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학원(동서대와 경남정보대) 설립자인 장성만 박사가 6일 오전 10시 2분 부산 해운대백병원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장례는 동서학원장으로 치러진다. 빈소는 해운대백병원 장례식장 105호(051-711-1455, 동서학원 051-320-2961~4)이다.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7시이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9시 부산 사상구 주례2동 동서대 민석스포츠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장지는 실로암공원묘원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동순 학교법인 동서학원 이사장과 아들 장제국 동서대학교 총장, 장제원 새누리당 전 국회의원, 딸 주영 씨 등 2남1녀가 있다.
고인이 된 장 박사는 일본 오사카 성서신학교, 미국 신시내티신학대학원과 미드웨스트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이자 동서대 경남정보대 부산디지털대학을 세운 교육자다.
11, 12대 국회의원(국회부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장 박사는 2009년 12월 희수(喜壽·77세)를 맞아 그동안 써온 글 77편을 모아 '일흔일곱까지의 지혜'(e뉴스한국)를 펴내기도 했다.
당시 장 박사는 국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계에 입문한 계기에 대해 "제5공화국 출범 때 정계 입문을 요청받았지만 세, 네 번 거절했다. 그러다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뜻에 공감해 정치에 뛰어들었고 정치보다 정책 생산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그는 2년6개월간 여당 정책위 의장을 역임하며 의료보험제도 확대, 최저임금법 제정 등에 앞장섰다고 했다.
고인은 지식이 아닌 지혜를 인생의 나침판으로 삼았다. 그는 "오늘날 우리 교육은 지식만 저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지혜가 없다 보니 (사회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했다.
장 박사가 교육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1960년대 미국 유학시절 기술과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으면서부터이다. 접시닦기 등 단순 노동은 시간당 몇 달러밖에 벌지 못하지만 컴퓨터 조작 같은 기술이 있으면 수십 달러를 벌 수 있다는 기능 중심의 미국사회를 목격하면서 귀국해 기술계통의 학교를 세우는 데 뛰어들었다.
그는 학교 설립을 위해 미국 20개 주의 교회를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모았다. 그 돈으로 귀국해 산 중턱의 과수원 부지를 사서 동서기독교 실업학교(현 경남정보대)를 세웠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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