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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야생동물을 찾아서 <21> 한라산 노루

유해동물 신세 된 '제주 영물' 솔로몬의 지혜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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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멸종 위기까지 몰렸지만, 제주도 사람들의 보호와 관심으로 이제는 많은 수의 노루들이 마음껏 한라산 방목지에서 누비고 있다.

- 청정 자연환경서 생활하는 야행성 동물

- 순하고 겁 많아 조그만 인기척에도 경계 

- 앞발, 뒷발보다 짧아 오르막길 잘 뛰어


- 적극적 보호캠페인으로 멸종위기 넘겨 

- 천적 없어 개체수 급증…농가 피해 속출

- 평화로운 공존의 길 모색 힘 모아야


'무너진 전설 한라산 노루'.


제주의 청정 자연환경을 상징하던 노루가 이젠 유해동물로 전락했다. 천적이 없어 개체 수가 증가한 데다 농가에 피해까지 주기 때문이다.

노루는 한때 신령스러운 한라산을 가장 한라산답게 해주는 제주를 상징하는 야생동물 중 하나였다. 동그랗고 순한 눈망울, 수풀 사이로 자꾸 몸을 숨기는 순하고 겁 많은 노루는 바로 한라산의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였다. 그래서 제주사람들에게 노루는 한라산만큼이나 특별한 존재로 대접받았다.

   
노루 뿔의 가지가 2개인 것으로 보아 2~3년생 수컷이다.
근데 요즘 제주에서의 노루 위상이 영 말이 아니다. 제주시 조천읍 선교리에서 만난 농민 김영기(65) 씨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며 대뜸 자신의 밭으로 취재팀을 안내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채소밭이었다. 잡초가 많다는 것만 빼면 특별한 게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뜯어낸 것처럼 줄기며 잎이며 성한 곳이 없었다. 줄기 윗부분이 잘린 채소들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잡초에 자리를 내주고 만 것이다.

김 씨는 "5년 전만 해도 이처럼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최근 들어 부쩍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만큼 노루 개체 수가 상당히 늘었다는 방증이다. 적극적으로 방지책을 고민해야 할 상황이었다.

노루에 대처하는 농민들의 방법도 다양했다. 그물이나 철조망을 치는 건 기본이고 태양열 전등을 이용해 노루를 놀라게 해 쫓아내고 밤마다 호랑이나 사자 울음소리를 틀기도 한다. 최근에는 전류가 흐르는 전선을 설치해 노루가 접근할 경우 순간적으로 충격을 주는 일종의 전기 울타리도 등장했다. 노루가 보호동물이기에 잡거나 죽이는 것이 법으로 금지돼 있어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노루처럼 힘이 약한 초식 동물들이 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방법이란 빨리 도망가는 것뿐이다.
정말 노루가 많아진 걸까. 취재팀은 노루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으로 달려가 봤다. 들판 여기저기서 자연스럽게 먹이활동을 하는 노루들은 취재팀이 다가가 촬영해도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한쪽에선 3, 4마리가 함께 무리 지어 다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앞발이 뒷발보다 짧아 오르막길을 유난히 잘 뛰는 모습이 유난히 영락없는 한라산 노루다.

이곳은 사람이 자주 오가는 길목으로 야생동물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노루는 소나 말을 키우는 목장 주변에서도 쉽게 목격된다.

목장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노루.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정착해 터를 잡고 사는 듯했다. 들판에서 말들과 어우러져 자연스럽게 풀을 뜯는 노루의 모습은 이제 더는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암컷은 뿔이 없다. 크기는 수컷과 비슷하다.
노루가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주민들의 하소연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팀은 밤이 되자 채소밭으로 향했다. 10분 뒤 밭 한가운데를 헤집고 다니는 동물을 발견했다. 순식간에 수풀 사이로 사라진 녀석을 뒤쫓았다. 노루가 분명했다. 초저녁부터 일출 전까지 활동하는 노루를 쫓느라 취재팀은 밤새 숲 속에서 헤매야 했다.

한라산 노루 주 서식지는 해발 200~600m대의 중 산간지대.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지만, 최대한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암수 몸의 크기는 비슷하지만, 수컷만 뿔을 갖고 있다. 수컷은 뿔로 나이를 가늠한다. 1년생은 하나, 2년생은 둘, 3년생 이상은 뿔 가짓수가 3개로 더는 늘어나지 않는다. 12월쯤 떨어졌다가 이듬해 5월에 다시 자라는 뿔은 노루의 유일한 무기다.

한라산은 노루의 낙원이었다.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한라산 중턱, 노루가 뛰어논다. 노루는 지리산, 휴전선 비무장 지대 등 국내 몇몇 곳에서만 아주 적은 수만 살고 있지만, 이곳 한라산에는 많은 개체가 평화롭게 살고 있다.

   
밤에 노루들이 채소밭에서 채소를 뜯어 먹다가 불빛에 놀라 쳐다보고 있다.
초식동물이 그렇듯 노루도 순하고 겁이 많다. 조그만 인기척이 나도 주위를 경계한다. 한라산에는 우거진 숲도 많지만 탁 트인 초원도 적지 않아 사람들 눈에 띄기 쉽다. 노루는 구상나무 숲이나 잡목림에 숨어 있다 나올 때면 습관적으로 조심스럽게 사방을 한 번 둘러본다. 일단 사방이 탁 트인 곳에 나오면 더욱 조심한다.

'껑껑껑'. 노루의 울음소리다. 노루가 자주 나타나는 한라산의 민대가리동산이나 만수동산 부근에서 가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개가 짖는 소리 같기도 하고 멧돼지 같은 들짐승의 울음소리와도 비슷하다. 여튼 금방 알 수는 없지만 초원에 울려 퍼지는 노루의 울음소리는 주위를 긴장하게 한다. 잡목림이 우거진 숲에서 듣는 노루 울음소리는 적막한 숲 속을 쩌렁쩌렁 울린다.

   
노루는 엉덩이에 커다란 흰색 반점이 있다.
제주 노루 뿔은 대륙사슴의 그것보다 크기가 작은 데다 약효가 떨어진다고 알려진 덕분에 남획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부터 계속된 포획 탓에 지난 1980년대에는 멸종될 위기까지 내몰렸다.

한라산 영물 노루가 멸종 위기에 처하자 제주도는 1987년부터 노루 살리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매년 노루 먹이 주기 행사를 하고 곳곳에 쳐놓은 덫과 올무를 제거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개체 수가 2011년 2만여 마리까지 늘었다.

하지만 노루 보호에 성공했다는 기쁨은 잠시였다. 대책 없이 늘어난 노루들이 먹이를 찾아 농가로 내려오면서 한라산의 영물 노루는 순식간에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두 마리가 억새 숲에서 되새김질을 하는 모습.
제주에서 노루가 급증한 것은 상위 포식자가 없기 때문이다. 천적인 호랑이 표범 늑대 등이 오래전에 사라져버렸고, 천혜의 자연조건 속에서 먹이까지 풍부하게 주어지자 자연스럽게 개체 수가 급증한 것이다. 사라질 뻔했던 노루를 되살려 놓았던 제주도민이 그때의 힘과 지혜를 모아 이제 노루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데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길을 잃은 한라산 노루들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010-8516-3298).

취재 협조 = 박용수 조류전문가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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