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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 <21-4> 메트로 부산 스토리 여행- 봄날의 포옹-완월동 블루스(자갈치역)

완월동을 찾았다, 한때 이곳에 있었다는 그녀와 함께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12-27 19:42:46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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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잠긴 문을 두들겼다고 한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한다
그러나 그녀는 곧 깨달았다
밖에서 걸어 잠근 문은 이미
자신에게 미치는 도움의 손길이
전혀 없음을 증명한다는 것을


'너는 주인 있는 고양이'.

봄날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지하철 1호선 자갈치역의 2번 출구계단을 올라서면서부터 아무 말이 없던 봄날이었다. 고양이는 5년 전 봄날이 일했던 성매매 업소의 이층으로 난 계단에 앉아 있었다. 고양이의 목에는 붉은 색 노끈을 땋아 만든 줄이 걸려 있었고 고양이가 몸을 가눌 때마다 그 아래 매달린 방울에서 소리가 났다. 목에 잠겨있던 봄날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봄날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차가운 새벽 공기에 젖어 있던 내 몸이 서서히 데워지는 듯했다.

봄날과 함께 걷는 나도 아무런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종이에 연필로 꾹꾹 눌러쓴 글씨처럼 봄날이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은 느리지만 단호했다. 시내버스 첫차가 다니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사람들로 붐비는 충무동 사거리, 특히 충무동 해안시장과 자갈치시장으로 이르는 길을 지나면서 나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함께 글을 쓰는 동료나 지인들이 아닌 성매매 경험 당사자와 함께 완월동을 걷는 일은 생각보다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소설가적 호기심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성매매 당사자인 봄날이 걸어왔던 길, 완월동과 지금도 그 곳을 걷고 있는 이들의 발걸음을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마음을 짓눌렀다.



   
일제 강점기 녹정유곽이란 이름으로 출발한 부산 서구 속칭 '완월동'.
'너는 주인 있는 고양이'.

봄날이 혼잣말처럼 또다시 중얼거렸다. 봄날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여전히 몸을 낮춘 상태였지만 봄날의 발자국을 따라 자그마한 고양이의 몸이 움직였다. 나는 허둥지둥하며 봄날의 발걸음을 쫓을 뿐이었다. 봄날이 내딛는 계단을 더듬는 동안 작고 여린 고양이의 방울소리가 자꾸만 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층으로 오르자마자 봄날은 잠시 멈칫했다. 복도 안쪽에 방이 하나 있었다. 한때 자신이 머물던 곳이라고 봄날이 말했다. 부들부들 떨려오는 몸뚱어리를 진정시키려는 듯 봄날은 그대로 이층 난간으로 가 몸을 기댔다.

왼편으로 보이는 천마산 위의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80년대 동양에서 가장 큰 사창가로 불렸던,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완월동의 위용이 곧 드러날 참이었지만 어쩐지 완월동은 100년이 넘는 시간들이 온전히 고여 있는 장소처럼 느껴졌다. 60년대 초반만 해도 존재했던 아치형 입간판과 남자 성기를 조각한 커다란 나무기둥이 실제로 완월동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세워져 있다고 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길은 매끈했지만 가팔랐다. 즐비하게 늘어선 4, 5층짜리 여관건물과 그 사이사이에 보이는 초라한 일본식 적산가옥들, 낮게 그늘진 작은 가게의 모습에서 시간의 격차가 느껴졌다. 1907년에 서구 아미산 아래 부평동 지역의 유곽들이 완월동 일대로 옮겨오면서 시작된 역사, 식민지 시대에 일본인들의 향락장소로 이름을 날렸던 미도리마치(녹정유곽), 1948년 공창제도가 폐지되고 사창으로 전환되면서 불린 완월동,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들은 그린스트리트라 부르는 등 시대에 따라 그 이름도 다양했다.

아랫간으로 난 골목에 있는 24시간 사우나에서 목욕을 끝낸 여사장이 돌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봄날이 말했다. 이층 난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봄날을 보고 업소 여사장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다고 말하는 봄날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스쳤다. 그러나 봄날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당국의 묵인속에 호황을 누리던 1990년대의 완월동 골목 모습. 국제신문 DB
완월동으로 봄날을 이끈 것은 봄날의 몸에 새겨진 밤의 기억이었다. 밤은 아직도 봄날의 몸을 들썩이게 했다. 두통약 10여 알을 삼킨 것처럼, 물 속 깊숙한 곳에 처박혀 있는 것 같다가도 밤만 되면 귓가에서 양주잔에 얼음이 들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겨우 잠을 청한 날엔 악몽이 봄날을 깨웠고 낮에는 온종일 거대한 징소리에 갇혀 있어야 했다. 언제나 그렇듯 하루해가 시작되는 신호는 몸이 먼저 보내왔다. 팔다리가 떨어져나갈 듯한 통증이 점점 밀려오고 있었고 봄날은 팔과 다리를 자신의 주먹으로 세차게 내려쳤다.

