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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득의 부산항 이야기 <9> 부산포 남자들의 마을

초량왜관은 200년 이어진 감옥같은 '금녀 공간'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5-11-08 19:18:11
  •  |  본지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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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포왜관회도에 그려진 아침 시장. 왜관 담벽을 따라 상당한 사람이 서성인다. 자료출처 부산대학교 발간 '부산고지도'
- 2년씩 체류 남자들만이 생활
- 여성 상인에 눈길 뒷말 무성
- 매춘 알선책 설쳐 풍기 문란

- 일가족 작당한 매매춘 발각
- 2명 옥사·5명 효수형 떠들썩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면 우리 관심을 끄는 특이한 나라가 하나 있다. 남성은 한 명도 없고 오직 여성 전사로만 채워져 있는 아마존(Amazon) 왕국이다. 아마존 족은 일정 시기에 다른 나라 남자와 관계를 해 아이를 낳으면 사내아이는 이웃 나라로 보내거나 죽이고, 여자아이는 종족의 일원으로 키웠다. 여기에서 강한 여성을 일컫는 '아마조네스(Amazones)'라는 말이 탄생했다. 아마존이란 나라의 실존 여부를 떠나 여자들로만 조직사회를 구성하여 이끌었다는 것은 흥미를 끌 만해 보인다.

이에 못지않게 남자들만이 200여 년간 한곳에 머물며 생활을 했다면 어떠했을까? 역시 이들의 일상생활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의 역사라는 것은 남녀 간 교합의 역사요, 공동체 생활인데 말이다. 조선 시대 부산 용두산의 초량왜관은 조선의 유교 정신이 미친 금녀의 공간으로서 대마도에서 건너온 건장한 사내들만이 사는 마을로 유명했다. 이들은 2년여 동안 제한된 이곳에서 근무하다 기간이 끝나면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곤 했다.

비슷한 시기 일본의 무역상관이었던 데지마(出島)는 그나마 게이샤라는 일본 기생이 드나들어 사내들의 욕망을 풀어주었다. 그러나 초량왜관은 달랐다. 이곳에 기거하는 일본인들은 왜관을 둘러싼 2m 높이 돌담을 넘어 잠시 갑갑한 왜관 생활을 벗어나고 싶어도 곳곳에 설치된 감시초소 탓에 쉽게 담을 넘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 왜관 밖에서 열리는 아침 시장은 이들에게 호기에 찬 관심 어린 공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싱싱한 생선과 채소를 구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물건 팔러 나온 조선 여인을 대면하는 것이 더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날로 아침 시장이 커지자 시장가에서 흘러나오는 뒷말은 더욱 조정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숙종실록 1710년 4월 2일, 경상좌수사 이상집의 장계가 정곡을 찌른다. "아침 시장에 남녀 상인이 함께 가면 남자들이 가진 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팔리지 않고, 여인들이 가진 것은 비록 나쁜 것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팔리기 때문에 아침 시장에 나가는 사람은 모두가 여인이었다." 동래부사 권이진(權以鎭)이 초량 인근의 어민과 시골 사람들을 불러 타이르기를 "이는 어채(魚菜)를 파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대들의 아내와 딸을 파는 것이다. 그대들도 사람인데, 어찌 차마 이런 짓을 하느냐?"고 하였다.

문제는 교간사건이었다. 아침 시장을 통해서 일본인과 지역민이 교류를 트자 이를 이용하여 매매춘 알선책들이 날뛰면서 풍기가 문란해졌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시대, 쾌락과 사치와 허영을 좇아 부모가 딸을 포주에게 넘기기도 하고, 심지어 어미와 딸이 함께 매매춘한 사례가 당시 풍기감찰관의 보고서에 나타나 있다. 1690년 이명원이란 사람은 이보다 한술 더 떠서 아예 돈을 받고 자신의 처와 딸, 여동생을 남자로 분장시켜 초량왜관에 들여보내 매춘을 하다 발각이 되고 말았다. 이 교간사건으로 이명원을 포함하여 2명은 옥사하고, 5명은 효수형에 처해졌다.

초량왜관에서 일어나는 범죄 가운데 대부분이 밀무역과 교간사건이다. 그 가운데 교간사건은 조선의 자존심과 관계되는 일이라 조정에서는 엄벌로 다스렸다. 이처럼 초량왜관의 성 풍속도는 바로 사회제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은 더욱 유교적인 도덕관념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일본은 매춘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달라 교간의 상대편인 일본인을 처벌한다는 조선의 조치를 이해하지 못해 한동안 외교 분쟁의 씨앗이 되었다.

   
데지마 상관에서 네덜란드인과 일본 기생 사이에는 숱한 자식이 태어났다. 그런 혼혈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구스모토 이네(楠木イネ)였다. 그는 훗날 일본 최초의 여자 산부인과 의사가 되었다. 이들에 비할 정도는 못되지만 숙종실록에는 또 하나 흥미 있는 기록이 전해진다. '동래와 부산의 백성 가운데는 왜인의 출산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법망에 걸리지 않은 많은 자식이 태어났다는 것인데 숨겨진 이들의 뒷이야기가 없으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부산세관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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