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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 <21-3> 메트로 부산 스토리 여행- 초량역에서 산복도로까지

도심의 숨구멍…오르면 오를수록 자연 닮아가는 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12-13 19:10:48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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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걷다보면 부산항 등 점점 넓게 조망
- 골목마다 일상이 느린 풍경으로 다가와


- '늙은 어머니들의 관사' 수정아파트
- 아이들 소리 사라진 적막한 동네로
- 행복했던 시절 얘기하며 노년 보내

사람이 다니던 곳에 길이 생긴다. 그 길 따라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니 소통하는 공간이 생긴다. 그곳에 마을이 생기고, 시간이 쌓여 그 마을의 역사가 된다.

유난히 산복도로가 많은 부산, 그래서 부산은 '산복도로의 도시'다. 산복도로가 부산의 근현대사와 삶의 애환을 오롯이 담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광복과 한국전쟁의 과정 속에서 귀환동포와 피란민들이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았던 곳. 고향을 등진 사람들의 궁핍했던 삶들이 눈물처럼 고여 있는 곳이 바로 산복도로이다.

집과 집 사이로 그들만의 삶의 공간인 골목이, 실핏줄 같이 얼기설기 얽혀있는 곳. 그 골목 따라 산복도로 사람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삶들을 이어갔다. 그리하여 전국 유일의 '산복도로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이 산복도로가 새로운 도시재생공간으로, 부산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장소로 거듭나고 있다. 부산을 알려면 산복도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복도로를 부산 속 '슬로우 라이프 공간'으로 인식하면서, 전국에서 부산의 산복도로를 걷기 위해 찾아들고 있다. 그야말로 '산복도로 르네상스'가 도래한 것이다.


#부산 정체성의 공간-초량 산복도로

   
부산도시철도 초량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동구 망양로의 수정아파트 옥상의 빨래와 복도(아래) 풍경. 사진가 신정익 제공
초량역 1번 출구에서 나와, 이제 곧 생태하천으로 복원될 '초량 복개도로'를 따른다. 왼쪽으로 야시장이 개설된 초량시장이 나오고 곧이어 초량 육거리가 보인다. 초량 육거리는 기사식당 골목으로도 유명한데, 요즘은 '돼지불백 식당가'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핫 플레이스'다.

산복도로를 오르는 찻길로 사부작사부작 고개를 오르다보면, 산은 한 발짝씩 가까워지고 도시는 점점 넓게 조망이 된다. 산복도로와 합류하는 곳쯤, 멀리 장기려 박사를 기리는 '더 나눔 센터'가 보이고 그 위로 산복도로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이야기로 담아내는 '이바구 공작소'가 있다. 부산역에서 '초량 이바구길'로 산복도로를 오르면 모두 들릴 수가 있겠다.

초량 산복도로에 선다. 1968년에 개설된 '산의 허리를 타고 오르는 길', 초량 산복도로. 산의 등허리쯤에서 '부산의 지붕'들을 구불구불 타고 넘어가는 길이다. 때문에 부산항의 시원한 전망이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햇살에 반짝이는 푸른 바다와, 집과 집들이 사이좋게 이웃하고 있는 아름다운 부산의 길이다.

버스들이 휙휙~ 바삐들 지나간다. 산복도로에서 오른쪽 길을 따른다. 사명대사의 전설이 서려있는 금수사 계단이 보인다. 벚꽃 필 때쯤이면 산복도로와 금수사 주변은 분홍색 벚꽃이 난분분~ 바람에 흩날리며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곧이어 청마 시인의 문학적 삶을 조명하는 유지환 우체통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 전망대에는 유치환 시인의 조형물과 우체통이 서 있다. 이곳에서 부산항을 바라보면 바다 수평선과 부산항 대교,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북항 매립지와 부산국제여객터미널, 모자처럼 구름을 두르고 있는 영도 봉래산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부산의 산복도로에는 최근 전망 좋은 곳에 여러 건축물을 세워 산복도로를 찾는 여행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초량 산복도로에 유치환 우체통, 마사코 전망대, 이바구 공작소, 영주동 산복도로에 역사의 디오라마, 금수현의 음악살롱, 천마산 산복도로에 아미문화학습관과 한마음 행복센터 등이 그곳이다.