이층 복도 끝에 소파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봄날은 소파에 가 앉지 않았다. 소파는 손님을 잘 치르고 있는지, 몰래 도망을 가지 않는지를 감시하기 위해 놓여 있던 것이라고 했다. 선수금과 말도 안 되게 매겨지던 벌금, 갚아도 자꾸만 불어나는 이자, 결국 남은 빚을 진 채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팔려가는 몸뚱어리 역시 똑같다고 봄날은 말했다.

봄날이 완월동 골목길을 단숨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랫간과 중간간, 윗간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 내내, 5년도 더 지난 일들이 봄날을 붙들었다. 윗간으로 오르는 골목 한 구석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는 병원, 이렇다 할 간판 없이 임상병리학과 산부인과 등 진료과목만 덩그러니 적혀 있는 그곳에서 수술을 받고 마취가 덜 풀린 몸으로 어딘가로 걸었던 일, 365일 온몸이 갈가리 찢어지는 고통을 감수하고서도 일을 해야 했던 하루하루, 어지럼증이 일고 아래쪽이 욱신거리고 약을 먹으면 미간에 수십 개의 바늘을 찔러 넣는 통증이 그때처럼 선명하게 봄날의 몸을 휘감았다. 매질을 피해 산복도로 동네로 숨어들었던 밤, 누군가의 억센 손아귀에 머리채를 잡히고 길바닥에 몸이 내동댕이쳐졌던 순간이 떠올라 봄날은 숨이 막혀왔다.

상처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남았다. 몸뚱어리에 새겨지고 그것이 감옥이 되어 평생을 그 속에서 웅크린 채 살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이 봄날은 더 고통스럽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제 돌아서야 한다고, 등 뒤에 버티고 선 문을 마주해야 한다고 봄날은 말했다.

봄날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문과 마주했다. 밖에서 잠기게 되어 있는 문, 그것으로도 부족해 보조 잠금 고리가 달려 있기도 했던 문이었다. 누구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던 문. 웃어라. 얼굴에 침을 뱉어도, 거기에 다른 것을 집어넣어도 웃어라. 교묘하게 몸 여기저기를 깨물고 멍들게 해도, 몸 위를 타고 올라 그 짓을 하다가 갑자기 칼을 들이대도 너는 웃어야 한다. 그래서 봄날은 웃었다. 웃으면 선수금과 벌금과 이자에서 벗어난 인생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화가 나도 웃고 아파도 웃었다. 나중엔 웃을수록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은 충동이 봄날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봄날은 몇 번이고 면도칼로 손목을 그었다. 수면제 한 움큼을 집어 삼켰고 과도로 허벅지를 찌르기도 했다.

자신에 대한 증오 때문에 온몸을 난도질하고, 그리고 혼절해서 홀로 눈을 떴던 어느 밤. 피범벅이 된 손으로 봄날은 문을 두들겼다고 했다.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은 문에 대고 봄날은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욕을 해댔고 온갖 저주를 퍼부었으며 차라리 죽여 달라고 봄날은 애원했다. 그러나 봄날은 곧 깨달았다. 이곳에서의 모든 고통은 홀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밖에서 걸어 잠근 문은 이미 자신에게로 미치는 도움의 손길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을. 그래서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것은 소파에 앉아 문을 지키고 선 누군가였다. 업소 여사장일 수도 있고 몸을 파는 더러운 창녀, 그래서 저 좋을 대로 얼마든지 갖고 놀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손님일 수도 있었다. 뒤에서 손가락질하며 멸시하는 사람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는 아버지일 수도 있었다. 아무리 소리쳐도 듣지 않을 사람들, 손잡아 주지 않을 세상. 문을 때려 부술 듯 짐승처럼 울부짖던 봄날의 울음이 잦아들었다. 조용히 흐느끼는 가운데 봄날은 겨우 숨을 토해내듯 외쳤다고 했다. 살려주세요.

