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부산 아파트 경비원 인사 논란'은 한 청년의 용기에서 시작됐다. 이 아파트 주민 송모(29) 씨가 그 주인공이다.
송 씨는 지난 4일 온라인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 "부산 0000아파트 갑질 논란"이라는 글과 두 장의 사진을 게재했다. 이 아파트 경비원이 매일 아침 지하철 연결 통로에서 인사를 한다면서, 나이 지긋하신 경비원이 청년과 여학생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사진을 올렸다. 수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기자가 송 씨를 직접 취재할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논란의 글이 게재된 다음 날인 5일 오전 모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 입주자대표자회의 회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당시 관리사무소는 수많은 언론사의 전화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한참 질문을 하던 중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끊은 그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처음으로 민원을 제기한 사람'이라고 했다. 송 씨였다.
그와 수십 차례 통화하며 느낀 점은 그가 요즘 보기 드문 용기와 실천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송 씨는 '경비원의 인사'에 부당함을 느낀 이후 많은 증거자료를 준비했다. 해당 경비원과의 인터뷰 녹취 파일은 물론이고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까지 했다. 웬만한 기자보다 훌륭한 취재력이었다.
기자가 물었다. "도대체 뭐하시는 분입니까?" 그는 경찰이었다. 하지만 근무하는 곳을 밝힐 수는 없다고 했다.
그는 기자가 취재를 하고, 첫 기사와 후속기사를 내는 2, 3일 동안 그는 줄곧 해당 경비원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기자가 지난 6일 입주민대표회의 회장을 찾아가 "일각에서 해당 경비원의 불이익을 받을지 걱정하는 소리가 들리는 데 어떻게 생각하나"하고 묻자 회장은 "그런 일은 결단코 없다"고 대답했다.
이 사실을 송 씨에게 전달하자 그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또 송 씨는 사진 속 인사를 받았던 여학생을 친구들이 알아보고 곤란해 할 수 있다며 제공한 사진을 최대한 흐리게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송 씨는 입주민대표자회의 관계자도 걱정했다. 그는 기자에게 "저는 그분들이 욕을 먹거나 피해 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다. 다만 일부 주민들이 조금은 반성하고, 이번 일을 계기로 힘들게 일하는 경비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처우가 개선됐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송 씨가 '오늘의 유머'에 글과 사진을 게시한 다음 날인 지난 5일 아파트 지하철 연결 통로에서 인사하던 경비원도 없어졌다. 그의 용기, 실천력 그리고 배려 덕분이다. 기자는 가까운 날에 송 씨와 소주를 한잔 나누기로 약속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