이 모두가 부산 원도심과 부산항을 더욱 다채롭고 풍요롭게 조망할 수가 있다. 산복도로를 걷다가 잠시 쉬면서 커피도 마실 수 있고, 산복도로의 문화도 일별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이윽고 수정아파트 입구 언덕배기가 보인다. 길을 오르니 52번 버스 종점 차고지가 나오고, 5층 건물의 수정아파트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아래 위로 아파트가 밀집해 있다.

아파트 골목골목마다 생짜배기 일상이 느린 풍경으로 다가오고, 개구멍 같은 아파트 입구로는 산복도로 사람들이 풀 방구리 드나들 듯 제 삶들을 꾸려내고 있는 것이다.


# 늙은 어머니들의 관사(官舍)- 수정아파트

   
수정아파트 곳곳을 휘휘 돌아본다. 어디를 가도 적막강산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거하는 사람 대부분이 노인들이기에 그렇다. 1969년 10평짜리 아파트 18개 동으로 준공을 했으니 47년의 나이를 먹은 아파트이다. 17동은 재건축하여 천광아파트로 새로이 들어섰지만, 나머지 17개 동은 여건이 안 맞아 재건축도 못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랫동안 수정아파트와 산복도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신정익 사진가는 수정아파트를 '늙은 어머니들의 관사'라고 부른다. "수정아파트는 노인복지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어서 노인들이 살기에 좋습니다. 때문에 수정아파트는 부유하지 않은 '노인들의 실버타운'이라 할 수 있지요."

아울러 "수정아파트는 홍콩영화 중경삼림의 배경 건물인 청킹(重慶)맨션과 그 분위기가 비슷합니다. 스토리를 잘 입혀 소개하면 좋은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라며 수정아파트의 건축 문화적 가치를 설명한다.

아파트를 돌다 이곳에서 1978년경 입주하여 40여 년째 살고 있는 권옥순(78) 할머니를 만났다. 아파트의 역사를 묻자 친절하게도 세세한 것까지 기억해 말씀해 주신다.

"수정아파트는 1969년도에 세워져서 '육구 아파트'라 불렀구마는. 미닫이문을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방이 2개 있었고, 연탄 아궁이 부엌 위에 쪼맨한 마루도 하나 있었지러. 세수할 데가 없어서 얼굴은 부엌에서 안 씻었나. 부엌 위에 손바닥만 한 다락도 하나 있었고." "꽤나 불편했겠네요?" "아이고, 그래도 그때는 신식 아파트 아이가? 변소도 수세식이었고." "화장실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변소는 공동변손데 복도 중간에 있었지러. 2집이 변소 1칸을 같이 쓰도록 되어 있었고…."

수정아파트는 각 층마다 복도를 중심으로 두 집이 마주보는 구조인데, 여름엔 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 생활 소음이 많았다. 라디오나 TV소리는 물론이고, 이웃의 코고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공동생활의 불편함도 있었겠지만, 그만큼 가족 같은 분위기도 연출 했다고 한다. 식사시간이면 밥 짓는 냄새가 복도에 진동을 하고 심지어 옆집 찌개 타는 냄새, 오랜만에 고기 굽는 냄새도 솔솔 풍겨와 서로 나누어 먹는 날도 많았단다, 부부싸움이 나면 이웃들이 찾아가서 말리는 일도 허다했다고.

"여게 사는 사람들은 주로 노가다(일용직 노동자)나 부두에 짐 내리는 사람(부두 하역노무자)들이 많았구마는. 배 타는 사람(외항선원)도 있었고 학교 선생님도 살았지러." 수정아파트는 정부에서 아파트를 짓고 땅값과 집값을 구분하여 장기 상환 방식으로 분양을 했는데, 사정이 어려운 가구는 아직도 상환을 다 하지 못해 잔여분의 청구서가 날아오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방 두 칸 중 한 칸을 세놓는 집도 많았었다고.