그때 고양이 방울 소리가 들렸다. 여리고 가는 방울 소리가 어느 새 봄날 앞에 다가와 있었다. 너는 주인 있는 고양이. 울먹이던 봄날의 목소리는 다행히 잦아들어 있었다. 네 목에 달린 방울은 누가 달았을까. 빤히 봄날을 들여다보는 고양이를 봄날 역시 가만히 들여다봤다. 이 방에 갇혀 있는 누군가, 이곳 완월동에 머물며 쉼터에 드나드는 언니야들, 아니면 이곳을 벗어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떠난 사람일 수도 있겠다. 봄날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



"이게 누고?"

기척도 없이 어느새 업소 여사장이 이층에 올라와 있었다. 봄날은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업소 여사장은 봄날의 뒤편에서 우물대고 있는 나와 봄날을 번갈아 보았다. 무턱대고 적대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잔뜩 긴장한 나와는 달리 봄날은 밝은 표정으로 여사장에게 다가갔다.

"내다, 내. 알아보겠나?"

"엄마야, 그럼 알지. 근데 여는 어쩐 일인데?"

목욕바구니를 한쪽으로 내려놓고 빨랫줄에 젖은 수건과 속옷을 널면서도 업소 여사장의 눈은 봄날에게로 향했다. 봄날은 놀라움과 반가움, 그리고 의심의 감정들이 여사장의 얼굴에서 교차하고 있는 것을 여유 있게 들여다봤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노? 근데 얼굴 보니깐 잘 살았는 갑네. 요새는 뭐 하고 사노?"

이곳을 도망 나와 경찰서에서 여사장과 마주했을 때 봄날에게 온갖 악담과 욕을 퍼붓던 모습이 봄날은 아직도 생생했다. 다시 돌아올 거라고, 몸 파는 일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세상에 나가보면 알게 될 거라고, 두고 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던 여사장이었다.

"뭐, 학교도 다녔고 졸업도 했고. 지금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어요."

"엄마야. 보통은 니처럼 안 산다."

"보통은 그럼 우째 사는데?"

봄날이 쾌활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내 아는 애들은 나이 들어서 요런 장사를 하거나 결혼을 해도 이혼을 했거나, 돈 많은 사장놈 내연녀가 되거나. 그것도 아니면 아 낳아서 혼자 데리고 살던데. 야, 니는 참 성공했네."

봄날은 공부를 하면서 이런 저런 법조문들을 뒤지고 소설을 읽고 신문 기사와 칼럼, 역사책들을 부지런히 들쳐보았다. 그러면서 봄날은 깨달았었다. 이 사회는, 세상은 이곳에 존재하고 머물렀던 여자들의 불행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또 하나, 세상 사람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철저하게 믿고 있는 것이 있었다. 봄날의 미래, 이곳에 머무르고 머물렀던 이들의 미래 역시 불행할 것이라고.

그리고 봄날의 포옹. 생각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는 사이, 일순간 숨이 멎게 하는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봄날이 업소 여사장을 조용히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층 난간을 조용히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층 난간으로 밀려드는 햇볕 한 줌이 업소 여사장의 등을 토닥이는 봄날의 손길에 머물렀다. 어느새 고양이가 여사장과 봄날의 다리 사이를 오가며 몸을 비볐다. 봄날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되뇌었다. 이제 너를 지켜줄 수 있다. 우리의 불행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우리가 겪은, 지금도 여전히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세상으로부터 나는 이제 너를 지킬 것이다.

봄날에게 완월동의 기억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풀리지 않을 상처다. 그러나 봄날이 밖에서 걸어 잠근 방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자신에게 가 닿기 위한 시도는 수백 번, 수천 번이고 반복되어 온 일이고 봄날이 과거의 시간을 되뇌고 걷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봄날의 포옹은 업소 여사장을, 세상을, 이 사회를 용서하고 그네들과 화해하기 위한 몸짓이 아니다.

   

밤이면 봄날은 여전히 알몸인 채로 유린당하는 악몽을 꿀 것이다. 무심코 내뱉는 사람들의 말에 예민해지고 상처를 받고, 후회와 자신에 대한 연민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괴롭힐 지도 모르지만, 봄날의 포옹은 봄날에게 닥쳐올 불면의 밤, 그 밤의 한 가운데서 여전히 울고 있을 자신에게로 가는 또 한걸음일지도 몰랐다. 기어이 열고 들어서야 할 문이자 고통스러운 그 길에 놓을 디딤돌 하나를 발견한 일일지도 몰랐다.


최은순 소설가


※ 공동기획: 동서대학교,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국제신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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