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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귀촌 인생 2막 <1> 구아버 농장주 임흥섭 씨

예순 앞두고 만난 요놈 덕에 억대 연봉자 됐죠

  • 배재한 기자 myway@kookje.co.kr
  •  |   입력 : 2015-12-31 19:09:40
  •  |   본지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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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 후 또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자발적으로 사표를 던지고 농어촌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번듯한 개인사업체를 접고 새로운 삶을 찾아 농어촌에 둥지를 튼 중년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농어촌에서 제2의 삶을 살도록 이끌었을까?

익숙한 삶과 결별하고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으며 자기만의 인생 2막을 살찌우는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시리즈로 엮는다.

- 열대과일 구아버 효능 접한 뒤
- 일본 자료까지 뒤져 확신 갖고
- 보험사 다니던 아들도 불러들여
- 의령에 새로 터 잡은 지 10년째

- 초기 3년가량 시행착오 버텨내고
- 재배 자리잡자 가공식품도 개발
- 친환경농법 입소문 타고
- 매출 꾸준히 상승세
- 美·中 수출까지

경남 의령군 칠곡면 산남리 들녘에 자리 잡은 귀농인 임흥섭(67) 씨의 농장을 찾아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남해고속도로 군북IC로 빠져나와 20여 분을 달려 칠곡면 사무소 앞에서 주민들에게 길을 묻기를 여러 차례, 차량 내비게이션에도 나오지 않는 농로를 따라 어렵게 도착했다.

몇 차례의 전화 통화 끝에 농장으로 찾아간 기자를 마음씨 좋아 보이는 '농부'가 밝은 얼굴로 맞아주었다. 그 농부가 바로 이곳에서 9년 동안 열대성 과일인 구아버를 재배하는 임 씨다.

■ 50대 후반 새 삶 찾아 농촌으로

경남 의령군 칠곡면 산남리 임흥섭(왼쪽) 씨 부자가 구아버 농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덕철 선임기자 kangdc@kookje.co.kr
임 씨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2007년 1월이다. 그 당시 58세,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는 다소 많은 나이였다.

평소 친분이 있는 스님으로부터 국내에서는 생소하기만 한 열대성 과일인 '구아버'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아메리카에서 주로 재배되는 탁구공 크기의 '구아버'가 고혈압 당뇨 등 성인병은 물론 비염 아토피 등 만성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부경대(옛 부산수산대)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한 임 씨는 대학 졸업 후 식품회사에 근무하는 등 식품에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나만의 식품'을 만들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임 씨는 5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 구아버와 운명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생소하고 연구가 부족했지만 이웃 일본에서는 구아버 관련 연구논문이 많았습니다. 일본의 대표적 음료회사인 일본 야쿠르트가 구아버 잎으로 우린 차를 만들었는데 일본 후생성으로부터 특정보건음료 1호차로 인정받을 정도였습니다. 이 음료의 연간 매출액이 5000억 원을 넘을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는 데 큰 힘을 얻었죠."

임 씨는 마산에서 운영하던 오디오 가게를 접고 유난히도 추웠던 2007년 1월 낯선 땅 의령으로 들어왔다. 구아버 농장을 일궈 '값싸고 믿을 수 있는 식품'을 세상에 내놓겠다는 꿈이 그를 의령으로 이끌었다. 1500평의 논을 매입해 부인 김태남(65) 씨와 함께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2500그루의 구아버 나무를 직접 심었다.

임 씨는 귀향 후 6개월 만에 대학을 졸업하고 부산에서 대기업 계열의 보험사에서 근무하던 아들 태훈(40) 씨까지 불러들였다. 끝이 정해진 직장생활 대신 새로운 삶의 모델을 아들과 함께 일구고 싶다는 아버지의 바람을 아들은 말없이 따랐다. 부자지간의 사랑과 신뢰가 부자(父子) 귀농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만 해도 부자가 함께 귀농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구아버 농장을 일궈 가공식품을 개발하면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죠." 아들 태훈 씨는 "이런저런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귀농하기를 잘했다"고 말했다.