# 산복도로의 기억을 품고 있는 아파트

수정아파트 입주를 전후하여 그 주변은 오래도록 산복도로 개발로 어수선 했다. 공터도 많았고 여기저기 공사도 많았다. 당시 할머니들은 이 산복도로를 '신작로'라 불렀는데, 86번 마이크로 버스가 유일하게 이 '신작로'로 운행을 했다.

아이들은 산에서 주로 놀았다. 아파트 주변 산비탈까지 논밭이 있었고 소도 키웠다. 거름을 하기 위해 인분 구덩이도 있었다. 산은 거의가 헐벗은 민둥산이었는데, 한창 조림사업을 할 때는 입산통제를 시켰다. 그 시절 아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은 산지기였다. 산지기들에게 잡히면 매도 맞고 옷가지도 뺏겨 알몸으로 쫓겨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공터는 모두 아이들 놀이터였습니다. 여름밤에는 공터에서 술래잡기, 비석치기 등을 하며 놀기도 하고 겨울에는 썰매를 타기도 했죠. 가끔씩 산복도로 윗동네와 아랫동네 아이들끼리 편을 갈라 연탄재 싸움을 하기도 했습니다." 신 작가의 말이다.

아파트 입구 골목시장은 80년대 중반까지 활기가 넘쳤다. 처음에 리어카 노점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시장이 형성된 수정아파트 골목시장은, 당시 전자제품 대리점 문방구 양복점 양장점 중국집 미용실 이발소 약국 부식가게 슈퍼 철물점 정육점 등 없는 점포가 없었을 정도였다.

이러던 수정아파트도 1990년대를 지나며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한다. 주거의 불편함과 노후화 때문이다. 현재는 노인 한 명만 사는 가구가 대부분이며 연령대는 60~80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복도를 뛰어다니고 공터에서 노는 어린이들이 많았지만, 현재는 아이들 노는 소리가 사라진 적막한 동네가 된 것이다.

권옥순 할머니는 10호 동 관리인 일을 보는데, 혼자 사는 노인들이 대부분이라, 며칠씩 보이지 않는 경우엔 수소문해서 소재를 파악한다고 한다. 가끔씩 집에서 혼자 유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관리비는 동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한 달에 전기세 빼고 물 사용료 톤(t)에 500원, 운영비 2000원, 관리비 3000원, 정화조 500원, 상하수도 1000원이라, 사는 데 부담은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두 집을 터서 사용 하거나 세집을 터서 두 집이 사용하고 있다고.

70년대 수정아파트에서 자녀를 키웠던 노인들은 지금도 옛정을 못 잊어 당시 이웃들끼리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단다. 이곳에서 살던 때가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었던 사람들이, 좋아했던 사람들과 행복했던 시절을 이야기 하며 노년을 보내는 것이다.

한때 수정아파트 뒤쪽 국일주택 테라스 하우스에 산 적이 있었다. 산비탈을 깎아 아랫집 지붕이 윗집의 테라스가 되는 구조의 연립주택이었다. 산 중턱에 있기에 교통이 불편하긴 했지만 거칠 것 없는 조망은 부산 최고의 전망대였다.

개 몇 마리와 함께 살며, 봄이면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옥상에서 항아리 뚜껑에 막걸리를 담아먹곤 했다. 따사로운 바람이 불면 바람 따라 벚꽃 꽃잎이 술 잔 위로 화르르~ 떨어지곤 했다. 그런 신선놀음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우리 부산의 산복도로이다.

   
오르면 오를수록 세상과는 멀어지지만, 오르면 오를수록 자연을 닮아가는 길. 그리하여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의 싱그러운 풍경이 되고, 도시의 불빛을 지키는 안도의 등불이 되는 곳. 그 산복도로를 지키며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는 수정아파트 부근은 '산복도로의 산증인'이다. 때문에 수정아파트 부근 골목길을 걷기만 해도, 울고 웃던 산복도로 사람들의 삶이 촉촉하게 느껴진다. 산복도로는 사람냄새가 나는 도심의 숨구멍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최원준 시인

※ 공동기획: 동서대학교,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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