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지병으로 별세한 동서학원 설립자 장성만 박사는 부산 교육계의 개척자이자 산증인이다.
고인은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문대인 경남정보대를 설립한데 이어 1992년 동서대와 부산디지털대학을 설립해 평생 교육사업에 헌신했다.
장 박사가 교육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1960년대 미국 유학시절 기술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부터이다.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하던 접시닦기와 같은 단순 노동은 시간당 몇 달러밖에 벌지 못하지만 컴퓨터 조작 같은 기술이 있으면 수십 달러를 벌 수 있다는 기능 중심의 미국사회를 목격하면서 귀국해 기술계통의 학교를 세우는 데 뛰어들었다.
당시 장 박사는 미국 20개 주의 교회를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았다. 그 돈으로 귀국해 산 중턱의 과수원 부지를 사서 동서기독교 실업학교(현 경남정보대)를 세웠다.
장 박사는 1981년 민정당 창당 발기인으로 정계에 입문해 11, 12대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1987년)까지 역임했다. 1985년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지내면서 의료보험제와 최저임금제를 비롯한 7대 복지정책안 개발에 참여했다. 또 부산고법과 부산고검을 유치하는데도 힘을 보탰다. 장 박사는 정계에 입문한 계기에 대해 "제5공화국 출범 때 정계 입문을 요청받았지만 세, 네 번 거절했다. 그러다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뜻에 공감해 정치에 뛰어들었다. 정치보다 정책 생산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인생의 나침판으로 삼았다. 그는 "오늘날 우리 교육은 지식만 저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지혜가 없다 보니 (사회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디"는 말을 자주 했다.
장 박사는 2009년 12월 희수(喜壽·77세)를 맞아 그동안 써온 글 77편을 모아 '일흔일곱까지의 지혜'(e뉴스한국)를 펴내기도 했다. 그는 평소에는 하루 중 잠자는 시간 5시간을 빼고는 거의 독서나 글쓰는데 소일했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의 책을 구해 이틀에 한권 꼴로 읽을 정도로 학구열을 과시했다.
1988년 사단법인 한국지역사회연구소를 설립해 지방분권 연구에도 힘을 쏟았다.
장 박사는 일본 오사카 성서신학교를 거쳐 미국 신시내티신학대학원과 미드웨스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이기도 하다.
장 박사는 특히 2007년 '크리스천 21세기 포럼' 이사장 자격으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마부노호 선원 구출을 위한 모금 활동을 이끌었다.
그는 성금 모금과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하고 지역 1500개 50만 교인에게 호소문을 발송했다. 이것이 기폭제가 돼 마부노호 선원 석방을 위한 모금 운동이 부산 전역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저술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여 '빌사일삼'과 '디지털사회를 사는 지혜', '플러스파워'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이 가운데 '디지털 사회를 사는 지혜'는 중국어로 출판돼 중국교육부에서 선정한 우수 교양서적 100권에 포함될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2008년 학교법인 동서학원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21세기 포럼 문화재단을 설립한 후 숨은 인재를 발굴, 양성하는데 힘을 쏟아왔다.
고인은 1977년 부산시 문화상을 수상했고, 1978년 대통령 표창(교육공로), 2007년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동순 학교법인 동서학원 이사장과 아들 장제국 동서대학교 총장, 장제원 새누리당 전 국회의원, 딸 주영 씨 등 2남1녀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해운대백병원 장례식장 105호, 발인은 9일 오전 7시, 장지는 실로암 공원묘원이다.
동서학원장으로 치러지는 영결식은 9일 오전 9시 동서대학교 민석스포츠센터에서 열린다. 빈소(051) 711-1455, 동서학원(051)320-2961~4.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