅을 읽는 시각이 바뀌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인물이 영웅인가. 지역 인물이되 지역에 갇히지 않고, 글로벌한 가치를 품고 미래 비전까지 제시하는 인물, 크고 넓은 생각으로 부산을 더 크게 만들 인물, 그렇게 '부산 정신'의 줄기를 잡아나갈 인물…. 부산은 인걸과 호걸이 성한 곳이라 했으니 찾는다면 그런 영웅이 왜 없겠는가.

화향백리(花香白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라 했다. 꽃의 향기는 백 리를 가고, 술의 향기는 천 리를 가며,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는 말이다. 만 리를 뻗치고도 남을 그런 향기를 가진 인물 탐사를 새해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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