■초기 큰 위기 "밥 굶지 않는다" 돌파

구아버 화장품
큰 결심을 하고 시작한 농촌생활이었지만 고난의 연속이었다. 농장의 토양이 생장 조건과 맞지 않아 시들어 죽어가는 구아버 숫자가 늘었다. 땅밑을 파보니 논바닥이 돌밭이라 제대로 착근하지 못한 것이다. 귀농 초기 심었던 2500그루의 구아버를 5년 만에 파내고 모두 다시 심어야 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곡괭이로 논바닥의 돌과 자갈을 파내는 작업을 밤낮으로 하며 구아버를 심었습니다. 그때 곡괭이질을 얼마나 했던지 팔목에 무리가 가 지금도 통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재배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수확량이 적을 수밖에 없었고, 구아버 판로도 제대로 개척하지 못한 상태였다. 자연히 수입도 변변치 못했다.

초기 2, 3년 동안은 수입은커녕 밥 먹고 살기도 어려웠다. 속이 다 타들어 가고 당장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들었다고 임 씨는 털어놨다.

"그렇다고 구아버 농사를 그만둘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합류했는데 아버지로서 뭔가 돌파구를 열어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생기더군요. 이미 바닥이었기에 더는 잃을 게 없었죠. 농사를 짓는 이상 밥은 굶지 않겠다는 배짱이 생기더군요."

이때부터 임 씨는 구아버 농사에 더욱 매진했다. 구아버의 특성을 이용한 가공식품(상품) 개발로 눈을 돌렸다. 주문자상표 부착(OEM) 방식으로 화장품, 구아버 차, 구아버 쌀국수, 샴푸 등을 만들어 인터넷을 통한 판매에 나섰다. 제품 디자인 개발과 인터넷 판매 등은 아들 태훈 씨가 도맡아 진행했다. 친환경 농법으로 구아버를 재배하니 임 씨의 생산 제품은 믿을 만하다는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친환경 농산물 인증까지 받자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쌓이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최근 3년째 15% 이상의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구아버 농장을 견학 오는 사람도 계속 늘고 있다.

임 씨는 올 10월까지 미국에 각종 구아버 제품 15만 달러를 수출했다. 중국과도 현재 수출상담을 진행 중이다. 2014년 매출액이 1억2000만 원을 넘었으며, 지난해는 1억5000만 원 정도에 달한다.

임 씨는 "3, 4년 전부터 구아버 농사가 본궤도에 올랐다"면서 "구아버 잎과 열매 등 단순 수확품 판매보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구아버 가공식품 개발로 방향을 전환하고 수출 등 판로를 다변화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귀농 10년 차에 접어든 새해 임 씨는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다. "구아버 가공식품 제조 공장을 마련해 구아버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물론 수출을 통해 친환경 농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의 화두인 '저녁이 있는 삶'을 넘어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서 아침과 저녁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임 씨는 "귀농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며 "도시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에서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가족과 이웃, 자연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털어놨다.

칠순을 바라보는 임 씨가 귀농 후 써 내려가는 '구아버 랜드' 성공스토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기대를 하게 한다.


# 농토 구입보다 임대로…2년가량 수입 없어도 견뎌낼 여유자금 필수

■ 임흥섭 씨의 성공 귀농 팁

나름대로 준비해 귀농하더라도 정착하기까지는 적잖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이다. 귀농을 꿈꾸는 사람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강사로도 활동하는 임흥섭 씨가 꼽는 '성공 귀농의 조건과 자세'는 무엇일까?

혼자 귀농하든지 부부가 함께 귀농하든지 반드시 부부와 자녀 등 가족들의 이해와 동의를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으로 들었다. 농촌생활은 노동을 기반으로 이뤄진다. 특히 귀농 후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이런저런 고비를 겪기 마련인데 가족의 협조와 지원 없이는 농촌생활을 계속 영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족의 이해와 지지가 강할수록 귀농에 성공할 가능성은 훨씬 커진다"고 임 씨는 강조했다.

충분한 사전 준비도 필수다. 어느 지역을 선택할 것인지, 농사를 짓는다면 어떤 작물을 재배할 것이며 수확한 농산물의 판로까지도 검토한 뒤 농토(논 또는 밭)를 마련해야 한다. 농토를 사들이는 것이 좋은 방법이지만 임대해서 시작하는 것도 귀농 초기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다. 귀농은 최소 10년 이상 미래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초기 2, 3년 동안 아무런 수입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 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농업은 단기간에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산업이 아닌 만큼 '하루 세끼 밥 먹고 살 정도의 수익만 나와도 괜찮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하다 보면 뜻밖에 짭짤한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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